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라는 마침표

절교라는 건 이해의 끝이었다

by 수잔


고등학교 2학년, 한 학기 동안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의 관계는 참 길었다.

서로 대학에 가고, 졸업을 하고,

사회인이 되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했다.

나는 늘 그 친구를 배려했다.

혹시라도 내 말 한마디가 상처가 될까,

불편할까 싶어 학교나 진로에 관한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 않았다.

그럴수록 말 한마디에도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더 조심스러웠다.

나는 재수를 선택하며 간절하게 노력했다.

그 해의 시간은 나에게 무겁고 절실했다.

그래서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그 선택이 얼마나 큰 결심과 감내로 이루어진 것인지 알기에

더더욱 타인의 상황을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 했다.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늘 조심스러웠고

서로의 다른 선택과 환경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친구는 나와 많이 달랐다.

때때로 자신의 말이 어떤 무게로 다가오는지를 모른 채 말을 던지곤 했다.

대학생이었던 친구에게 내가 재수 끝나고

이제 진학할 대학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축하한다, 고생했다는 말 대신

친구는 "거기가 더 높은가?"라는 말로 시작을 끊었다. 그리고 만남이 이어질수록 더 자주 등장했다.

"나는 서울 대학 다니는 사람들 하나도 부럽지 않아" 같은 말도

그 자리에 나밖에 없었다면 충분히 나를 향한 말이었을 것이다.

모임 자리에서 다른 친구들의 말을 빌리며

학교나 전공이 뭐든 다 똑같다는 말도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내 마음에 조용한 물결을 일으켰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친구가 삼수를 마치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그 소식을 듣자 그 애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 친구는 왜 그렇게 질질 끌다가 이제 붙은 거야? 그냥 아무 데나 좀 가지, 어차피 나오면 다 똑같은데.”
그 말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단지 마음속이 싸하게 식어갔다.
누군가의 노력을 가볍게 깎아내리는 태도는

결국 내게도 같은 방식으로 향하고 있었음을 그제야 명확히 알았다.

이후 나는 은행에 인턴으로 취업했다.

당시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던 자리였다.

그런데 친구는 나에게 "00이 은행에서 일할 줄은 몰랐다"는 말을 하며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내가 연애를 시작했을 땐

"그 남자 그냥 여자 만나려는 거였던 거 아냐?"라는 말을 던졌다.

고민을 나누기 위해 꺼낸 이야기에

그 친구는 종종 농담처럼 들릴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졌고

그 말들이 내게는 생각보다 깊게 남았다.

이상하게도, 연락은 늘 내가 먼저 했다.

만나자고 제안한 것도, 안부를 물은 것도 대부분 나였다.
그 친구는 언제나 기다리듯 반응했고

내가 멀어지면 대화도 함께 끊겼다.
그건 오랜 친구 사이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기보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만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작은 말들이 쌓여 갔다.


어느 날, 우리 공통 친구 한 명이 대학원 진학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때 그 친구는 “나 드디어 석사 친구 생기는 거야?”라며 들뜬 표정으로 웃었다.

그 모습이 진심 같아서 나도 함께 웃었다.


하지만 몇 달 뒤, 내가 대학원에 합격했다는 근황을 올렸을 때

그 친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와 둘이 만났을 때 대학원에 가게 되었다 말을 꺼냈을 때도

"가방끈이 길어졌네." 이 말 뿐이었다.

축하 한마디 없었지만 그 침묵이 이전의 말보다 훨씬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제야 나는 이 관계가 조금씩 엇갈리고 있음을 확실히 느꼈다.

결정적으로 내가 힘들다고 털어놨을 때

친구는 "은행은 멘탈 강한 사람만 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발 담근 흙탕물 속에서

나만 더럽혀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만남에서 친구는 또 한 번 내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경영학과 나와서 왜 은행에 갔어?"

그 말을 들은 순간 깨달았다. 이 관계는 애초에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다른 기준과 시선으로만 계속 판단해 왔다는 걸.

나는 그 친구의 입장을 신경쓰며 말을 조심하려 했고

혹여나 실수를 할까봐 매번 눈치를 봤었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는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의 속마음을 전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를 향한 날선 말들은 상처로 다가왔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흘러왔고

그 끝이 자연스럽게 달라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다른 친구들의 태도는 온전히 달랐다.

그들은 나의 선택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었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들은 나에 대해 궁금해했고

나에 대해 알기 위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이들의 질문이 날이 서있지 않았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어떤 말이 위로가 되고

어떤 말이 날카롭게 다가오는지를

자연스럽게 헤아릴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문득 그 친구와 10년 동안 유지했던 이 관계가

과연 지금까지 이어질 만큼 건강한 것이었는지 의심하게 됐다.

정말 나를 친구로서 아꼈다면

과연 그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지

나는 그 친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만약 나였다면

절대 친한 친구에게 날선 말들을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절교는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쌓인 말과 시선,

그리고 이해받지 못했다는 감정의 침전이었다.

흙탕물은 건드리지 않으면 그냥 고인 물일 뿐이다.

하지만 그 친구는 자꾸 그 물을 흔들었고

결국 나는 조용히 발을 뺐다.

나는 연락을 끊었다. 사과도, 다툼도 없었다.

누가 옳았는지를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다시는 그 흙탕물을 밟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만 예민한 사람이 되는 상황이 싫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친구의 옆에 더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상처가 되었던 조각을 내 인생에서 잘라내고 싶었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길이라 생각했다.


마음 속 폭풍이 그렇게 지난 후

지금의 나는 너무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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