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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u Sep 08. 2021

카리스마적 악인에 관한 소고

Part 1. 예측불가한 사고의 우아한 아나키스트가 태어난 곳

  어느 날, '책 읽는 사람'에 관한 글을 쓰고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강렬한 끌림을 선사한 인물을 만났다. 다름아닌 PSYCHO-PASS의 "마키시마 쇼고". 현실의 독서가들도 많은데 실재 하지도 않는 한낱 SF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이렇게까지 사람을 매혹할 수 있었던 것은 마키시마 쇼고라는 문제적 인물이 탄생할 수 밖에 없는 가상사회의 문제들이 지금 현존하고 있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인간문명이 권력이라는 것을 만들어낸 이래 언제나 당면해 온 근본적인 문제들 -생각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대중, 권한은 최대치로 휘두르되 책임은 회피하고싶은 권력, 풍요와 안정을 대가로 포기해야 하는 가치 앞에 갈등하는 소시민 등- 을 꽤 괜찮은 실력으로 보여주었는데, 솔직히 최근에 읽었던 어떤 책에서도 이보다 더 대중, 다시 말해 '생각하지 않는 게으른 인간'에 대한 비판을 이만큼 근사하게 풀어낸 컨텐츠를 본 기억이 없다. 2012년 노이타미나 TV에서 최초 방영된 오리지널판 이후 실제 우리나라에서 정상적인 경로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2017년경. 거의 10년 전 스토리란 점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시간적으로 상당한 격차를 두고 만난 작품이었지만 당시 충격 정도는 오시이 마모루의 85년도 극장판 공각기동대를 95년즈음 만났을 때 만큼이나 컸다. 


작가는 더 이상 실망할 일 없는 죽은 작가가 안전하고,
독서가는 가상 속에서 더 절박하게 현실적이다.

1. 조지 오웰만큼 지배적이지는 않고, 깁슨만큼 와일드 하지는 않은...


  발음 그대로면 사이코패스 성격장애(Psychopathy)와 구분이 잘 가지 않는 이 SF 애니메이션의 제목은 각 개인들의 생체신호를 토대로 범죄계수를 측정하고 판정하여, 유무죄를 즉결처분할 수 있는 시대를 가능하게 만드는 토대, 즉 범죄계수 판정 매커니즘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좁게는 개개인의 범죄계수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시간적 배경은 그리 멀지 않은 근미래, 자원고갈과 전쟁 등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외부세계와 단절하고 완벽하게 고립된 유토피아를 지키기 위해 일본은 미래 어느 시점에 입법, 사법, 행정의 3권 분립 원칙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후생성 주도로 정치사회문화의 통합 "시빌라 시스템" 이 사회를 움직이는 세상의 중심이 된다. 그리고 행정, 치안, 사법 기능을 통합한 기관으로 추정되는 공안국이 정부의 손과 발, 눈과 귀가 되어 시빌라시스템에 의거하여 사회를 관리하고 있다. 전국민의 생체신호 데이터는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가두스캔, 직장 및 주요시설 스캔을 통해 실시간 수집되고 분석, 판정된다. 실시간 개인들의 범죄계수가 수치화 되어 단위구역별 스트레스 케어까지 시행되는 세상. 그 촘촘한 그물 안에서 사회가 허용하는 계수 이상으로 올라간 경우 개인들은 스트레스 케어를 권유받고, 그보다 심하면 개별 재활통보, 한단계 더 악화되면 갱생시설에서 집중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 사회에서는 당연히 범죄의 모의만으로도 사이코패스의 색상이 탁해지고 범죄계수가 올라가므로 사람들은 해맑고 자신있게 살아가거나 음습한 잠재범으로서 관리 당하거나, 역시 대부분은 그 사이를 요령껏 오가며 그렇게 살아간다. 일어나지 않은 범죄라도 극도의 악의나 심각한 사회위협이 계수로 측정되면 공안이 출동하고 도미네이터라는 이름의 총이자 스캐너를 겨누는 것이 일종의 기소행위를 대신한다. 그리고 과학이 풀어낸 영혼의 비밀은 수치화, 계량화되어 단계별로 도미네이터를 패럴라이저(마비) 모드, 엘리미네이터(즉결처형) 모드, 디콤포저(즉시파괴) 모드로 변형시킨다. 그 과정에 도미네이터를 쥔 집행관 또는 감시관 등 인간의 의지는 개입할 여지가 없으며 오로지 계측된 숫자와 데이터에 의한 시스템 판단과 가차없는 집행이 있을 뿐이다. 변호사도 없고 항고-상소도 없는, 과학 위에 옹립된 시스템에 의문을 허용치 않는 무자비한 효율성은 일본에 전례없는 사회안정과 경제 번영을 가져다 주었고 최대다수 최대행복의 공리주의 실현으로 대부분은 시빌라의 신탁에 따라 전공과 직업까지 선택권을 제한 당하는 빅브라더 사회임을 인지하고도 거부감 없이 잘 살아간다. 물론 사회 한 켠에서는 겨우 5살에 잠재범 판정을 받고 아직 짓지도 않은 죄에 대한 낙인이 찍히는 불합리도 있고, 자극 없는 천국이 되자 식물인간화되어 무력해지는 유스트레스 결핍 문명병도 만연한다. 그러나 제 아무리 문제가 있더라도 내전과 빈곤이 판치는 외부세계가 있는 한, 다수에게 안락한 일상을 보장해준 검증된 시스템을 부정할 시민들의 용기는 이미 이 사회에 남아있지 않다. 이 비범한 사회, 시빌라 시스템 안에서 안전한 삶과 기회를 찾고자 밀입국하거나 불법 체류하는 외국인마저 있으니까. 마키시마 본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시빌라 시스템 하의 일본은 조지오웰의 1984처럼 통제와 지배가 압도하지는 않고, 윌리엄 포드 깁슨처럼 계급갈등과 기술문명에 의한 부조리가 사회 전체를 잠식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블레이드러너의 세계와 비슷하다며 작가 필립 K.딕을 자신의 원대한 혁명에 가장 큰 조력자인 해커 최구성에게 추천한다. (해커가 깁슨까지 좋아한다는 건 좀 너무 뻔하다면서...)

