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거 같으면서도 익숙한, 익숙한 듯하면서도 새로움
lelabo on wheels : 공간의 확장과 대중성
르 라보의 부티크를 트럭에 고스란히 옮겨 브랜드의 철학과 맞닿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팝업 프로젝트
코로나 시대에 많은 문화들이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배달의 빠른 시장 점유율부터 재택근무, 재택수업 등 공간의 확장이 더뎌진 듯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평일, 주말 할 거 없이 핫플레이스들은 연일 웨이팅에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이제는 미리 찾아보고 가지 않으면 한두 시간은 그냥 길바닥에 버릴 수도 있는 라이프스타일이 되었다.
강남역, 테헤란로와 다르게 핫플레이스가 형성되는 곳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걷고 싶은 곳들’이라는 거다.
강남역과 테헤란로를 걷고 있다도 생각해보자. 그냥 삭막한 고층 빌딩 숲에서 하늘은 탁 틔여 있지도 않고 가운데로는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다.
상상만 해도 월요일 아침 출근길이 떠오른다 나는.
반대로 경복궁역에 내려 서촌 초입 길을 걸어 통인시장을 거쳐 영추문을 지나 청와대 입구 쪽 푸른 은행나무 길을 지나 북촌 델픽에서 진행 중인 르 라보 쇼룸을 간다고 생각해보자. 그전에 -주제와는 상관 없지만 이야기가 조금 옆 길로 새는 것을 허락한다면- 경복궁 뒷 청와대 길은 얼마 전에 개방을 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다. 동네 주민인 나로서는 동네가 활성화돼서 정말 좋기도 하지만 러닝을 그 코스로 뛰던 유일한 나의 호흡과 발소리, 바람만 존재하던 시간이 조금은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 코스는 잘 모르던 사람들이 많은데 이젠 누구나 아는 길이 될 것이다. 경복궁을 들릴 계획이라면 이 코스를 꼭 걸어보길 바란다.
관심 없던 이성과 걸어도 미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동화 같은 곳이다. 물론 나는 이성과 걸어 본 적은 없지만 말이야 왠지 그럴 것만 같은 기분
테헤란로를 걸을 때와 서촌을 걸을 때 받는 기분은 확연히 다르다. 적어도 나는.
왜 일까?
이 이유는 바로 하늘과 자동차가 관련이 깊다는 생각이 든다.
걷다가 우연히 마주한 하늘을 보면 정말 내 공간이 되는 듯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 유현준 교수님 유튜브 채널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그 공간을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고개를 드는 겁니다.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보고 있으면 그 공간이 온전히 내 것이 돼요.’
이 말에 나는 충분한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루프탑 카페를 가면 하염없이 하늘만 보게 되지 않는가?
또한 걷고 싶은 길이 되기 위해서는 차량의 방해가 최소화돼야 한다. 심리적으로 나는 압구정 로데오에서 길을 걸을 때 항상 ‘뒤’를 의식하게 된다.
골목골목마다 모두 차량 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차가 오나 안 오나 내가 길을 막고 있나?라는 생각이 정신을 사로잡느라 인간의 당연한 행동인 ‘걸을 때’ 마저도 차량을 신경 쓰게 돼서 그런 곳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기 마련이다.
반대로 이전에 말한 서촌이나 영추문 초입길은 인도와 차도가 정확히 구분되어 있어 걸을 때 그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을 수 있다
그 길과 하늘이 온전히 내 공간이 되는 것이란 이야기다.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핫플이라고 가는 곳들 망원동, 가로수길, 한남동, 신용산 등등 모두 차량의 제한이 어느 정도 있으며 고개를 들면 하늘을 볼 수 있는 곳들이다.
르 라보는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여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끼고 싶다. 그리고 중구 위쪽으로는 르 라보 매장이 없다.) 걷고 싶은 거리 북촌 계동길에 팝업 스토어를 오픈한 듯하다. 이런 심리가 소비자들에게 신선하며, 공간의 제약들을 깨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지 나는 다음 바퀴 위의 르 라보가 벌써 궁금해진다.
