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그녀를 만나다

by 김인주

늦가을 그녀를 만나다

김인주


(1)

내일 대전현충원 매점에서 11시 30분에 보자는 톡이 왔다.
가족 중에 유공자가 있다고 했고,
그녀는 양주에 산다고 한 것 같다.
아마도 미혼 싱글인 것 같다. 직접 대놓고 물은 적은 없었다.

76학번 동기니까 49년 전 친구이다.
졸업하며 그녀는 경기도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갔고,
나는 경기도 최전방 군대로 가서 낮엔 작업과 훈련과 취침이었고 밤에는 방책선 경계근무 하는 보병 소총수 였다.
군 제대 이후 통화만 두세 번 했고 만난 적은 없다.

오랫동안 교장 선생님을 하다 은퇴 후 생활을 보내는 중 연락이 닿았다.
해외여행도 국내여행도 많이 다녔고
여기저기 미술관들은 다 알고 있는 듯하다.

톡방에서 찍힌 그녀의 사진은 우아하고 품위 있고 무엇보다 옷을 입은 감각이 아주 세련됐다.
더구나 미술에 조예가 깊어서 감상문 비평문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압권이었다. 내글과는 차원이 다른, 간혹 이해 안되는 구절도 더러 있었다. 내글은 세종대왕께서 의도한대로 백성이 쉽게 이해 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버틴다.

그녀는 차분하다. 음역대 미파솔을 넘기는거 같지 않았다.
전화로 느낀 그녀는 말을 아끼고 정제해 썼다. 국어선생님 답게 각종 조사 문장구조 어휘 등이 정갈해서 문제집 지문 읽는거 같았다.

내일은 토요일 주말이지만 나는 노타이 재킷에 회색 바지와 베이지색 코트를 입고 나가기로 했다

그다음 어디를 갈지 무슨 말을 할지 뭘 먹고 마실지
언제쯤 대전역으로 모셔다 드릴지 전혀 알지 못한다.

아니다 사진 빨이다. 그녀도 한국나이 칠순 아닌가 나도 3, 4년 전에 찍은 근사한 청춘 같은 사진을 친구들이 보고 아니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하고 팍삭 늙은 티 나는 나를 놀렸다.
이러다 서로 실망해서 현충원 콘크리트 바닥 꺼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내색도 못하고.

그럭저럭 깨끗했던 차가 어제 먼지 먹은 비를 맞고 더러워졌다.
기름값 5만 원어치 넣고 얻은 세차티켓으로 천 원이나 비싼 버블 기계세차를 하였다. 차는 또 밤새 더러워질까 지하주차장에 그녀를 위해 모셔졌다.
조수석 깔판도 점검했다.

신은 만인에 공평하다.
나도 여지없이 전립선이 무럭무럭 커져 가고 있었다. 비뇨기과 들려 잔료 빈료에 먹는 약을 처방받았다. 풍선처럼 커지는 전립선을 터뜨리거나 꺼내서 풍선놀이라도 했으면 한다. 월요일 세 시간 버스 타고 공항 갈 일 있는데 백팩에 빈 페트병 2리터짜리 라도 넣어야 하나 하고 한숨이다. 쐐떵거리도 70년 정도 쓰면 부식하여 썩어 문 들어 나가는데 인체장기도 매한가지 일거다.

40년 전 지인 맞이 준비는 착착 진행됐다. 사실 정연이라는 친구와 셋이서 다방 다니며, 지금 생각하면 쓰잘대기 없는 얘기를 꽤 진지 모드로 많이 하곤 했다. 그녀보다는 정연이와 나는 더 가까운 편이었다. 정연이가 학원 강사 할 때 강릉에 가서 만난 적이 있다.

그녀와 내가 따로 만난 적은 없었다. 그녀가 혹시라도 나에게 특별한 호감을 가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일 대전에 올 일 있다는 말은 그녀가 먼저 꺼냈다. 그러니 일단 적어도 적대감은 없다는데 다소 위안을 느낀다.

잠이라도 잘 자서 주름 몇 개라도 펴지고 입꼬리는 쫑긋 올라가고 흰 머리카락 한 움큼 검어지고
숲 속에 분화구 마냥 푹 꺼진 정수리에 산림흑화 사업을 하는 바람이다.

만에 하나라도 옛 친구를 꿈에서 만나 몸서리치며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도망가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쓰잘데 없는 잠꼬대의 악몽 대신에 곱게 나이 든 여인과의 설레는 재회이기를 바란다.


(2)

괜찮게 성장한 한 제자와 그제자의 친구와 내가 기차를 탔다. 강의자가 된 제자가 친구를 부정적으로 나무라는 장면을 목격하고, 나는 제자에게 조언을 하는 중이었다. 부정적으로 싫은 소리를 하더라도 마무리는 늘 긍정적인 말로 매듭을 지어라라고 제자를 가르치는데, 내가 느닷없이 화를 버럭 냈다.