  마키시마 쇼고도 테드 카진스키(한때 미국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은 우편물 폭탄의 Unabomber 본명)처럼 불특정 다수에 대한 테러를 가하여 사회혼란을 야기하지만 그 정도의 이벤트로 사회가 무너질 것을 기대하거나 자기영향력 과시정도를 목표삼는 과대망상 테러리스트 따위가 아니라는 점에서 아나키즘에 경도된 Agitator(선동가)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누구보다 정확한 현실인식 기반 위에 자기 능력과 타인의 재능을 자유자재로 조직화하고 지도하며 쓸모를 다하면 버리는데에도 망설임 따위는 없다. 재능있는 악당들을 찾아 적당한 일을 꾸미는데도 천재적인 기획자인 동시에 직접 손에 피 묻히길 꺼리지 않는 플레이어, 모든 삶의 순간을 놓치지 싶지 않은 탐미주의자다. 책을 지식매개 이전에 감각조정의 도구로서 손끝의 감김이 전하는 쾌감마저 독서행위의 중요한 일부로 여기는 자.그 정도로 감각과 지각 모두에 순도 높은 통찰을 가졌기에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순간에도 그 생명이 내뿜는 두려움, 원망, 고통을 가장 밀접하게 느끼려고 살해의 도구마저 바버샵에서나 볼 수 있을 면도칼을 쓴다. 섬세하고 우아하지만 한끝만 방심하면 온화한 표정으로 목줄기를 딸 수 있는 무자비함의 뿌리 역시 극도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이라니...미식의 극치라는 푸아그라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흉포함과 잔혹함이 미식의 본질과 분리할 수 없는 표리임을 알게된 동정심도 많고 요리에 대한 열정도 출중한 요리사가 있다면 과연 어떤 결정을 하게될지 궁금하지 않은가.

