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흉터는 평생 갖고 가는 것
중년을 지나면서 나의 큰 관심사는 ‘곱게 늙기’이다. 내 기준에서 몸도 마음도 곱게 늙을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갓생일 것이다. 그러나 나이 들면 육신은 기능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니 그 부분은 얼른 받아 들어야 스트레스가 덜 할 것 같다.
허나 늙은이의 마음만은, 영혼은 원망 없이 온화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살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애써 내 상처의 원인을 찾아냈고, 받아들이고, 나를 이해하고 상대를 용서하는 단계까지 이를 수 있었다. 이제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도 만날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의 인생에도 애잔한 마음이 든다.
들끓던 마음은 고요해졌고, 설거지를 하다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을 쏟는 이상증세(?)도 사라졌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하다는 내 나름의 신념도 격파되었다. 돌아보니 모두가 아픈 인생이더라.
그런데
얼마 전 친구가 밥을 먹자며 미리 약속을 잡아놓고는 당일에 일이 생겼다며 펑크를 냈다. 종종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은 시간이 좀 지나자 갑자기 화가 나더니 기분이 가라앉았다.
이제 나는 이런 미숙한(?) 나를 달랠 줄 알기에 얼른 식사를 하고, 운동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했다. 웬만하면 되는데.. 그날은 그걸로 달래 지지 않았다.
아, 지금 나는 외롭구나. 그래, 외로운 감정이 맞았다. 온종일 집에 혼자 있거나 온종일 혼자 일을 한다. 어쩌다 잡히는 약속이 있는 날은 미리 준비를 한다.
그런데 나는 외로운(?) 삶도 제법 잘 꾸려왔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편이고, 홀로 있는 시간을 잘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혹독한 훈련의 결과이다.
내가 외로움을 이토록 싫어하던 사람이란 말이던가? 곰곰 생각해 보았다. 사람이 살다 보면 누구나 외로움과 고통을 느낀다. 그게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걸 아는 내가 이렇게 까지 기분이 가라앉는다고? 언젠가부터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1+1으로 들러붙는 두려운 생각을 하나 갖게 되었다.
결국 나만 혼자가 될 거라는, 그래서 결론은 내가 가장 외로울 거라는 두려움.. 아니, 그건 공포가 맞을 것 같다.
“우리랑 연락을 안 하고 지낸다면 네가 제일 외로울 거야.”
이 말을 들은 날부터 나에게 외로움은 이전에 즐기던 맛이 아니라 변질되었다. 외로움은 여전히 쓰지만 이전에는 연한 아메리카노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그 말을 들은 이후에는 에스프레소 투샷-나는 전혀 즐길 수 없는- 쯤은 되는 맛인 것 같다.
외로운 날 그 말로 인해 동반되는 두려움과 불안이 우울함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 그런 말은 좀 흘려 들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런 말은 좀 쉽게 잊어버렸으면 좋았으련만.
상처와 두려움을 주려는 특정한 의도를 가진 비수를 상대하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내가 나도 모르게
‘그래, 맞아.. 내가 그렇지 뭐..’하고
그 말에 수긍하고 동조해 버리면 회복은 영영 불가능하고 남 탓, 원망만 남은 늙은이가 될 거다. 그러니 곱게 늙고 싶으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내 안에 미숙한 나를 잘 이해시키고 달래주어야 한다.
날카로운 칼날에 이미 살점은 잘려 나갔다. 하지만 상처는 이전처럼 피가 나고 곪고 쓰리고 아프지 않다. 이미 그 상처에는 새살이 돋았고, 더 이상 쓰라림은 없다. 이제는 모양과 빛깔만 좀 다를 뿐이다. 모양이 별루인 그 살도 이제 내 몸의 일부인 것이다.
이제 나는 불안한 나를 달랜다. 더는 그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인생은 원래 다
조금씩 외로운 거야.
그리고 지금 너에게는 사랑하는
남편도 있고,
딸들도 있고,
친구들도 있지.
무엇보다 너를
한결 같이 사랑하시고
24시간, 평생 밀착 동행을
약속하신 하나님이 계시잖아.
그러니
그들이 없다고
네가 가장 외로울 거라던
그 말은
그 어떤 경우에도
옳지 않아. 두려워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