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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지지 않는 내 살, 현침살

성이 다른 여자 셋의 바늘과 실

by 문득 달

내 사주에는 현침살이 하나 있다고 한다.


도화살, 역마살은 들어봤어도 현침살?


현침살은 '매달린 바늘'이라는 뜻.

타인에게 바늘처럼 뾰족하게 말하는 살이라고 한다.


마침 소유정 비평가의 에세이 <세 개의 바늘>을 읽고 있던 참이었다.


"내가 가진 바늘이 비평과 뜨개와 자수에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좋다. 비평과 뜨개와 자수는 지금 가장 열심히 내 삶을 굴리고 있는 것들이니까. 무엇보다 그것이 전부 손으로 하는 일이라서 좋다. 부지런히 손을 놀린 후에야 얻는 한 편의 글과, 한 짝의 양말과, 하나의 소품이 좋다."


- 소유정 <세 개의 바늘> 뒷날개 중 -


오호라.

알았다.

나의 이 현침살이라는 것이 그동안 내 글쓰기의 뿌리였구나.

그러니까, 뾰족하고 날카로운 언어로,

전남편을 신랄하게 까는 그런 글이 술술술 써졌구나.

그 현침살을 빼고 글을 쓰려니, 힘들었구나.

그 현침살이 하나뿐이라, 나는 더 이상의 뾰족한 글은 쓸 수 없을 것만 같다.

대신 부드러운 글을 쓸 것만 같다.

다행인 것인가.

불행인 것인가.


게다가 이 현침살이라는 게 하나뿐이라 나는 뜨개도 고만고만이고 (겨우 대바늘을 굴려 목도리를 뜨는 아주 초보 수준) 자수는 시도조차 못해봤다.




그런데 우리 집 P여사는 뜨개의 장인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P여사는 코바늘을 요리조리 굴려 내 옷을 떠주기도 했고,

봉실봉실 두꺼운 핑크 털실로 카디건을 떠주어 나를 핑크돼지로 만들기도 했다.


언젠가는 모자 뜨기에 재미를 붙여

한 해 여름에 리넨 뜨개실로 모자를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40여 개를 떠서 우리 집, 이모들, P여사 직장 동료들 다 선물해 주었던 적도 있다.

모자 그까짓 거, 반나절이면 뚝딱이란다.

겨울에는 도톰한 털실로 비니 모자를 떠서 보내줘 기분 따라 색색이 바꿔 쓰고 다니기도 했다.


한동안 이런저런 상실감과 서울 살이에 정신없던 P여사는 다시 뜨개 장인 모드가 되었다.


동네 뜨개방에서 가방을 보고 오더니

한 달 동안 뜨개방에 출근 도장을 찍으며 가방 10개를 완성시켰다.

틈틈이 여름 모자도 3개를 떴고,

자동차 키홀더도 10개 넘게 떴고,

지금은 캐시미어 털실로 나의 겨울 카디건을 뜨는 중이다.


뜨개장인 P여사는 그런데, 그 코바늘 솜씨만큼이나 언어도 뾰족뾰족한 편이다.

나는 우리 엄마라서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시어머니로 만났다면, 직설적인 데다 말투도 뾰족해서 혼자 마상하며 울었을 거다.

우리 올케는 P여사가 조심하는 것도 있겠지만, 안 운다. 생글생글한다. 집에 가서 울지는 않겠지?


초딩이 J는 내 딸 아니고 P여사 딸이라고 할 정도로 할머니빠이지만,

같이 살면서 P여사의 이런 말투 때문에 상처받은 적이 몇 번 있었다.


P여사는 이름을 잘 부르지 않는다.

"야, 이것 좀 줘 봐."

"야, 너도 해 보자."

그러나 초딩이 J는 이런 투박한 부름이 익숙하지 않다.

다정스레 이름을 불리고 싶어 한다.

"할머니, 나는 '야', '너'가 아니고 J야. J라고 불러줘."

P여사는 내게는 아직도 '야', '너'하지만, 초딩이 J에게는 "J야~"라고 다정히 부른다.


게다가 자꾸만 툭툭 던지는 말투로 그게 아니라고 한다.

P여사는 어릴 적 친척들에게 쌩콩이 마냥 말투가 쌩콩 하다(전라도 방언. '샐쭉하다')는 말들을 들었다고 했다.

얼마 전에 뜨개를 하는 할머니 옆에서 대바늘을 잡고 겉뜨기를 배워보겠다고 씨름을 하는 초딩이 J에게

"아니, 그게 아니고, 이리 줘봐, 할머니가 해 줄게!"

했다가 초딩이 J가 할머니한테 혼났다고 울어버리는 바람에 P여사는 쩔쩔맸다.

P여사의 말버릇이다.

"아니, 그게 아니고."


아는 사람들이야 P여사의 속이 얼마나 여린지, 얼마나 정이 깊은지 알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뾰족한 말투의 날카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요즘 P여사는 초딩이 J의 마음에 들기 위해 전에 없이 다정하고 나긋나긋한 말투를 쓴다.

약간 오글거리고 간지럽지만, 부드럽고 좋다.


우리 집 P여사의 사주에도 현침살이 있어서

쌩콩이 마냥 뾰족한 뜨개의 장인이 된 걸까?


뜨개 장인 P여사는 오늘도 겨울 플리스를 뜨고 있다.

나중에 나중에 꼬꼬꼬부랑 할머니가 된 P여사는

언젠가 동화책에서 본 미쿡 할머니처럼

암체어에 앉아 안경이 콧대 위로 내려앉은 채 대바늘을 동실동실 굴려가며 예쁜 스웨터를 뜨고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나와 그때는 초딩이 아닐 J는

대바늘 P여사 옆에서 재잘거리며 P여사의 실이 되어드려야겠다.



여름 내 P여사는 뜨개를 했고

싱글맘 S는

나도 한번 해볼까 하고 코바늘로 수세미 만들기를 시도했다가

가장 기초인 사슬 뜨기도 제대로 못 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여름 뜨개에 빠진 P여사를 생각하며 서라미 작가의 <아무튼, 뜨개>를 읽었다.


이런 말이 나왔다.


"왼 팔을 뻗어라. 그레고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아라. 그 공간이 너라는 인간의 크기다." 이 말을 김라희에 빙의해 이렇게 바꾸고 싶다. "왼손에 실을 오른손에 코바늘을 잡으세요. 그리고 자기 키만큼 사슬 뜨기를 하세요. 그 길이가 여러분이라는 사람의 크기입니다.
- 서라미 <아무튼, 뜨개> 중 -

아, 나라는 사람의 크기는 고작 한 뼘 정도인 것일까.

그렇다면, P여사는 대체 얼마나 큰 사람인가.


그런데, 여기서 잠깐.


비평이나 뜨개, 자수 등 날카로운 언변이나 뾰족한 바늘과 관련된 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사주에 현침살을 몇 개쯤 가지고 계실까요?


아니, 모두 '현침살'을 가지고 계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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