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책 읽는 자의 의무.
사이가 : 카리스마에는 세 요소가 있네.
영웅적 예언자의 자질, 혹은 함께 있으면 편한 단순 공간 연출차원의 능력,
그리고 유창한 언변을 위한 지성, 자네가 찾는 유형은 어느 쪽인가?
코가미 : 그 모든 요소를 겸비한 듯 합니다.
대학이란 교육기관과 시빌라 시스템이 병존했던 몇년 전까지도 프로파일링과 범죄심리학을 가르쳤고 공안국의 엘리트들에게도 직접 지도를 하던 전 대학교수, 현재 무직이지만 홀로그램 없이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지은 "낙수장"을 닮은 자연 속 대저택을 가진 자산가라서 그리 아쉬울 것이 없는 지식인 백수 "사이가 죠지". 도미네이터가 계측, 집행하고 시빌라가 판단하는 명료하고도 단순한 세계에서는 그는 이미 필요를 다 한 지식인이다. 그는 자신이 향유했고 빛났던 시대의 유물들과 함께 가능한한 시빌라의 눈이 닿지 않는 자연 속에 칩거중이다. (그 외에도 전직 대학교, 저널리스트, 평론가와 문학자 등은 모두 시빌라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불필요한 퇴물이 되었다고 전한다.)
그에게 배웠던 많은 엘리트 감시관들 중에서도 발군의 특별한 재능을 가졌던 코가미 신야. 그는 마키시마 쇼고의 뒤를 쫓다가 그의 퍼펫 중 하나이자 플라스티네이션 연쇄살인범인 토마 코자부로에게 산채로 해부 당한 직속 부하에 대한 죄책감, 실마리조차 잡을 수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감지한 지독히 비뚫어진 악의 존재에 대한 분노와 공포, 동시에 현 사회시스템에 대한 불안과 불신으로 사이코패스가 악화되었고 결국은 잠재범이 되었다. 감시관으로 강등된 채 3년여의 시간을 흐릿한 사진 한장과 파편처럼 흩어진 단서들을 가지고, 절망도 희망도 갖지 않은 채 사냥감을 기다리는 사냥개처럼 덤불 속에 몸을 낮추고 기다리고 있다.
그런 그가 마키시마의 뚜렷한 흔적을 잡게된 것은 시스템의 총아 츠네모리 감시관의 등장과 함께다. 그녀는 마키시마처럼 특별한 체질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본성에 대한 노력하는 긍정성과 건실한 이성의 균형을 갖춘, 시대가 원하는 이상적 시민. 그녀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애정, 신뢰를 가지고 있고 외부 계측되는 사이코패스의 색상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이상적 시민으로 시빌라의 인정을 받는 동시에 회의와 분노에 찬 코가미 신야에게도 동료로 인정받는 존재이다. 묘하게도 이 이상적 존재가 책을 읽는 장면은 이 시즌 안에서는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세상을 의심하고, 분노하고, 집착하며 격정과 열광에 휩싸이는, 즉 인간적 결함을 지닌 인물들만이 책을 쥐고 읽고 인용한다.
사이가 죠지에 의하면 시빌라 시스템 하의 정치범, 코가미에 의하면 시빌라 이후의 일본 역사상 전례 없이 위험한 인물인 마키시마 쇼고에 대한 프로파일링 토론 과정에 등장하는 베버와 푸코는 -원작자에게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원작 사이코패스를 집필하는 과정에서도 아마 중요한 레퍼런스였을 것이다. 토론의 끝에서 사이가 죠지와 코가미는 마키시마에 대해 "공리주의의 함정에 빠진 판옵티콘, 거대한 대중의 감옥 안에서 태어난, 민중에게 흥미 없는 자살희망 혁명가"라는 결론을 내린다. -애니메이션의 지적 유희치고 너무 수준이 높은 것 아닌가.-
사이가 : 베버를 인용하지. 이상적인 관료란 분노도 불공평도 증오도 격정도 없고 사랑도 열광도 없이 오로지 의무 만을 다하네. 관료적 행정은 지식으로 대중을 지배하는 것이지. 전문적 지식, 실무지식, 그리고 이를 은닉함으로써 우월성을 획득 강화한다네.
