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밥그릇은 나만 챙길 수 있다.
대학원에서도 '족보'가 돌아다니고 있고
족보의 존재가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공유하고자 한다.
대학생이었던 시절
우리 학과 교수님들은 족보의 의미가 무색할 만큼
매 학기 시험 문제를 다르게 내셨다.
매번 시험문제가 업데이트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난 족보에 대해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학원에서 족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몰랐다.
이번 주에는 중간고사를 준비하며 동기들과 연락을 했다.
특히 친해진 동기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300장이 넘는 시험 범위에 대해 한탄했다.
동기는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은 확인하고 나머지는 보지 않겠다며
나한테 시험공부 얼마나 했는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물어봤다.
그리고는 본인의 처지를 한탄하며 힘든 기색을 내비쳤다.
순진했던 나는 시험 준비하는 과정이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정말 큰 착각을 했다.
휘몰아치듯 어려운 문제들이 지나갔다.
같은 수업을 듣고 있는 랩실 선배, 동기와 함께
중간고사를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때마침석사 3학기 선배가 우리 옆으로 다가왔고
내 랩실 선배는 3학기 선배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저번에 주신 자료 덕분에 0점은 면했어요."
난 처음에 이 말을 듣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자료? 무슨 자료?'
온갖 생각들이 순식간에 나를 지배했고
나는 한 단어를 떠올렸다
'족보'
족보가 대학원에서도 돌아다니고 있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랩실 선배가 나에게도 족보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유 없는 서운함이 차올랐다.
대학원에서도 족보의 존재감은 있었다.
난 그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랩실 선배와 헤어진 후 동기와 버스 정류장에 가는 길에
나는 나지막이 동기한테 물어봤다.
"언니 00 수업에 족보 있는 거 알았어?"
나랑 시험 기간에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던 동기였기에
당연히 그녀도 몰랐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동기한테서 돌아온 대답은
"음... 족보는 모르겠고 나도 따로 받은 자료가 있긴 했어.
거기서 그대로 나왔더라."
전날 공부를 시작했다며 나에게 신세한탄을 하던
동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족보가 있으니 전날 벼락치기가 가능했나 보다.
내가 멍청했다. 나만 몰랐다.
그래서 다들 시험 시작한 지 10분 만에
문제를 다 풀고 강의실을 박차고 나갔던 걸까.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우울함에 견딜 수가 없었다.
대학원 헤 합격해서 눈물이 나던 순간부터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동기들과 학교 정문을 나서는 순간의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들이 스쳤다.
나만 뒤처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랩실을 정하고 교수님과 면담을 시작할 때까지는
나는 잘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 착각이었다.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앞서가고 있었다.
자기 밥그릇을 빠르게 챙겨가고 있었다.
이번 주는 나에게 다시 한번 절망을 안겨줬다.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어떻게 대학원생으로서 알차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내 밥그릇은 나만 챙길 수 있다는 사실과
남들보다 빠른 눈치와 남들보다 많은 욕심이 필요하는 것이다.
이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랩실 선배들과 동기들은 모두 경쟁자다.
그래야 내 마음이라도 편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