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해(sunny)
“안녕히 주무셨어요?”
같은 병실을 쓰는 일면식만 있던 유방암 환자 60대 L에게 먼저 아침 인사를 건넸다.
“잘 못 잤어.”
“저도 잘 못 잤어요.”
L은 유방암 수술을 앞둔 터라 긴장감과 걱정 때문에 잠을 못 잤고
나는 밤새 들락날락 하는 간호사 선생님과 밝은 불빛 때문에 잠을 못 잤다.
아침을 먹고 나니 유방외과 교수님께서 회진을 오셨다.
이제 나의 퇴원여부를 결정하는 건 주치의인 유방외과 교수님이 아닌 성형외과로 넘어가서 그런지 딱히 할 말이 없어 보였다.
오늘은 같은 병실을 쓰는 60대 L의 유방암 수술이 잡혀 있기에 걱정하지 마시고 편하게 계시라는 얘기가 오갔다.
뒤이어 성형외과 교수님이 오셨고 역시나 나와는 짧게 몸 상태를 점검 한 후, 오전에 진료실에 와서 소독하라는 말을 남긴 채 옆 침대의 60대 L에게 갔다.
(전공의가 파업 중인 2024년 3월이었다.)
“전공의가 없어서 제가 직접 수술동의서를 받으러 왔습니다.”
“여기 싸인해 주시면 됩니다.”
“오늘 수술은 어떻게 진행되죠?”
“하...외래에서 다 설명 드렸었는데...”
“유방외과 K교수님께서 우측 유방 절제 후 제가 들어가서 실리콘 삽입 후 봉합 할 예정입니다. 집도의가 바뀔 일은 없을 겁니다.”
“이제 여기에 싸인해 주시면 됩니다.”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니 성형외과 교수님은 이미 결정 된 수술방법을 또 물어보니 바쁜데 발목이 잡힌 상황에 짜증이 나 보였고
환자인 60대 L은 수술 전 긴장해서 그런지 무슨 말을 해도 귀에 안 들어와 보였다.
L은 기운이 없어 보이기도 했고 남편분과 얘기 나누시라고 자리를 비켜 드릴 겸 나는 병실 밖으로 나와 설렁설렁 복도를 걸었다.
마침, 4인실 병실인데 모두 퇴원하여 나와 L 이렇게 둘 만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오후면 또 새로운 환자가 오겠지만
오늘은 좀 따뜻한 거 같은데...
입원 한 날이 3월 초인데 지금은 3월 중순이니 그 사이 날씨가 부쩍 따뜻해졌다.
그렇게 바깥공기를 맞으며 일부러 먼 길로 돌아서 성형외과 진료실로 갔다.
오늘은 교수님 외래 진료가 없는 날이라 대기실은 한산했고 기다림 없이 바로 들어갔다.
수술한 부위의 거즈를 떼어 내어 소독 한 후, 피주머니를 살펴 보셨다.
“예정대로 내일 퇴원하셔도 되고, 안전하게 하루 더 있다가 퇴원하셔도 됩니다. 젊은 분들은 빨리 퇴원하고 싶어 하셔서”
“단, 내일 퇴원하실 경우엔 피주머니를 떼지 않고 가시는 것으로 집에서 어떻게 소독 하는지는 간호사가 알려줄 거예요.”
“네, 피주머니 가지고 내일 퇴원하겠습니다.”
“환자분께서 원하시는 퇴원 날짜로 병동에 말해 놓을게요.”
병원에 하루 더 입원하여 피주머니를 빼고 가는 게 나도 교수님도 서로가 안전한 상황이었다.
이제 병원 생활도 얼추 적응해서 어제까지만 해도 조금 더 입원해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공용 샤워실 이면서 상처 부위에 물이 들어 갈까봐 조심조심 해서 씻고, 외출도 못하는 건 참을 수 있었다.
4시간 간격으로 간호사 선생님께서 나의 피주머니를 체크하러 오셨는데 밤에도 예외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새벽마다 나를 깨웠고 피가 많이 고이면 주사기로 빼주시면서 11일째 잠을 제대로 못 자니 피곤이 축적되었다.
집에 가서 아무 방해 없이 편히 자고 싶은 마음에 피주머니를 달고서라도 퇴원을 하고 싶어졌다.
병실로 돌아오니 “퇴원예고” 가 붙었다.
아싸!!
엄마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수술 전날 오셔서 입원 4일째에 가신 후로 한 번도 오지 않으셨는데 퇴원 때는 오겠다고 하셨다.
퇴원하면서 짐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나 혼자 살고 있는 수원집으로 갈 것이기에 엄마에게 괜한 발걸음 하지 말라며 혼자 퇴원수속을 밟는 것으로 밀어 붙였다.
같은 병실을 쓰는 60대 유방암 환자 L이 오전 11시경 수술실로 올라갔다.
수술은 6시간 정도 걸리니 5시쯤 내려 와야 하는데 6시 30분이 다 되어서야 병실로 돌아왔다.
수술이 예정보다 1시간 30분이나 더 걸렸다.
병실에 내려와서는 미워하는 남편의 부축을 받아 베개를 베고 누우셨다.
수술이 잘 못 돼서 늦어지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이다.
아직은 힘이 드신 지 몇 마디 말씀하시는 것도 버거워 보여 나는 “수술 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한 마디만 남긴 채 내 자리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도 별 일 없이 무사히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