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에 간 이유
김인주
2016년 3월 12일 토요일을 잊지 못한다.
많이 생각했었다. 그전까지 나에게 여행이란 비행기 타고 대도시 외국 유명한 곳에 가서 문명의 이기를 즐기는 그런 일반적인 관광 여행이었다.
지리산을 빙 돌아 한 바퀴 300여 킬로를 22개 구간으로 나누었다. 나의 첫 코스는 하동에서 삼화실까지 이다. 사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대전 집에서 아내가 싸준 김밥을 백팩에 넣고 7시 반경에 출발하여 10시 전에 집결장소에 닿았다. 사람들이 30명 이상은 되었다. 하동이 섬진강 동쪽이라니 같은 소소한 사실에 흥미로왔고 섬진강의 고요한 의젓함에 반하고 삼화실의 아름다운 지명에 감탄을 하였다.
그때부터 주말마다 가기를 반복하여 첫해는 매주 걷고 한 5년은 듬성듬성 빠지기는 하여도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거의 주말마다 걸었다.
나는 걷는 것이 수행이었다. 행선 行禪,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禪을 닦는 일이라 생각했다. 보약보다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낫고, 좋은 음식보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낫다는 말을 믿게 되었다. 10시부터 걷기 시작하여 오후 네시까지 들길 산길 마을길 오솔길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걷는다.
지리산에 간 이유
첫째는
들길 논둑길 마을길 산길을
보따리 머리에 이고 걸으신 어미를
평생 고생시킨 자식으로서
나도 걸으면 대속의 위안이지 않을까 하는
원죄를 속죄함이고
둘째는
사람들 속에 파묻혀 온갖 오물 뒤집어쓰고 살면서
빠져나와 자연으로 씻김을 하려고
성찰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다
질곡과 모함과 과시와 오만에서 탈출함이다
다소 거창 했지만 모르는 사람들에 섞여 혼자 걸으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생각이 많아지니 글이 써지게 되었다.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며 걸었을까
지리산 둘레길
35도 폭염경보 속 운리에서 덕산까지 걸었다
몇 번이나 옷이 땀에 젖었다 말랐다 반복했다
새소리도 물소리도
가끔 불어주는 바람도
나는 즐거운 걷기였건만
어머니는 3남 1녀 자식들 굶기지 않으려고
시골 이 마을 저 마을 옷보따리
머리에 이고 행상으로 평생 걸었다
장사 안 나가는 비 오는 날이 나는 좋았다
가까운 동네 신동 일구 가는 날이 좋았다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며 걸었을까
지나가면서 꽃은 보았을까
새소리 바람소리는 들었을까
이 더위에 머리에 인 보따리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도시락 싸 가지고 가는 걸 본 기억이 없는데
점심은 굶었을까 얻어먹었을까
어머니는 식구들 먹여 살리려고 행상 行商을 하셨고, 나는 나를 위한 행선 行禪을 하였다.
삼삼오오 일행이 많았고 혼자 온 사람들도 보였다. 점심을 여기저기 흩어 앉아 먹으려 하는데, 이리 오셔서 같이 식사하죠 하고 권한다. 밥동무가 생겼다. 김해에서 오신 고등학교 선생님이시란다. 말동무가 생겼다. 나는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나와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즐겼다.
지리산 사람들
지리산에는
섬진강만 있는 게 아니고
경호강 남강 덕천강도 있다
지리산 둘레길에는
나무 계곡 꽃 산길 들길 마을길만
있는 게 아니고
어느새 어디선가
동행하는 사람들 사람들도 보인다
안녕하세요
혼자 오셨나요
식사 같이 하시지요
어디서 오셨어요
혹시 이 꽃이름을 아시나요
수고하셨습니다 하면서
금세 마음을 건넨다
금세 친구가 된다
지리산에는
있는 게 많다
무엇이든 기꺼이 가르쳐주는 길동무
나무 그늘 밑 밥동무
따뜻한 말 걸어주는 말동무가 있어 고맙다
산 보러 지리산 왔다가
걷고 싶어 지리산 왔다가
마을 어귀 담장을 넘은 장미꽃처럼
정열적이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그때 만난 사람들과 아직 관계를 맺고 있다. 심지어 나는 둘레길 걷기 모임에서 자원봉사를 할 정도로 푹 빠져 들었다.
도보여행은 온몸으로 계절의 변화를 맞고, 땅의 굴곡을 몸으로 느끼는 자연과의 스킨십 교감이다. 눈 오면 눈 오는 대로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자연과 호흡하며 오래 자주 머물면 자연의 푸르름이 내 안에 머물러, 나도 자연의 일부처럼 견고하게 된다는 내 나름의 생각을 만들었다. 2015년 3월 내 나이 50대 말에서 60대 넘어가며 경험한 지리산둘레길 걷기는 아직도 유효한 가장 잘한 일 중에 하나로서 간직하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