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으로 살기 : 8주차

종강 생각에 점점 설레는 일상

by 수잔



대학원에 들어온 지 어느덧 8주차가 되어버렸다.

겨우 2달 정도 지났다고 생각했지만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대학원 신입생 입장에서 혼돈 그 자체였던 수강신청,

서툴지만 벅찼던 논문 발표,

긴장감이 맴돌았던 지도교수님 컨텍,

대학원에서도 피할 수 없는 두 얼굴의 사람들까지.

이 모든 일들이 한꺼번에 나를 향해 돌진해 왔고

결국 나는 ‘번아웃’이라는 단어의 진짜 의미를 체감하게 되었다.


이번 주에는 2번의 중간발표가 있었다.

직접 연구 주제를 설계하고, 분석하고, 발표하는 시간.

대학원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하지만 연구를 하고 발표를 하면서 나에게 남은 것은

있는 대로 떨어진 자존감뿐이었다.

정말이었다.

열심히 준비했던 모든 게 물거품이 되어버리며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난 그동안 잠을 줄여가면서 뭘 그렇게 열심히 한 걸까.


20명이 넘는 학생들 사이에서 나만 뒤처지는 느낌.

남들은 여유 있게 발표하고, 교수님의 질문에도 능숙하게 대답한다.

그들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지고

결국 어느 순간엔 존재감마저 흐려지는 기분이었다.

그들의 여유 있게 발표하는 모습이 점점 거대해지며

순식간에 작아져버린 나를 집어삼켰다.


처음으로 대학원에서 ‘열등감’ 마음속 깊숙이 내려앉았다.


교수님 앞에서 자신 있게 발표하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누구보다 열심히 연구 주제를 정하고

연구 설계를 했던 모든 내 모습은 사실이었을까?




입학 직후에 전공 경험이 있었기에 자신만만했던 내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학부 시절 고생했던 시간들이 오히려 따뜻하게 떠오른다.

그땐 몰랐던 평온과 여유.

대학교 동기들과 선배들이 무지하게 보고 싶어 졌다.

학부시절에 경험했던 모든 어려움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았다.


원래 사람이 현재가 너무 힘들어지면

과거를 미화해서라도 자신을 속이곤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대학원 입학 후 8주차에 접어든 나도 그랬다.

지금도 옛 기억들이 추억이 되어 그립게만 느껴지는 착각을 하고 있다.


지금 드는 생각은 단 하나뿐이다.

'너무 힘들다.'

대학교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이 모든 고통들을 털어놓고 싶다.

동시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력감이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나 이제 어떻게 버티지?'




앞으로 1번의 중간발표가 남아 있다.

이제 떨어질 자존감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주제는 뭐로 해야 할지,

방법은 또 어떻게 세워야 할지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연구에서 답을 찾기란 가능할까.

벌써 이래도 되나 싶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은 연구도, 연구실도, 사람도 다 싫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 아무것도 못하겠다.

두려움과 무력감이 합쳐지면 정확히 이런 느낌이다.


대학원 생활은 정말 쉽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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