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에도 논문과 함께하다
3월 10일,
오리엔테이션 기간의 마지막날이다.
그래서인지 본격적으로 대학원 수업이 시작되었다.
오늘까지가 수강신청 정정 기간이라 어려울 것 같은 수업이면 바로 드랍하면 되는 날이었다.
그래도 월요일은 오전 수업이 있는 유일한 날이라 아침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강의실로 향했다.
월요일과 아침 수업의 조합이란 대학교 4년을 버틴 나도 여전히 버겁다.
오전 수업은 팀플이 있는 수업이라 오티 들어보고
정말 못하겠다 싶으면 드랍할 생각이었기에
강의실에 자리를 잡고 가벼운 마음으로 노트북을 열었다.
교수님께서 들어오시자마자 출석을 부르셨고
앞으로의 수업 내용을 간단히 설명해주신 직후였다.
갑자기 논문 발표 팀이 구성되기 시작했고, 난 얼떨결에 2주차와 4주차 발표를 맡게 되었다.
아예 드랍도 못하게 탐플 구성이 진행되는 건가 싶었지만
어차피 오늘까지가 정정기간이니 부담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나한테 이런일이...
교수님이 내 이름을 외우셨다.
그렇게 난 월요일 오전 수업을 들어야 할 운명에 놓여졌고
일주일에 두번 대학원을 가야 하는 시간표가 완성되었다.
겨우 9학점인 것 같아도 막상 수업을 들으니 9학점이 18학점 같았다.
대학원 수업은 학부 수업과 차원이 달랐다.
월요일 수업에서 내가 맡은 논문 발표가 바로 다음주였기에
공강이 있는 날이면 하루종일 처음 보는 논문을 몇 번을 읽었다.
내가 이렇게 영어를 못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도통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자괴감이 들었다.
같은 팀원한테 미안한 마음과 발표할 때 한마디도 못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을 누르고
번역기를 몇 번이나 돌리며 논문 내용을 해석했다.
그래도 모르겠다. 경영학 학사를 졸업과 동시에 대학교 사물함에 두고 온 느낌이었다.
논문에 대한 압박감으로 인해 이번주에 있었던 내 생일에도 난 논문만 읽었다.
정말 너무한다. 드랍하지 못한 나 자신과 내 이름을 바로 외우신 교수님이 원망스럽다.
논문을 생일 선물로 받은 것 마냥 하루종일 소중하게 꼭 쥐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내가 뭘 알아야 발표를 할테니 말이다.
분명히 학부 수업에서 배운 내용인데도 모르겠다.
4년 동안 열심히 공부한 모든 지식을 정말 대학교에 두고 온 것 같았다.
나름 학점에 자신있었던 나는 기가 잔뜩 죽었다.
3월 13일 목요일은 통계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 기말고사를 보자마자 전부 날아가버린 통계 지식이 그리워졌다.
기초 수업이라지만 나에게는 기초가 아닌 것 같은 불편함이 멤돌았다.
다행히 30분 일찍 수업이 끝났고 버스를 타러 강의실을 뛰쳐나왔다.
작년 12월 이후 공부라는 존재와 멀어졌기 때문인가.
머리가 너무 아팠다.
목요일도 역시나 집에가서 논문을 읽어야 했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만 참자는 마음으로 겨우 버티는 중이다.
지금도, 내일도, 주말도.
나를 더 괴롭게 만드는건 이런 생활이 앞으로 2년 가까이 남았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