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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숙 Aug 17. 2023

크리스마스 선물

암환자가 되었습니다.

     

작년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병원에 갔다.

2년마다 하는 종합검진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위내시경상 위암이 의심된다는 선생님의 소견을 들은 터라 의기소침한 상태였다. 내 마음과 달리 병원 가는 길은 평소와 다를 것 없이 평화롭기만 했다. 차례를 기다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려졌다.

“ 검진 결과 나왔습니다. ”

숨소리도 줄이며 결과를 듣는다. “염증으로 나왔습니다.”라고 하셨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의 확신에 찬 말은 지금도 생생하게 울린다. “염증으로 나왔지만 제가 볼 땐 이건 분명 암입니다. 다시 조직 검사합시다” 이어진 말씀은 “내일 당장 금식하시고 오세요!” 이날은 금요일이었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작은 시골교회이다. 크리스마스 전에 마을마다 다니며 ‘사랑의 빵 나누기’ 행사를 한다. 맡은 일이 있어 꼭 참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일이 당장 내일 토요일이다.     

집으로 돌아와 우리 가족들은 큰 병원으로 가야 하나 아니면 다시 한번 조직 검사를 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암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땐 누구나 그럴 것이다. 최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인맥을 통해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결국 선생님을 믿고 다시 내시경 조직 검사를 받기로 했다. 이 결정을 하기 참 힘들었다. 다음날 금식하고 위 조직 검사를 했다. 예수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랑 나누기’ 행사는 복잡한 맘으로 마무리하고 집으로 왔다.   

   

결과를 기다리는 며칠은 참 더디게만 갔다. 기도하면서도 온갖 경우의 수를 계산하며 지냈다. 크리스마스 주일을 보내고 목요일 오전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오후에 금식하고 다시 병원으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결과는 말할 수 없다고 직접 방문하라는 것이다. 금식하고 오라는 말에 약간의 희망을 보기도 했다. 또 염증으로 나왔을 거라는 예측을 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떨리는 맘으로 우리 부부는 선생님의 입술만 바라봤다. 약간 흔들이는 눈동자로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위암입니다. 그것도 빨리 번지는 종의 암으로 수술이 시급합니다. 어디 병원 아는 곳 있습니까?” 우린 그대로 말문이 막혀 버렸다.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 CT 촬영으로 전이 여부를 검사해야 해서 금식하고 오라 한 겁니다.”     

 

아주 잠시 눈물이 찔끔 났다. 나의 오른쪽에 서 있던 남편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우린 선생님께 수술 잘하시는 의사 선생님을 소개해 달라 말씀드렸다.

CT 결과는 다행히 전이는 안 된 것으로 나왔다. 참 감사한 결과였다. 진주 시내에 있는 병원으로 위암 복강경 수술로 권위자이신 정의철 선생님을 소개해 주셨다. 우리 부부가 있는 자리에서 바로 전화까지 걸어 주시며 내 상태를 일일이 말씀드렸고, 내일 당장 일찍 그 병원으로 가라고 하셨다. 염증을 암이라 고집해 주신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다음날 소개된 병원 선생님을 뵙고 이전 병원의 자료들을 검토하시며 말씀하셨다.

“초기 위암으로 예상되며, 수술 후 정확한 병기를 알 수 있습니다.” 라 하시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까지 하셨다.


한 해가 마무리되고 새해 첫 주 월요일 입원, 화요일 수술 날로 정해졌다. 참으로 신속한 진행이었다. 확진 후 하루 만에 수술 날을 잡은 상태였다. 지금 생각하면 수술 하루 전이 젤 두려웠다,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 쏟아지기도 하고, 감사가 폭발하기도 하고, 간절한 기도가 마음 깊은 곳에서 세포를 타고 올라왔다. 5시간의 수술을 혼자서 맘 졸이며 기다렸던 남편. 기도하러 달려와 준 제부 윤 목사. 너는 사랑하는 내 딸이라고 처음 말해준 엄마. 수술 하루 전 문자로 응원해 준 지인 교인 가족들이 큰 힘이 되었다.

     

 나에게도 선물이 주어졌다.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바람대로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병기도 초기로 판명 났다. 더 감사한 것은 어떤 항암치료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위절제술 후 식이 조절만 잘하면 되는 것이다.

정기적인 건강 검진으로 초기에 발견된 것. 암이라고 고집해 주신 진주 복음병원 정을조 선생님, 세밀하게 수술해 주신 진주제일병원 정의철 선생님. 기도 동역자들의 응원. 연차를 사용해 가며 간병한 고마운 딸. 멀리서 마음 졸이며 기도해 준 아들 내외. 이 모든 것이 크리스마스의 선물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한 가지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아픔이 있다. 치열하게 하루를 싸우는 수많은 암 환우들. 그들에게도 방법의 차이는 있겠으나 선물 같은 일이 생기기를 마음 다해 바라본다.
 그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말기를 응원한다. 부디 투병에서 승리하시길 간절히 바란다.    

  

이후로 삶을 대하는 태도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말로만 하던 ‘내려놓기와 감사하기’를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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