코가미 : 시빌라 그 자체로군요. 마키시마는 그 우월성을 파괴하여 본질을 드러내려는 것이고.
사이가 : 그가 이 자리에 있다면 어떤식으로 끼어들까?
코가미 : 아마도 베버의 뒤에 푸코나 제러미 벤담으로 받아치겠죠. 판옵티콘, 거대한 감옥.
사이가 : 민감한 질문이지만, 혹시 자네는 마키시마가 자네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가?
코가미 : 그건 잘 모르겠지만 분명 이해할 수 있는 점은 있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 자신의 특이체질을 알아챈 순간 그것을 특권으로 여기는 부류가 아니라는 점. 오히려 소외감으로 느꼈을지도... 추측일 뿐입니다. 본인에게 물어보지 않는 한 사실을 확인할 방법은 없겠죠.
사이가 : 마키시마 본인을 살려두고 물어볼 의사는 없는 게로군.
코가미 : 예.
인간성을 부정 당한, 시스템으로부터 따돌림 당한 아이, 마키시마. 그리고 마키시마 이상으로 고독과 집착, 분노로 사냥에 집중해 온 코가미는 시빌라가 아닌 자신의 의지와 판단으로 그의 본질을 마주했기에 마키시마의 심연도 코가미를 들여다 보게된다. 이 운명적 만남에 대한 상징은 코가미가 병실에서 읽고 있던 책 "암흑의 핵심"으로 살짝 숨겨져 있다. 니체를 빌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고 경고하지만 이미 코가미는 마키시마라는 존재가 자신이 등가의 괴물이 되지 않고서는 잡을 수 없는 존재임을 처음부터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 속에서 책을 읽는 자들은 모두 고민하고 생각하는, 어느 쪽으로든 나아가고 성장하는 존재들이다. 스스로 확신에 가득하여 자신의 생각을 강화하고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독서만을 하는 자들에게 한결같이 마키시마 쇼고는 네메시스가 되어 가차없는 죽음을 선사한다. 한때 자신의 범죄 파트너였지만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인간성을 잃은 토마 코자부로(당시 몸은 공안의 수장 카세이 죠슈)의 지각에 가한 테러, 창의력이 고갈된 상투적인 범죄 흐름으로 접어든 오료 리카코 두 사람의 인격을 상징하는 각각의 책들은 《악덕의 번영》과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 특히 통찰 없는 잔혹함만 탐닉하던 오료 리카코에 대한 실망은 그녀를 자신의 색다른 범죄파트너 센구지 토요히사에게 사냥감으로 던져줄 때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에서 인용한 구절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이 여자의 삶은 야수를 닮아 애처로움이 결핍되어 있었어.
그런 죽음에는 죽은 새에게 바치는 애처로움이면 충분해.
마키시마는 가능하면 제3자의 손을 빌어 심판하기를 즐기는 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잔혹한 처형으로 기억되는 오료 리카코에 대한 센구지 토요히사의 사냥 에피소드 후반, 센구지의 삶을 상징하는 지독한 작품이 등장한다. 전신 의체화를 통해 육신의 노화를 극복한 센구지는 구시대인 20세기 후반부터 100년 넘게 부를 축적해온 유력 인사이자 시빌라 시스템의 책임운영기관 후생성에도 영향력 있는 재벌. 어떤 경로로 그 둘이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애니메이션에서는 생략되어 있지만 불사의 몸에 걸맞는 정신적 유희를 추구하던 센구지는 마키시마로부터 금지된 놀이터와 사냥감을 제공받아 정신적 자극을 유지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마키시마는 센구지를 친구로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센구지는 어느정도 마키시마에 대한 존경심 내지 동류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시대가 금지한 것'을 제공해 준 대가로 마키시마는 충분한 테러자금과 공안의 감시망을 벗어난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받아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었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다른 작품을 합한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죽음이 등장하는 ≪악령≫을 들고 센구지의 자랑스러운 무용담 회상을 듣고 있는 마키시마의 표정에 살짝 스쳐간 것은 '경멸'. ≪악령≫에는 일상을 돌보며 라스콜리니코프를 부활로 이끄는 순수한 구원자 소냐도,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인간정신의 현신인 미시킨 공작도, 열 두명의 사도를 데리고 세상에 빛을 가져올 알료샤 카라마조프도 없다. 음모, 살인, 자살, 방화가 가득한 ≪악령≫의 세계는 숭고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저열한 피비린내 뿐... 바로 이 작품이 센구지 토요히사의 삶을 바라보는 마키시마의 시각인 것이다.