오히려 공간에 경험을 촉진시켜 버린 셈이란 거다. 공간, 사람을 만나는 데에 제약이 생기니 오히려 한 번을 나가더라도 제대로 된 멋있는, 의미 있는 공간을 경험 하자는 내재적 성향이 자리 잡힌 거 같다.
이번 르 라보의 콘셉트는 바로 ‘le labo on wheels’: 바퀴 위의 르 라보
르 라보 쇼룸에 진열되어 있는 제품들을 트럭에 옮겨 움직이는 쇼룸을 만든 것이다. 한 번만 생각해보면 푸드트럭과 같은 원리인데 '르 라보 답게' 이번 프로젝트도 정말 신선 했다 향수 쇼룸이 움직이다니...
기획과 브랜딩은 직관적이면서도 나름에 의미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라는 단어는 또 다른 단어로 풀이한다면 나는 ‘대중’이라 하고 싶다.
대중들은 이색적인 거, 특이한 거, 어려운 거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아니지 ‘익숙해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예를 들자면?
개인 카페가 활발해질 때 흰색 페인트로만 벽을 도배한 카페들이 생겨났다. 이때의 반응들은 그다지 탐탁지는 않았었다, 왜냐면 누가 봐도 청소하기 힘들 거 같고 쏟으면 눈치 보이고 너무 새하얗니.. 튈 거 같고. 또 번화가 지하철 역에 근접 한 것도 아니고 걸어서 들어가야하고 찾아야 하니.. 접근성의 의문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보니 너무 이쁘고 화사한 느낌 연출이 가능한 걸 알고부터는 우후죽순 생겨났으며, 오히려 걷고 싶은 길을 조성하고 상권이 형성되며 하나의 또 다른 공간을 형성했다.
또 다른 대표적인 예로는 크로플을 들고 싶다.
금호동 한 카페에서 만들 크로플은 정말 익숙한 크로와상을 익숙한 와플기에 구워 조금은 생소한 비주얼인 크로플이 탄생했다.
이게 정말 대 히트를 쳤지 않았을까. 아마 지금 현시점에서 크로플은 안 먹어본 사람은 그냥 카페를 안 가본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소비자들은 이런 걸 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새로운 거 같으면서도 한 번만 생각해보면 익숙한, 익숙한 듯하면서도 새로운 마치 몇 년 전 대히트를 쳤던 디저트 '크로플'처럼 말이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강북쪽에는 한남점을 제외하고는 르 라보 매장이 없다. 한국적인 문화가 스며들어 있는 북촌 계동에 유명 갤러리에서 팝업을 시작을 했는데
공간에 제약이 생기며 많은 사람들이 경험을 중요시하게 된 소비자들의 심리를 르 라보가 익숙하면서도 조금은 새로운 것을 잘 접목 시킨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든다.
트럭 콘셉트부터 공간 선택, 그리고 라벨링에 조향 한 쇼룸의 위치를 적어주는데 ‘ on wheels’이라고 기재해준다 바퀴 위에서 만들어졌다는..
이런 별거 아닌 디테일이 나의 감성을 증폭시킨다.
어차피 또 다른 곳에서 같은 팝업은 진행될 것이며 똑같이 라벨링에는 on wheels이라고 적힐 것이다.
하지만 내가 오늘 여기서 구매한 on wheels은 오직 오늘, 오직 나만이 산 향수이기 때문에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며 이런 감정적 혜택과 공간의 경험은 또 다른 매력을 줄 거라는 기대감을 만들게 된다.
르 라보가 새롭게 시작한 이 프로젝트처럼 우리도 언제 어디서 예측할지 모르는 그렇다고 불편한 게 아닌 얘가 어떤 멋진 일을 해낼까? 라는 기대감을 심어주는 사람.
비밀이 많은 사람,
가진 것이 많으면서 비밀도 많은 한 번에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 여유를 가진 사람,
자꾸 궁금증을 유발하는 사람
마치 상상 속 이상형처럼, 롤모델, 오랜 허상과도 같은 꿈처럼 사람이 어떤 것에 가장 흥미를 느낄 때는 그것에 대해 완전히 알지 못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