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끝자락 찬바람이 지나간 자리, 어김없이 작약이 피어난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 자태를 드러낸다. 꽃봉오리가 하나씩 터지며 오랜 시간의 결을 겹겹이 펼쳐낸다. 작약은 한꺼번에 피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첫 꽃잎이 고개를 내밀고, 그 뒤를 따라 나머지 꽃잎들이 차례로 드러난다. 바람과 비를 견디며 땅 가까이 낮은 자세로 피어나는 작약은 그 어떤 생명보다 단단하고 고요하다. 그 고요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 아름다움이 하나의 꽃으로 출현한다.
작약은 피기 전 반드시 고개를 숙인다. 마치 한 송이의 침묵처럼 세상의 소란에서 물러나 자신 안으로 향한다. 꽃봉오리 안에 고여 있는 시간은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을 다지고 힘을 응축하는 순간들이다. 서두르지 않음이 오히려 생명을 깊게 만든다. 작약의 고개 숙임은 굴복이 아닌 준비이고, 그 안에는 피어나기 위한 결심이 있다. 이 고요한 기다림이야말로 진짜 생명력이 피어오르는 시간이다.
작약 앞에 서면 문득 나의 삶이 겹쳐진다. 겹겹이 포개진 꽃잎은 지나온 내 인생의 단면 같다. 말하지 못한 말하지 못한 슬픔, 삼켜버린 울음, 혼자 감당한 시간들이 그 안에 들어 있는 듯하다. 나 역시 피어나기 위해 수없이 고개를 숙여야 했다. 삶의 무게에 짓눌리듯 낮추었던 어깨와 말없이 삼킨 순간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지금의 나를 이루었다. 고요히 피어나는 작약처럼 나도 어느새 그렇게 살아내고 있었다.
중년이 된 나의 삶은 더 이상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쌓여온 아픔과 상처, 꾹꾹 눌러 담은 감정들이 내 안에 스며들어 있다. 그 고요는 방어가 아니라 회복이었다. 세상이 들뜨고 요란할수록 나는 내 안으로 더 깊이 향했고, 그 속에서 나를 지켜냈다. 작약이 거센 바람에도 중심을 놓지 않고 자신을 품듯, 나 또한 흔들리면서 무너지지 않으며 이 자리에 있다.
작약의 꽃잎은 서두르지 않는다. 하나하나 자신을 펼치는 그 과정은 내가 다시 나를 꺼내 마주하는 일과 닮아 있다. 무심코 지나쳤던 감정, 잊었다고 믿었던 상처가 조금씩 말을 건다. 그때 나는 문득 이런 문장을 써 내려간다. “나는 고요를 피우는 중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위로가 아니라 나를 설명하는 말이 된다. 작약의 고요한 피어남 속에 내 삶의 방식이 선명하게 보인다. 나는 눈부시지 않아도 좋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피어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고요는 무력함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견디고 살아내는 강인한 힘이다. 세상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내 안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힘, 작약이 가장 조용한 순간에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듯, 나도 고요 속에서 진짜 나를 만난다. 오늘도 나는 내 안의 소란을 조용히 다독이며 고요를 피우는 중이다. 그것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며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가장 단단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작약은 꽃을 피우기 전, 꼭 고개를 숙인다. 마치 삶의 무게를 견디는 이처럼, 그 낮춤 속에 진짜 피어남을 준비한다. 화려한 꽃잎 속에 감춰진 고요는 세상을 향한 인내이자 자신을 지켜낸 증거다. 문득, 작약 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본다. 중년의 문턱을 넘어선 나는, 이제야 알겠다. 고요는 무너짐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품고도 피어나는 또 다른 방식의 강함이라는 걸. 그래서 오늘도 나는, 고요를 피우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