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끝나가는 어느 날, 나는 조용히 여름의 문턱을 넘는다. 초여름의 햇살은 조금씩 농익어가고, 나뭇잎 사이로 초록물 짙게 물들인다. 그 사이로 부는 초록 바람은 여름날 뜨거운 햇살을 녹이고, 익어가는 여름을 고요하게 머물게 한다.
그날은 혼밥이었다. 오전 4교시 두 개의 집단을 마치고 혼자 밥을 먹었다. 밥 먹는 일에 오롯이 집중하며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말없이 삼키는 숟가락질 사이로, 마음도 조용히 닫혔다.
그렇게 밥을 먹고 나선 주차장, 그 옆으로 풍성한 초록 잎이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그늘 아래로 마법처럼 걸어 들어갔다. 순간 혼밥으로 다물어진 가슴이 활짝 열렸고, 생생한 살아있음이 내 안에서 피어올랐다.
고개를 들었다. 가지마다 알알이 매달린 청포도가 한껏 싱그럽다. 유월, 그 청포도 앞에 선 나는 시인 이육사의 시 한 구절을 읊조린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시인은 그 시절에 간절한 꿈을 담아 청포도를 노래했다.
그는 나라 잃고 살아가는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믿었다. 반드시 자신이 바라는 그날이 오리라는 것을. 하얀 모시수건을 마련해 두고, 푸른 희망을 정갈하게 펼쳐놓았다. 청포도에는 간절한 기다림과 흔들림 없는 신념이 여전히 살아 이 계절로 이어지고 있다.
나는 그늘 아래로 피어난 청포도를 오래 바라본다. 신기하게도 청포도는 줄기 사이사이에서 아래로 자라고 있었다. 아래로 아래로 고개를 더 숙이며, 알알이 더 많은 알갱이를 맺고 있었다. 햇살은 위에서 쏟아지고, 청포도 결실은 낮은 곳에서 차곡차곡 이뤄지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말없음으로 가르쳐주는 것 같았다. 살아간다는 건, 시간이 흐를수록 고개를 들기보다 더 낮은 곳으로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라고, 더 많이 품을수록 더 깊이 숙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익어가는 삶이라고. 청포도는 한 알로는 송이를 이룰 수 없다. 서로 기대어, 함께 무게를 감당할 때 비로소 풍성한 하나가 된다.
청포도를 떠올리면 칠월이, 칠월이 오면 다시 청포도가 떠오르게 만든 시인. 그가 남긴 시처럼 오늘 내 마음에도 푸르게 한 계절이 익어간다. 그늘 아래 피어난 청포도처럼 조용히 그리나 단단하게 시간이 더해질수록 더 향기로운 삶으로, 누군가의 기다림으로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