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은 늘 집에 와서 완성된다
드라마를 보면 등장인물들은
무례한 사람을 마주해도 당황하지 않는다.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논리적인 말 한마디로 정확히 맞대응한다.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저건 연기라서 가능한 거겠지.
아니면 정말 저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 걸까.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장면을 부러워한 적이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의 나는 드라마 속 인물과는 조금 다르다.
무례한 사람을 마주하면 나는 늘 한 박자 늦어진다.
당황한 나머지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도 나지 않고
어떤 말도 바로 나오지 않는다.
적당히 선을 긋는 말도,
차분하게 맞받아칠 문장도
그 순간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 상황을 어버버한 채로 지나 보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집에 돌아와서야 그때 해야 했을 말들이 생각난다.
그때는 왜 아무 말도 못 했을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이미 끝난 장면을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한다.
이번에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부 하면서.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드라마처럼 대본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런 무례에는 이런 말,
저런 시비에는 이 정도 대응.
미리 외워둘 수 있는 문장 몇 줄만 있었어도
이렇게까지 후회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하지만 현실에는 대본이 없다.
무례한 말은 예고 없이 튀어나오고
대사는 항상 집에 와서 완성된다.
무례한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이상한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은 무례한 사람을 싫어한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자신의 말에는 늘 예외를 둔다.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자신이 그 무례한 사람이라 사실 잘 모른다.
대신 타인의 무례함에는 아주 예민하다.
작은 말에도 상처받고 그 말을 오래 붙잡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 말에 상처받았다는 기색을 보이면
그들은 곧바로 말을 바꾼다.
그건 무례가 아니라 칭찬이었다고,
자기는 원래 솔직한 사람일 뿐이라고.
네가 상처받았더라도 그건 사실을 말한 것뿐이라며
문제는 말이 아니라 그 말을 받아들이는 쪽이라고 선을 긋는다.
그 순간 상황은 미묘하게 뒤집힌다.
방금 전까지는 내가 무례한 말을 들은 사람이었는데
어느새 나는 예민하게 굴고 분위기를 망친 사람이 된다.
그래서 더더욱 그 자리에서 말을 잇지 못하게 된다.
무례함에 대해 설명하려 할수록
내 감정만 과장되는 것 같아서 그냥 입을 다물게 된다.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상황을 벗어나고 나면
무례한 사람은 그 자리에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감정은 그렇지 않다.
그 말은 집까지 따라온다.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고
불을 켜는 순간까지
아까의 문장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왜 그때 아무 말도 못 했을까.
왜 늘 이런 상황에서는 늦어질까.
예전의 나는 그 질문을 곧장 나 자신에게 던졌다.
내가 예민한 건 아닐까,
괜히 과하게 받아들인 건 아닐까 하면서.
결국에는 그들의 말이 기준이 되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질문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무례한 말을 한 사람의 태도는 그대로인데,
그 말을 들은 내가 먼저 나를 의심하고 있는 걸까.
그래서 그들의 말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 말들은 사실이나 평가라기보다
그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칭찬이었다는 말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렸고
자신들이 솔직하다는 말은
필터 없이 말해도 된다는 용기라기보다
자기 생각을 한 번 더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는
과신처럼 느껴졌다.
그 말들에는 상대를 향한 배려보다는
자기 기준에 대한 확신이 먼저 있었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보다는
자기가 옳다는 감각을 지키는 쪽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래서 그 무례함은
순간의 감정이나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
그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그대로 흘러나온 결과처럼 느껴졌다.
그제야 조금 분리할 수 있었다.
그 말이 나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그 사람의 내부 상태에서 나온 발화라는 것을.
그렇게 생각하니 그 말이 차지하던 자리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내가 곱씹어야 할 문장이 아니라
굳이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는 말이라는 판단이 생겼다.
그동안 나는 그 말의 의미를 해석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사실인지 아닌지,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은 없는지
혼자서 끝없는 검토를 반복하면서.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먼저 보게 되었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아무 필터 없이 튀어나온 건 아닐지,
자신들이 무조건 옳다는 그릇된 생각으로 한 말은 아닐지.
그렇게 출처를 바꾸어 생각하자
그 말은 더 이상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이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그 말에 상처받는다.
그 감정까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상처의 이유를 나에게서만 찾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생각보다 나를 많이 가볍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