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거라면 솔직해지기라도 해라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는 것,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행동이 곧 아는 것이다.
이전 글 하루키의 문장을 보면 ‘타인에 대해서는 적당히 뭐라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나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는 없다’는 말처럼 우리는 피하고 싶은 순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감정들 앞에 굴복하는 순간. 대다수의 사람들은 -잘못 깎은 손톱보다도 더 쓸모없는- 핑계들을 나열하며 부정적인 감정들을 회피하려 한다.
쓸모없는 핑계를 들은 타인이 정말 모르는 것인지,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인지는 알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대 스스로에겐 다신 자라지 않는 손톱을 바라보는 것 보다도 까칠한 시선은 없을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들 앞에서 회피하고 핑계 대고 남 탓을 하고 저건 저래서 안 했어. 이건 이래서 별로야 와 같은 지긋지긋한 자기 방어를 한 후에 형성되는 비가 쏟아지기 직전에 하늘 같은 불편한 기류는 본인들이 더 잘 느끼지 않는가? 나 역시도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감정, 나만 간직해야 하는, 19호실 취향의 서랍처럼, 깊은 대화 앞에서 닫치는 안전장치와도 같은 방어기제들이 있었다. 여전히 솔직해지는 것은 처음 만난 이성과도 같이 어색하고 대화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지만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해주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가야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 다움’을 찾아야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질문과 이유는 사유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곧 나다움을 찾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그냥’이라는 단어로 나열하고 싶었던 감정과 생각, 이유들을 함축시키지 마라. <나다움>을 찾기 위해선 안목을 가져야 하고, 이 안목을 가지려면 현명해야 하는데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질문이 필요하다. 질문이 곧 답이 되고 답이 곧 이유이자 행동 사유이기 때문이다.
-단점, 유약한 것이 많은 사람.
“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기로 숨기지 않기로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 다는 것을 깨닫고 난 이후로 마음이 훨씬 여유롭고 봄의 벚꽃길처럼 풍요로워졌다.” 어느 순간 3년 정도 된 거 같은데 만나던 사람이 굉장히 솔직했었다. 심지어 자신의 핸드폰 비밀번호도 설정을 하지 않는 부분이….. 별 거 아니지만 매력적이었다.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다만 허락만 해준다면- 정말 ‘날 것’ 그대로의 솔직함이었다. 그때 그 사람의 행동 제스처 눈빛 손끝의 매무새까지 말이다. 주스 유리병에서 새어 나온 산성분처럼 나의 정신과 몸에 스며들었다. 결정적으로 이러한 솔직함을 피력해주는 일이 있었다. 일할 때도 너무 솔직한 나머지 주문을 까먹어서 손님분이 주문 들어간 게 맞는지 확인을 부탁한 상황에서도 나는 ‘아 너무 바쁜 나머지 까먹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바로 준비 도와드릴게요’라는 말을 했던 일이 여전히 깊은 골짜기처럼 자리 잡고 있다. 나중에야 들은 이야기지만 그때 먼저 잊어버렸는데 죄송하다고 말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실수고 나의 미흡함으로 인하여 손님분이 피해를 본 상황에서도 오히려 솔직하게 해 주셔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로는 우선 나의 감정을 지나치지 말고 속이지 말자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이런 일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인간관계에 있어서, 이성 역시. 취약함을 먼저 드러나고 취약함은 숨기고 피하고 ‘마주하지 않을 감정’이 아닌 타인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신뢰를 심어줄 훌륭한 도구다. 흔히들 완벽함과 완전함, 단단함을 보여주고 취약함과 불편함은 숨겨야 신뢰를 얻을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의 유약함을 솔직히 보여주고 부족함을 아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더 연다. 이는 곧 아는 것은 안다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으로 이 솔직한 행동 자체가 곧 아는 것이다.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된 것들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
개리비숍 시작의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