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예총과 당진문인협회와 함께 하는 청소년인문학 강연을 마치고
토요일 오후 1시, 햇살이 문턱에 걸려 있었다. 나는 조용히 기다렸다. 청소년들과 당진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 갈 인문학 캠프의 시간, 그것이 단지 지식의 나눔이 아니라 존재의 만남이 되기를 바랐다. 자신 안에 고요히 웅크린 에너지를 꺼내볼 수 있는 시간, 그 가능성을 품고 나는 떨리는 숨을 고르며 기다렸다.
처음 마주한 청소년과 시민들의 얼굴은 조금 굳어 있었다. 낯설고 조용한 공기 속에서 말보다 시선이 먼저 떠돌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말이 없다고 해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조심스레 그리고 아주 천천히 한 아이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이름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 순간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름은 단순한 부름이 아니다. 이름 안에는 사랑과 바람, 기도와 축복이 숨어 있다. 누군가 오랜 시간을 들여지어 준 이름, 그 이름으로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다.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이미 사랑받은 존재였다는 증거이며, 이름이 불리는 순간마다 그 깊은 사랑의 기억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나는 나이면서 동시에 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진정한 ‘나’로 서게 된다. 내가 먼저 나의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을 소중하게 여기는 순간 나의 존재는 더욱 단단해진다. 이름은 부르는 일은 결국 나를 존중하는 일이다.
우리는 함께 각자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나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나는 세상의 중심에 존재하게 된다. 세상에 존재함으로 충분해진다. 이름은 나의 것이지만 타인이 더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 그것은 이름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살아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각각의 이름으로 존재하고, 그 이름으로 연결된 존재인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서로 얽혀 있다는 의미로 인드라망을 말한다. 그물망처럼 얽혀있는 우주 속에서, 하나의 진주가 빛을 내면 그 빛은 곧 전체를 비춘다. 오늘 우리가 우리가 각자의 이름을 불러보며 피어난 순간, 우리는 그 반짝임 속에서 다시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따로이면서 함께, 우리가 되었다.
인문학은 결국 나를 돌아보고 타인과의 연결 속에서 나를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이름으로 존재하는 나를 확인하고, 그 이름으로 관계를 만들고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는 일, 이 작은 시작은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한다.
오늘 나는 한 사람의 이름에서, 한 사람의 선언에서, 그리고 조용한 눈빛에서 사랑을 열었다. 시와 사람과 함께, 사랑 나누는 소중한 일을 우리가 되어 함께 해냈다. 이토록 조용하고 따뜻한 시간이, 긴 울림으로 남는다. 나의 삶에 온기가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