깼다. 개꿈이었다. 휴대폰 전자시계는 0419 학생의거의 날이었다. 아 이게 웬 패러독스고 아이러니냐. 꿈이 자꾸 거슬렸다.

앗차 이제야 생각난다. 그녀가 자기도 읽는다면서 책 한 권을 추천했었다. 그런데 책제목도 생각 안 나고 저자가 외국인이었던 거 같다. 혹시 물어보면 뭐라 할까 서점에 갔는데 책이 없었어. 어느새 엄한 선생님 앞의 주눅 든 학생이 되어 있었다.

그녀 만나는 세 시간쯤 전이다.
고3 때 본 수능대입 예비고사도 신경 안 쓰고 당당했는데.... 무성영화인데 초침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전화선 너머 들려온 그녀는 교장선생님을 오래 해서인지 말투가 저음이면서 차분하고 힘이 느껴졌다. 음절 끊어 읽기가 명확했다. 카리스마가 움츠려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전화에서 고분고분했고 왜 현충원 매점인지도 되묻지 못했다.

아ㅡ 멋진 여자는 그냥 훔쳐만 봐야지 맞짱 뜨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도 내가 팔방 만방 잘난 척하며 구라 치며 돌아치던 현역 잘 나갈 때도 아니고, 지금은 등 휘고 목소리는 갈라져 쉬고 잡리스 반 백머리 백수 아닌가. 너 자신을 알라이다. 갑자기 몸이 한기를 느끼며 위축되었다. 오줌이 마려웠다.

현충원까지 30분 걸리는데 3시간 전쯤이다.
그녀의 톡방에 들렸다 선생님 굿모닝 조심히 천천히 내려와 하고 아양을 떨었다. 천천히 인지 천천이 인지 아직 모르겠다. 의외로 답이 바로 왔다 네에였다. 네 보다는 네에 하니까 부드러운 뉘앙스다. 교장선생님이 기분 좋으신 것 같다. 비도 안 왔는데 서쪽 하늘에 무지개가 뜰 거 같다. 일어 나 보니, 어제 야식으로 꼬깔콘과 바나나우유 먹은 얼굴이 찐빵처럼 부었다. 시간이 붓기를 해결함을 믿을 뿐이다.

상봉터미널이 생각난다. 터미널은 이별과 상봉이 교차하는 감성 있는 장소이다. 항공사 있을 때 공항근무가 고생은 됐었지만 사람들의 이별과 만남을 훔쳐보며 근무 피로를 풀기도 하였었다.

친구들이 지난여름 거창 천렵에서 일러 준 대로 턱 당기고 가슴 펴고 걸음걸이 크게 빠르게 해라. 그러면 아직 쓸만하다. 젊은 처자들이 따를만하다 하던 조언과 위로의 말이 떠올랐다.

거울을 보고 안면근육 미소 짓기 연습을 한다.
옷은 미리 입었다 이태리 순모 재킷 마에스트로 바지 역시 캐시미어 터틀넥 락포트 갈색구두로 중무장을 하였다. 적어도 노인 냄새는 나지 말라고 아라미스 아프터세이브 로션을 쳐 발루고 조말론 두 방울로 마지막 터치 웨어링을 하였다.
겉은 번드르르한데 속은 비었고 썩었다. 개꿈 꾸는 바람에 일찍 일어나 비타민 등 영양제 칼슘 마그네슘 같은 광물자원도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한 움큼이 식도로 빨려 들어갔다.

미리 가자 지금 10시다. 약속은 11시 반이다. 주변 환경에 익숙해서 긴장을 줄이자. 내 생애에 누군가의 약속시간에 늦은 적은 거의 없다.
길 하나도 안 막히고 보훈매점 앞 주차장에 일찌감치 도착했다. 11시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차들이 주차장에 많다. 대전현충원 주위에 조성된 보훈길은 평상시 나도 걷던 길이다. 익숙한 지형지물이다.

날씨는 청명하고 하늘은 높고 푸르고 주변 계룡산 등줄기들은 총천연색 자연을 맘껏 뽐내고 있다.

'약속시간을 좀 늦쳐야겠어. 12시' 그사이 톡이 왔다. 미안해요 이모티콘. 잠깐 당황했지만 그래 인자함과 대범스럼을 보이자 "그려 천천히 일 봐"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답을 했다.
속은 퀴즈풀이로 조금 잠깐 복잡했다.

갑자기 불안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혹시? 일행이 있을지 모르겠다. 혼자 온다는 말도 없었고 같이 온다는 말도 없었다 그냥 톡 두줄뿐이었다. 일행이 있다면 나는 닭 쫓던 강아지 신세가 된다. 그동안 나의 상상은 개꿈!? 서너 마리 개 얼굴들이 좌에서 우로 서서이 지나간다.
으아악 ~ 한줄기 외마디 신음 소리가 계룡산 계곡을 타고 오른다 아직 35분 전이다.