시스템 역외인, 200만명에 한 명 미만으로 나타난다는 '면죄체질자'는 현행범인 상태에서도 도미네이터로 단죄할 수 없다. 
  사이머틱 스캔이 읽은 생체 역장을 해석해 인간의 감정을 계수화 해내자 드디어 과학의 지혜가 영혼의 비밀을 밝혔다며 이 사회는 격변했지. 하지만 그 판정에는 인간의 의지가 없어. 자네들은 대체 무엇을 기준삼아 선과 악을 구분하고 있는거지? 나는 인간 영혼의 광채를 보고 싶어. 그것의 고귀함을 직접 확인하고 싶다. 하지만 자기 의지조차 묻지 않고 시빌라의 신탁대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무슨 가치가 있나? 

  - 나를 벌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건 스스로 살인자가 될 의지를 가진 자 뿐이야. 
  -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인간은 욕망이 지나치게 크거나 지성이 부족한거네. 
  - 11화 성자의 만찬 편에서 : 시스템 역외인 마키시마 쇼고가 시스템의 총아 츠네모리 아카네에게.

2. 예측불가한 사고의 우아한 아나키스트의 독서

마키시마가 유일하게 자신의 계획을 공유하는 해커 최구성에게 전화로 테러를 본격 확대시키는 명령을 할 때 읽던 책. 이와카미 야스미 "이미 배반당했던 혁명"

  사실 일방적 찬사로 시작하였으나 -사이코패스의 원안 스토리에 기여가 큰 우로부치 겐 쪽인지, 공동각본 작업을 한 후카이 마코토 쪽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중2병'처럼 모든 중요한 순간마다 전거(典據)를 슬쩍 끼워 놓거나 흘리는 겉멋이 좀 과했다는 느낌도 있다. 물론 그 덕분에 지금 이런 '생각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활동이 자극받게 된 것이기도 하지만...나는 구해보지 못했으나 작가들 자신들도 너무하다 싶었는지 방송종료 후 이런 부스러기들을 찾아다니는 팬들을 위한 가이드북까지 발간 했다고. 확인해보진 못했지만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 당시 트로츠키의 저서 "배반당한 혁명"에서 오마주한 제목을 가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를 다룬 20세기 말 일본 저널리스트의 책을 읽으며 일본을 무정부상태로 만들 소요를 지휘하다니, 꽤나 좋은 디테일과 연출이었다고 생각한 이 장면에 대해서도 가이드북이 설명해주었을 듯 하다. 

   "종이책을 사. 전자책은 맛이 없어."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 전, 마르셀 프루스트를 자동 연상시키는 홍차 그리고 마들렌을 곁들인 망중한. 솜씨좋은 해커 최구성을 도구가 아닌 동료로 여김이 보인다.

  마키시마 쇼고의 독서는 취미 기호활동이기 이전에 숨쉬고, 말하고, 음식을 섭취하듯 신체의 정상기능을 위해 필수적인 기초 대사활동에 가깝다. 유일하게 자신의 인간적 면모를 공유하는 외국인(이름으로 이미 한국계임을 충분히 알 수 있는) 해커에게 탐미주의자다운 종이책 선호의 이유를 설명하는데 대화의 상대가 최구성이 아니었다면 굳이 보태지 않았을 이야기. 최구성이 마키시마에게 '당신과 얘기하다보면 난 인생을 손해보고 산 것 같다'고 한 말은 모든 독서를 통한 자기 세계확장에 성공한 인물들에게 바치는 최고의 찬사다. 이 대화를 통해서 마키시마는 탐미주의자이기는 하지만 안전한 쾌락만을 쫓는 자가 아닌 인생의 플레이어로서의 위험요소까지도 감수하려는 독특한 인물임을 확인시킨다. 시스템으로 사회적 위험을 원천부터 봉쇄하여 완전사회를 이룩하겠다는 환상을 시스템 무력화로 모두가 외면했던 위험사회의 본질을 눈 앞에 드러내는데, 그 심정에 대해서는 신편집본 11화의 도입부 독백에서 충분한 설명을, 그리고 마키시마는 읽는 행위의 궁극에서 직접 책을 쓰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태어났으니 살아간다....생의 의지와 선택의 권리를 전부 시스템에 위임한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가축이다. 제아무리 잘꾸며봤자 가축을 대등한 친구로 인정하는 축산업자는 없다. 
참 이상해... 이 따분한 사회에서 가축취급을 받으면서 어떻게 아무것도 부수지 않고 있을수 있지? 이 세계에 영원따위는 없어. 속죄하는 자의 영혼이 내뿜는 빛 뿐이지.
시빌라시스템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줄 새 구성원을 영입하러 온 토마 코자부로 인격상태의 공안국장 카세이. 옥션으로 어렵게 구한 종이책으로 환심을 구하지만 그 책으로 일격을 당한다.

