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으로 살기 : 2주차

넓은 세상으로 향하다

by 수잔


2주차에 접어들며 난생처음으로 논문 발표를 했다.

지난주 내내 영어로 도배된 논문을 읽으며 발표를 준비했고

생일날에도 논문과 함께 했었다.

논문을 보자마자 처음에 '뭔 소리야?' 싶었지만

뭐 어쩌겠나... 내가 해야 할 일이기에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발표가 다가올수록 긴장감은 커졌고

혹시나 첫 발표를 망쳐버리지 않을까 한없이 걱정하며

스스로에게 온갖 부담감을 안겨줬다.

이왕 대학원에 들어온거 끝까지 버티겠다는 집념이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압박감으로 돌아올 줄은 예상 못했다.





학부 시절에 발표를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발표 내용이 정말 쉬운 데다가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 모두

내 발표를 전혀 듣지 않고 노트북으로 카*오톡만 했기 때문에

기억상 별로 긴장했던 적은 없었다.


대학원에서도 아무도 내 발표를 듣지 않기를 바라며

긴장되는 마음을 다독이며 강의실에 들어섰다.


N번의 면접을 거친 나인데도 발표는 언제나 떨리는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내 발표를 듣고 있는 학생들의 얼굴을 보며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 내용을 강의하듯이 발표하고 싶었다.


하지만 인생은 역시 계획대로 되지를 않는다.

너무 떨렸던 나머지 내가 작성해 갔던 스크립트를 그대로 읽었다.

결국 학생분들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고개를 아래로 떨군 채 대본만 읽어버렸다.

심지어 말을 하다가 중간에 얼버무리기도 했다.

'난 정말 왜 이럴까?'

자괴감이 들었다. 그동안 노력했던 과거의 나에게 너무 미안했다.

다행히 유쾌하신 교수님께서 중간중간에 부연설명을 해주셔서

무사히 첫 번째 논문 발표가 끝났다.


발표가 끝나자마자 긴장이 풀리며 안도했다.

면접 때도 이렇게까지는 안 떨었던 것 같은데.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원래 이렇게 힘들었나 싶었다.

오늘 발표가 끝났다고 해도 방심해서는 절대 안 되었다.


다다음주에 논문 발표 또 있다.

무엇보다도 교수님께서 내 이름을 외우신 것 같았다.

결국 발표가 끝난 직후의 안도감은 다시 부담감으로 변했다.


수업이 끝난 후 점심시간이었지만 입맛이 싹 사라져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 큰일 날 것 같았다.

만족스럽지 못한 발표만이 머릿속에서 맴돌아 괴로웠다.




정말이지 학부 시절과 차원이 다른 대학원 수업이다.

질리도록 논문 발표를 해서 하루라도 빨리 익숙해져버리고 싶은 내 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내 순서가 끝난 후 박사과정에 계신 분들의 발표로 이어졌다.

전문적인 설명과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여유가 내 눈에도 선명하게 보였다.

내가 그동안 굉장히 좁은 세상에 살았구나 싶었다.

세상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물론 각자 대학원에 들어온 동기와 살아온 배경이 전부 다르겠지만

이날 대학원이라는 공간에서 봤던 사람들은 모두 굉장했다.

로스쿨이라는 한 방향의 길만 바라보다가 이제야 주변을 둘러본 느낌이었다.

세상은 한없이 넓었고, 내가 배워야 할 것도 그만큼 많았다.


무엇보다 환한 광경을 맞닥뜨린 느낌도 들었다.

실은 온갖 경험 끝에 좌절을 겪고 대학원에 합격한 후

한동안 매일 부정적인 생각에 지배당한 적이 있었다.

밤마다 잠들기 전에 '이곳을 졸업해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면 어쩌나'하며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느라 정신이 피폐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 주 논문 발표 수업이 끝난 후 교수님의 격려를 받자마자

나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것 같은 환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교수님께서 나를 지도 학생으로 받아주실지는

교수님을 제외하고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대학원에 열심히 다니는 것 밖에는 없으니

일단 모든 일들에 부딪혀 보기로 했다.




이번 주는 이렇게 무사히 대학원에서 생존을 마쳤다.

같이 발표를 준비하며 부담감에 파랗게 질린 나를 격려해 주신 선배님과

발표 중간중간에 부연 설명을 해주시며 나의 긴장을 풀어주신 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

다음에도 뵐 수 있기를 바라며.


수선화 도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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