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할 때 읽어보는 글
이번 주부터 대학원 종강을 맞이해서 그런지
나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수업도, 과제도, 연구 미팅도 잠시 멀어지자
하루가 조금 느슨해졌다.
바쁘게 움직일 때는 미처 들여다보지 않았던 생각들이
그 틈을 타서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내 마음에 비수를 꽂았던 사람들의
표정과 말, 그때의 장면들이 섞여 있었다.
이미 지나간 일들인데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인데
종강이라는 말과 함께
마음도 같이 쉬어도 된다고 착각한 순간,
그 감정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럴 때 나는 유난히 예민해진다.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날카로워지고
사소한 자극에도 반응하게 된다.
생각보다 그 상태는 조용하지 않고 꽤 시끄럽다.
대학원을 다니기 전까지만 해도
공백기를 취준으로 채워가며
이 예민함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시간은 많았고 해야 할 일은 분명한데
결과는 보이지 않던 시기였다.
그때의 나는 나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지금보다 많았다.
생각은 자주 과거로 흘러갔고
예전에 들었던 말들, 이미 끝난 관계들이
지금보다 더 자주 나를 붙잡았다.
그때는 이 예민함을 상태가 아니라 문제라고 생각했다.
괜찮아지지 않는 내가 이상하다고 느꼈고
스스로를 더 몰아붙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는 불안과
이미 지나간 기억들이 겹치면 감정은 쉽게 과열됐다.
그때의 나는 나를 돌보는 데에 상당히 서툴렀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예민함은
약해서가 아니라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흘려보내기로 했다.
괴로웠던 기억이 갑자기 말을 걸어올 때면
시끄럽고 활기찬 뮤지컬 영화나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미드를 틀어놓는다.
집중해서 보지는 않는다.
그냥 화면과 소리가 방 안을 채우게 둔다.
그 상태로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쓴다.
정리되지 않은 문장,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
지금 이 순간의 예민함을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고 적는다.
과장된 캐릭터의 목소리와 빠르게 오가는 대사들이
내 기억을 완전히 밀어내 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감정이 한 방향으로만 쏠리지 않게 잡아준다.
그렇게 쓰다 보면 예민함은 조금씩 힘을 잃는다.
기억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나를 몰아붙이지는 않는다.
이건 감정을 없애는 방법이라기보다는
감정이 지나갈 수 있게 자리를 내어주는 방식에 가깝다.
괜찮아졌다고 느낄 때가
제일 예민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애써 더 단단해지려 하지 않는다.
대신 화면 하나를 켜고 조용히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