성이 다른 여자 셋의 반려견
성이 다른 여자 셋에게는 반려견이 있다.
견생 6년 차, 5살 K이다.
K는 싱글맘 S와 초딩이 J에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이다.
(P여사에게는.. 모르겠다. ^^;;)
초딩이 J가 6살 봄에 우리 집에 처음 온 K는 새하얀 털과 롱다리의 소유자다.
그 롱다리가 싱글맘 S는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다니던 어린이집 언니가 강아지를 키우는 것을 보고 J는 1년을 졸랐다.
싱글맘 S로 말할 것 같으면, 어릴 적 큰집에서 키우는 몰티즈를 보고 P여사를 졸랐다.
P여사의 반대로 결국 키우지 못했다.
J처럼 S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다.
그러나 선뜻 키우자고 말할 수 없었다.
책임.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어느 봄, 새하얀 어린 생명이 우리에게 왔다.
강아지가 있는 곳은 의정부의 어느 동물 병원.
유기견은 아니나, 어미가 새끼를 너무 많이 낳아 새끼들을 동물 병원에 맡겼다고 했다.
일요일 아침, 유부초밥을 먹다 들은 이 소식은 우리를 설렘과 긴장 그 가운데로 데려다 놓았다.
강아지가 있는 곳이 의정부(당시 전남편의 내연녀 1번 상간녀의 집이 의정부였다.)라서 가는 길이 내내 찝찝했던 기억이 난다.
'아, 이 길을 달려 그녀N을 보러 갔구나. 이렇게 먼 길을 매일 달린 거구나.'
아마도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원래 데려오려던 녀석은 지금의 K가 아니었다.
데려오려던 녀석을 보다가 동물 병원 복도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천천히 다가오는 K를 보았다.
작은 생명체가 우리를 향해 왔다.
'아, 이 아이다!!' 싶었다.
5개월이 된 작은 생명체의 엉덩이 곁에 나란히 앉은 J는 K가 신기한지 오래도록 보고만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J는 그 생명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강아지를 몇 번 기른 경험이 있는 전남편이 능숙하게 강아지를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처음 K를 안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건 마치 J를 처음 안았을 때처럼 어색했다.
어정쩡한 두 팔과 놓칠까 봐 불안했던 마음.
그렇게 K는 우리 집에 들어왔다.
처음 와서는 자동차 뒷좌석에서 깔고 있던 배변패드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오기 전, 예방 접종에 중성화 수술에, 낯선 환경에 지치고 불안했을 것이었다.
밥그릇에 사료를 줘도 먹지를 않았다.
아픈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지만, 낯설어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지켜보기로 했다.
그날 밤, 밥을 먹었다.
똑똑한 이 녀석은 배변패드에 쉬야를 했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배변 훈련이었는데, (여기저기 쉬야하고 응아 한다면, 나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이것이 강아지 키우기를 망설였던 두번째 이유였다.) 훈련을 할 필요가 없었다.
효자였다. (물론, 이때까지는 내 아들이니 뭐니, 나는 개 엄마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음 날, 집안 여기저기 후다다다다 뛰어다녔다.
얘가 뭔가 불안해서 후다다다다다 뛰나 싶을 정도로 정신없이 뛰어다니더니, 순식간에 밥그릇의 밥을 해치웠다.
K는 집안 곳곳을 킁킁거리더니, 이내 잠이 들었고, 그렇게 적응 완료.
그렇게 잘 지내 조금씩 나도 작은 생명체에게 적응해 가고 있었는데,
어느 밤 K가 갑자기 내 다리를 붙잡고 마운팅을 했다.
K는 중성화 수술을 했다.
그런데 마운팅이라니? 내 다리를 붙잡고?
기분이 별루였다.
갑자기 정뚝떨이었고, 더 이상 키울 자신이 없어졌다.
밤새 이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까, 내가 예뻐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었고, 깜빡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 K의 눈과 마주쳤다.
까맣고 동글동글한 눈을 본 순간, 아, 나는 이 생명을 책임질 수밖에 없겠구나. 느꼈다.
폭풍 검색 후 알았다.
중성화 한 강아지라도 마운팅을 할 수 있고, 그저 재미있는 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럴 땐 다리로 슬쩍 밀어내면 된다는 것을.
K의 애착 대상 1순위는 나 싱글맘 S이다.
배변처리도 내가, 밥도 내가, 산책도 내가,
오면 오나 보다 가면 가나보다 K의 영역을 존중해 주니,
그러니, 그럴 수밖에.
전남편의 두 번째 외도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펑펑 울던 순간에도
내 앞에 가만히 앉아 새까만 눈동자로 나를 위로해 주던 K는,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어딘가에서 자다가 후다다닥 현관으로 마중 나와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어대는 K는,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면 어느샌가 옆에 와서 홀라당 배를 뒤집어 까는 K는,
밤새 본인 자리에서 쿨쿨 잠을 자다 새벽에 눈을 떠보면 내 옆에 엉덩이를 착 붙이고 누워 자는 K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내 아들이 되었다.