   더 완벽한 시스템으로의 진화를 위해 시빌라시스템이 파견한 토마 코자부로의 인격을 탑재한 조슈 카세이 공안국장은 예전에 빌렸다가 분실한 "현대 사조사" 초판을 어렵게 입수하였다며 마키시마에게 돌려준다.시빌라의 비밀에 접근했던 최구성의 최후와 시빌라시스템의 실체를 찍은 영상까지도 신뢰감 형성을 위해 먼저 돌려준다.(마키시마가 토마 코자부로의 재능을 오리지널리티 없는 오료 리카코에 비해서는 높이 사면서도 예전부터 뒤끝이 무르다고 한 지적에 200프로 동의하게 되는 지점.) 신의 의식을 얻어 전지전능의 쾌감을 맛보라는 철저한 탐미주의적 유혹. 하지만 마키시마에게 육체의 한계는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소중한 감각 플랫폼이다. 또한 직전의 최구성과의 대화에서 확인시켜주었듯 마키시마는 단순히 쾌락을 위해 이런 소요들을 기획하고 실행한 적은 없었다. 마키시마를 대충 알았던 토마 코자부로(=카세이)는 설득의 포커스를 제대로 잡지 못한 잘못에 대한 벌이라도 받듯이 필요 이상으로 잔인하게 해체당한다. 이미 시효가 지나도 한참 지난 사드의 "악덕의 번영" 이나 탐독하고 있으니 마키시마를 잘못 이해하는게 아닌가!

스위프트. 마키시마 쇼고의 비틀린 유모어 감각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 시빌라가 뇌들의 병렬 집합체임을 알게된 이상 발니바비(Balnibarbi)의 의사 인용은 필연적이다.


넌 특별한 인간이 아니야. 그저 세상에 무시당한 쓰레기일 뿐이지.
혼자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서 따돌림 당해온 데 분풀이하는 것 뿐이잖나.
이지메 당하는게 싫어서 심술부리는 꼬맹이나 다르지 않아. 
넌 고독을 이기지 못한 것 뿐이야.

재밌는 소리를 하는군. 고독? 그게 나 한테만 한정된 이야기인가? 
이 사회에 고독하지 않은 인간이 누가 있나?
 타자와의 연결이 자아의 기반이던 시대는 한참 전에 끝났어.
불공평한게 싫다고 인간이 아닌 무엇에 모든걸 위탁하고
그 기준에 따라 의심도 없이 살아가지.
다들 자기만의 작은 독방에서 자기만의 안식에만 길들여졌어.
그래서 난 신뢰도 우정도 내팽개치고 
고독을 무기삼아 너의 의지로 분노하는 너를 높이 평가한다.

  의지와 관계없이 태생적으로 시스템 안에 포용될 수 없었던 자와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감정과 의지로 도망친 자의 대결. 이전의 첫 대결, 파스칼로 공격하고 오르테가로 받아치는 치기어린 대화와 연출은 비할데 없이 훌륭한 결투장면이었지만, 개인적 취향으로 보면 내려치는 날붙이의 무게까지 느껴지는 피비린내 진동하는 마지막 화의 대결이 훨씬 좋았다. 티나는 인용 없이도 이미 내재화 된 인간 자유의지에 대한 예찬, 헤겔과 니체가 전혀 이물감 없는 상황과 자신의 언어와 유려한 육체로 싸우고 있는 모습을 저렇게 훌륭하게 시각화 해내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이어서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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