필립 K 딕의 음울한 세계를 빼닮은 사이코패스의 세계관 속에서 주인공인 코가미 신야는 시스템의 수호자나 정의의 사도따위가 아니다. 그도 마키시마 만큼은 아니지만 시빌라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 지킬 가치 없는 시스템을 위해 왜 그렇게까지 자신을 쫓느냐는 마키시마 쇼고의 질문에도, 악에 대한 미움인가 마키시마 개인에 대한 은원인가를 묻던 오랜 동지의 질문에 한결같이 코가미는 "양심"을 말한다. 누구나 아무리 힘든 상황이어도 살아만 있으면 자기 삶을 고민하고 결정할 행복이든 뼛속 깊은 후회든 불행이든 선택하고 누릴 수 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서 그 기회를 빼앗는 죄는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태초의 죄. 마키시마는 인간다운 삶을 앗아간 시빌라를 공격하기 위해 많은 이들을 시험대에 올리고 타인의 가치를 마음껏 판단했으며 그것에 양심이 발동되지 않는 근본적 결핍(면죄체질)을 지닌 자다. 정의실현 같은 말들을 들먹이지 않아도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머리 위에 서서 최소한의 망설임도 없이 장기판의 말처럼 마음대로 타인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을 무력하게 시빌라 시스템 뒤에 숨어 관망할 수 없는 것이 코가미의 양심이다.
양심(Conscience)은 자신이 알고 있는 바(Scientia)를 함께 나눈다(Con)는 라틴어 어원을 갖는다. 이를테면 양심의 원뜻은 "자기 스스로와 나누는 도덕적 성찰"정도가 될까. 오래 전 우리 헌법재판소는 양심에 대하여 "어떠한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있어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질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는 명문장으로 정의하였다. 코가미가 말하는 양심이 바로 지금까지의 자신을 부정할 수 없는 마음, 그 마음이 가르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었다.
'민중에 관심 없던 자살희망 혁명가'는 자신의 예지몽대로 먼 해넘이 아름다운 노을을 끝까지 마중하고, 개와 늑대를 구분하기 어려운 어스름이 드리운 언덕에서 코가미의 심판을 받는다. 자신의 의지로 살인자가 될 수 있는자 만이 자신을 처단할 수 있다던 그의 말대로 양심의 소리를 듣고 그 무게를 인정하며 짊어진 인간, 코가미에 의해 카리스마 넘치는 악인은 서정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존엄한 존재여야 할 법을 가장 멸시하는게 뭔지 알아?
그건 지킬 가치 없는 법률을 만들고 운용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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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존재여야 할 책을 가장 욕보이는게 뭔지 알아?
그건 자기 머리로 판단하지 않고 쓰여진 문자 그대로를 숭배하는 거야.
츠네모리의 양심은 동료에게 그 모든 짐을 짊어지지 않게 하면서 악을 징벌하는 것. 그러나 그 지극히 올바른 양심은 현실에서 깨어지고 부서질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시대의 이상적 시민이 지녔던 해맑음은 누구보다 전진적이면서도 누구보다도 침울한 신중함으로 변했다. (츠네모리 또한 시빌라의 비밀을 알고 있는 위험한 존재. 시즌이 거듭되면서 결국은 많은 책들과 함께 모처에 감금된다.)
책은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키는 혁명가, 테러리스트의 무기인 동시에 평화를 사랑하는 인류의 스승과 시인, 예술가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자기 머리로 고민하지 않는 교조적이고 일방적인 습득, 도구적 지식이 가져온 현대의 비극이 단절 되지 않고 다시 미래의 비극으로 계속 연결하여 배태되는 중이라는 것이 어쩌면 더 잔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The End of Docu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