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시중 시녀 구합니다.
식물 사랑 이야기
어김없이 오늘도 물시중을 든다. 시든 꽃을 똑똑 따주고 꽃대 올라온 화분에는 흠뻑 물을 준다. 꽃 피울 시기에는 물이 보약이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텃밭 가꾸는 일도 즐겁지만 작은 화분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행복하다. 매일 꽃들은 하나씩 힘을 잃어간다. 시든 꽃은 아름다움을 잃고 새로 피는 꽃에 그 자리를 내어줌으로 생명을 이어간다.
몇 해 전, 병환으로 누워계신 친정아버지께 국화를 선물해 드렸다. 그해 아버지는 천국에 가셨지만, 국화는 올해도 물시중을 받으며 튼튼하게 자라고 있다. 매일 물로 흠뻑 샤워를 해줘야 개미들과 진딧물로부터 지켜줄 수 있다. 참 신기한 것은 식물의 생장점을 떼어내야 많은 곁가지가 나오고 더 풍성해진다는 것이다. 매몰차지만 국화 생장점을 따주었다. 며칠 후 주변에 소복이 새순이 올라와 앞다투어 고개를 내민다. 올가을엔 풍성한 국화가 만발할 것이다. 해마다 피는 국화를 ‘아버지 꽃’이라 이름 지었다. 아버지 꽃은 오래오래 나와 함께 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남기신 배 모양 화분에 카네이션을 심었다. 그 화분은 평생 가족을 위해 배를 타신 아버지 유품이다. 이 또한 아버지께 바치는 감사의 꽃이다. 작은 온실에 아버지와 함께 있는 듯 이 시간이 참 좋다. 바람결에 이런 소리가 들린다. ‘우리 큰딸 잘하고 있네. 고마워.’
오늘은 삽목 한 장미 허브를 작은 화분에 옮겼다. 장미 모양인데 만지면 향긋한 향이 나는 허브 종류다. 몇 해 전 단골 미용실에서 작은 가지 몇 개를 얻어와 심었는데 지금은 나눔을 할 정도로 번졌다. 몇 개는 외목대로 멋스럽게 키워보는 중이다. 장미허브향은 병해충들이 싫어한다. 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바짝 말라 보여도 괜찮다. 장미허브는 식물에 문외한이라도 잘 키울 수 있는 반려식물이다.
모든 식물은 물, 바람, 햇볕이 적절히 있어야 잘 자라므로 이 중 한 가지라도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있다면 생명을 잃게 된다.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단어는 ‘적절히’다. 적절한 균형감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어렵지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언젠가 향이 좋고 열매도 볼 수 있는 나무를 가지고 싶었다. 이 조건에 부합하는 나무가 바로 ‘유주나무’다. 사계절 내내 열매를 맺는다고 사계귤나무라고도 부른다. 유주나무는 원산지가 중국으로 유자와 탱자를 교합하여 만들었다. 살랑 부는 바람에 하얀 꽃이 향기를 뿜어내면 누구든 감탄사를 내놓는다. 오래전 지인들과 제주를 방문했을 때 끝없이 펼쳐진 감귤밭에서 처음 이 향을 맡았다. 어둑한 저녁 제주에 도착한 일행은 어디선가 나는 향기에 코를 킁킁거렸다. 아침이 되었을 때 진한 향의 근원지를 발견했다. 숙소 근처 엄청난 규모의 유주나무 농장에서 일제히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유주나무가 힘이 없어 보여 화분 밑으로 물이 흘러내릴 정도로 듬뿍 주었다. 잠시 두 손으로 꽃이 진 나무를 감싸고 고개를 숙여 향을 맡아본다. 제주가 우리 집에 있다. 오래 꽃을 보여주는 목마가렛, 고고한 알로카시아, 이름만큼 빨리 자라는 몬스테라, 반짝반짝 녹보수….
나의 식물 사랑은 계속될 것이다. 눈뜨면 시작되고 퇴근 후 바로 사랑스러운 초록이들에게 직행한다. 큰 걱정이 하나 생겼다. 여름 가족 여행을 준비 중인데 물시중을 들 시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