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설악으로 휘리릭 떠났던 1박 2일. 현정 언니와 선용 샘과 함께, 바쁘게 흘러간 시간을 잠시 멈추고 되돌아본다. 여행을 계획하고, 예약하고, 떠나는 일은 아직 혼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일까, 바쁜 일상 속에서 구조의 동아줄처럼 내게 손 내밀어주는 사람들이 이번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했다.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닫는다.
설악생태탐방원에서의 아침 공기는 마치 세수를 끝낸 얼굴처럼 맑고 서늘했다. 산책로를 따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체험 공간과 자작나무로 만든 다양한 소품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작은 이야기들을 속삭인다. 나무마다 돌과 돌 사이 푸른 이끼가 자라고, 바위 틈새를 박차고 오르는 물고기 한 마리. 불가능해 보이는 순간마저 가능하게 만드는 숲의 힘을 본다.
희디흰 자작나무 줄기에 지난여름을 탈피한 매미 껍질이 붙어 있다. 햇빛에 비쳐 금빛으로 반짝이는 그 빈 껍질은 한때 숲을 울리던 노래의 흔적, 내가 지나온 계절과도 닮아 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조용히, 그러나 완벽하게 비워진 자리다. 허물어진 몸이 아니라 더 큰 날갯짓을 준비한 흔적이다.
나는 그 앞에 서서 내 안의 오래된 껍질들을 떠올린다. 익숙함이라는 이름으로 입고 있던 두려움과 망설임, 작은 자존심들을. 자연은 조용히 말한다. "벗어야 날 수 있다. 비워야 새로워진다." 매일매일 껍질을 벗고 조금 더 자유로운 나로 태어나는 일. 그것이 이 숲이 내게 준 여름의 마지막, 가장 깊은 가르침이다.
숲바닥에는 곳곳에 버섯들이 피어 있다. 모양도 색깔도 제각각인 그들은 비가 스며든 흙 내음과 함께 점점이 자라난다. 어떤 것은 흰 우산을 펼친 것 같고, 어떤 것은 작은 종을 엎어놓은 듯하며, 또 어떤 것은 아이들이 숲 속에 두고 간 작은 의자 같기도 하다. 서로를 흉내 내지 않고 저마다의 속도로 자라나는 모습이 묘하게 나를 위로한다. 각자의 삶으로 풍성하게 살아가는 순간을 숲은 조용히 펼쳐 보인다.
자작나무는 또 다른 얼굴을 내보였다. 마법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마법사가 되기도 하고, 조용히 사색하는 사유인이 되어 숲 한가운데 서서 바람과 빛을 읽기도 한다. 그 곁에서 내 생각도 깊어지고 내 안의 목소리들이 하나씩 정리된다. 때로는 저 멀리 누군가를 기다리는 간절한 토끼가 되어 작은 귀를 세운 채 바람 소리를 들으며 오래된 약속처럼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킨다.
설악·자작나무숲에서의 하루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일상 속 깨달음과 성찰, 그리고 회복의 시간이었다. 매미 껍질이 알려준 벗어야 날 수 있다는 용기, 버섯들이 보여준 각자의 속도로 자라나는 삶의 지혜, 자작나무가 품어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상상력이, 내 마음으로 깊이 스며든다.
무엇이든 가능해지는 자작나무 숲. 그 넓은 품은 모든 것을 안고, 모든 것을 허용한다. 나도 그 속에서 오늘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낸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바쁜 일상 속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만난다. 숲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나를 좀 더 여유롭고 풍성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되돌려 놓는다. 자연이 가르쳐주는 삶의 속도와 어울림 속에서 나는 오늘도 새로워지고 다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