오 마이갓. 내가 개엄마가 될 줄이야.
그런가 하면 J에게 K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생이다.
K의 애착 대상 2위는 초딩이 J.
물론 배변처리도 안 하고, 산책도 안 시켜 주고, K가 자고 있으면 귀엽다고 깨워서 냅다 꼬옥 끌어안아 버리지만,
밥도 때맞춰 주고, 귀엽다고 쓰다듬어 주고, 안아 주고 하는 J의 마음을 K는 알고 있다.
언젠가 (이혼 전) 제 아빠에게 혼이 나 서러운 J가 K를 끌어안고 눈물을 뚝뚝 흘렸던 적이 있다.
K는 그럴 때 바둥대지 않고 조용히 안김을 당해 준다.
가끔 J와 K는 집 안에서 술래잡기를 한다.
우당탕탕 우다다다 서로 잡으려고, 잡히지 않으려고 뛰다가
K는 헥헥대며 식탁 밑으로 숨어 버린다.
그러면서도 또 좋다고 나와 둘이서 우다다다 거린다.
못 말리는 말썽꾸러기들이다.
가끔 J는 키우던 강아지가 죽는 이야기가 나오는 책을 보거나,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유기견 이야기가 나오는 티브이를 보면,
갑자기 K에게 미안해진다며,
K가 죽으면 어떡하냐며,
건강하게 잘 있는 K를 끌어안고 운다.
그럴 때 나는 말한다.
"그래서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있는 거야. K는 어쩔 수 없이 우리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가잖아. 그러니까 우리 곁에 있는 동안 우리는 K를 잘 돌봐주어야 하는 거야."
(라고 말하지만, 요즘 너무 더워서 산책시켜줄 엄두가 안 난다..... 엄마가 미안해.... K.... )
그런데, P여사에게 K는 예쁘지만 두려운 존재이다.
사실 P여사는 서울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K를 예뻐했다.
짖지도 않고 배변 실수도 없다며 착한 강아지라고 했다.
그런데 아빠와 P여사가 서울로 오고 K가 변했다.
아빠와 P여사가 재채기만 하면 멍멍 짖기 시작했고, 가끔 예민해져서 P여사를 물기도 했다.
이때의 P여사는 사실 K에게 눈길을 줄 여유가 없었다.
J도 할머니가 할아버지만 신경 써서 서운하다고, 변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내가 외출해 있을 때는 K가 P여사가 무얼 해도 가만히 있는다고 했다.
나만 오면 난리란다.
내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일단 P여사에게로 짖으며 물려고 달려든다.
그럴 때마다 P여사는 혼비백산 침대 위로 피한다.
(침대 위는 할아버지가 계셔서 올라가지 말라고 훈련을 시킨 덕에 절대 올라가지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궁여지책으로 K와 친해지기 위해 P여사는 외출 다녀오면 K에게 간식을 하나씩 주었다.
그랬더니 요즘은 K여사가 현관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면 간식을 달라고 멍멍 짖고 폴짝폴짝 뛰고 난리다.
P여사는 원래 강아지를 무서워했다.
어릴 적 나의 외할머니가 이웃집 개에게 물려 상처가 깊어 힘들어했다며, 그 개가 P여사도 물려고 달려와서 막 뛰어갔다며,
그래서 무섭다고 했다.
그러니까 P여사는 지금 K와 살기 위해 엄청난 용기를 낸 셈이다.
그래서 P여사에게 K를 예뻐해 달라든지, 산책을 시켜 보라든지, 하지 못하게 블로킹하는 훈련을 시켜 보라든지 하는 말은 못 하겠다.
물론 그렇게 한다면 K가 P여사를 더 잘 따르고, P여사도 자신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강하게 갖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P여사는 간식을 주는 것으로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보아 K에게 P여사는 3순위.
성이 다른 여자 셋도 우당탕탕이지만,
거기에 반려견 K까지 합세하여,
우리는 오늘도 우당탕탕 난리법석인 하루를 살고 있다.
조용할 날이 없는,
성이 다른 여자 셋과 반려견의 이야기를 담은 브런치북은 여기에서 마무리되지만,
아직 우리의 여정은 -ing 현재 진행형이다.
앞으로 많은 날들을 우리는 이렇게 우당탕탕 거리며 살 것이다.
그 우당탕탕함이 기다려진다.
우당탕탕하기에 설렌다.
여자 셋이 산다는 것이,
이토록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에,
새삼 감사하다.
더불어,
P여사, 초딩이 J, 싱글맘 S, 반려견 K의 여정에 잠시나마 들러 준,
독자님들께도 감사하다.
안녕,
나의 두 번째 브런치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