(3)

12시가 되어 내가 먼저 전화를 했다. 응 5분이면 내려갈 거야 목소리는 아주 평온했다. 일행이 있냐고 쪼잔하게 확인할 여지가 없는 간단체 건조체의 언어였다. 나는 주차장을 걸어 나섰다. 보훈길 1코스 언저리까지 전진하여 시계를 확보했다. 적은 아니지만 먼저 보면 이기는거다.

앗 50미터 전방에 의심체 실루엣이 비쳤다. 옆에 일행은 안 나타났다. 나는 그 실루엣을 카메라 줌인 하듯이 전진 확대하였다. 내 시력은 교정하여 0.6 정도이다 난시 다중초점 고굴절 렌즈 등 다기능 기술을 이용한다. 역시 평생 혹사만 하고 도움은 못준 이유이다. 눈뜬 심봉사 수준이다.

드디어 10미터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인식하고 파안대소도 아닌 수줍고 안심의 어정쩡한 미소를 드디어 교환하였다. 멋적었다.
그녀는 손을 들어 시원한 악수를 획 올려 재끼며 청하였다. 그 순간 나는 편안한 기운과 서로의 존경과 만나서 고맙다는 모든 의미가 내밀어준 손바닥 기운에서 느껴졌다. 현충원에 계시는 어머니 생신이 오늘이라 인사드리려 왔다 했다.

가까운 계룡산 수통골 입구의 한마음면옥에서 만두국으로 점심을 했다 안 좋아하는 음식을 쭉 열거해 줘서 편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의 만남이라 메뉴선택이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금세 인식하였다. 나 또한 만둣국을 입으로 먹었는지 코로 들이켰는지 기억 안 난다. 내가 좋아하는 막국수에 수육과 감자전을 시켰어도 마찬가지 이었을거다. 예전 같으면 대접 채 들고 국물을 흡입했는데 참았다. 건더기도 다 건저 내 먹지를 못한 채 내버려졌다.
그녀는 대전에 이미 여러 번 왔었단다. 이번에는 메타세쿼이아 나무의 가을을 느껴 보고자 장태산에 가고 싶다 했다. 장태산이 내게 익숙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순간 스쳤지만 기꺼이 내차의 귀빈으로 모셔야 하는 기사도 정신이 호출되었다. 실로 오랜만에 내가 차문을 열어 그녀가 타고 문을 닫아주고 잽싸게 차 뒤로 반바퀴 돌아 운전석에 앉았다.

평상시 안 신던 구두에 허리 쫄리는 바지 버바리 아닌 싸구려 바바리코트 입고 장태산 언덕을 오르니 숨이 차올라 심장에 부담을 느꼈다. 게다가 말을 계속해야 하니 더 힘들었다. 왼쪽 새끼발가락에 난 티눈 때문에 걸음을 절룩거렸다
표정은 긍정으로 가능한 유지한 채 ㅜㅠ

그녀는 현명했고 무리 없이 열심히 교육자로서 최선을 다한 개발도상 시대의 신여성 몫을 훌륭히 지내온 듯하다. 더구나 미술에 조예가 깊어 유명한 블로거로 한 획을 그었으며 음악 여행 사회적 기여 등에서도 겸손한 균형을 유지한 잘 살아온 교육자이었다. 게다가 그가 쓴 독후감은 분명히 세종대왕 한글로 썼는데 해석이 안되었다. 나는 인생을 노암 촘스키의 표층구조로 살았다면 그녀는 심층구조로 산 것이다.

우리는 장태산을 두루 걸으면서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오와 열이 정렬되어 쭉 뻗어 자란 메타 세콰이어 나무들이 장관이었다. 나는 표층구조 지식으로 얻은 자이언트 세콰이어에 대해 아는 척을 했다.
인위적인 대화가 아니고 서로 거침없는 동의와 공감대와 이해의 만남이었다. 간혹 대화가 중단될 때도 전혀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대전역 부근 소제동 카페거리에서 60년대 70년대 학창 시절의 향수를 회상하며 궁핍의 시대에서 얻은 현재의 풍요에 고마워하는 마음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6시 5분 대전발 서울행 기차에 하루를 접고, 나는 파바로티의 논띠스코르다르디메 물망초와 이데알레를 들으며 초겨울 저녁 어둠과 차조명과 거리의 네온사인이 점멸하는 아름다운 귀가운전을 하였다. 내가 가는 길 오른쪽 도로 건너 건너 열차는 서서히 나와 같은 북쪽 방향으로 가고 있다.

10여분 지나 톡이 왔다.

그녀 "덕분에 늦가을의 서정을 듬뿍 누린 감성 여행 잘했어. 고마워"

나 "차가 막히네ㅡ덕분에 과거로의 추억과 즐거운 대화로 삶의 동력을 찾은 기분 좋은 하루였어. 고맙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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