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보내는 방식

by 안부시인 김선순

계절은 어김없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겨울에서 봄을 불러낸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쉽게 자리를 옮기지 못한다. 땅은 풀리고 바람은 부드러워졌지만, 가슴속 겨울은 아직 무릎 꿇은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계절이 바뀌었다는 사실 앞에 서 있어도, 여전히 겨울 안에 머물러 있다는 감각이 더 선명하다.


겨울은 고요하고 차가운 계절이었다. 새벽마다 얼어붙은 손끝을 녹이며, 나는 나의 삶을 더듬듯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질척이는 갯벌 위를 걷는 것처럼, 삶은 늘 미끄럽고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나는 조개껍데기처럼 반짝이는 순간들을 발견하곤 했다. 작은 생명, 스치는 온기, 말없이 곁을 지켜준 손길 속에서.


계절은 정직하다. 겨울이 끝나면 봄이 온다. 봄은 겨울의 자리를 거두기 위해 있는 힘껏 애를 쓴다. 사람들은 햇볕을 따라 밖으로 나오고, 무채색 옷을 벗어던진다. 그런 변화 속에서도 나는 아직, 겨울의 자리를 쉽게 벗어나지 못한 채, 겨울 기억을 움켜쥔 손을 풀지 못하고 있다.


겨울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지나간 시간을 놓아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미련이거나, 사랑이거나, 혹은 아직 다 끝나지 않은 그리움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손끝의 감각’이라 부르고 싶다. 몸으로 기억된 계절, 몸으로 겪은 시간은 말처럼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가끔은 계절을 거스르고 싶어진다. 남들이 봄을 노래할 때, 나는 겨울의 바닥에서 꺼내지 못한 말을 되뇐다. 그럼에도 나는 안다. 봄은 반드시 와야 하고, 나는 결국 그 자리를 내어주어야만 한다는 것을. 시간은 그런 식으로 우리를 조금씩 밀어낸다. 새로운 자리로, 새로운 계절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느린 이별을 존중하고 싶다. 어떤 계절은 오래 머무르고, 어떤 기억은 쉽게 마르지 않는다. 빠르게 털고 일어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래 붙잡고 흐느끼는 시간 또한 삶의 한 방식일 수 있다. 나는 그 방식대로 겨울을 보내기로 했다. ‘안녕’이라 말하는 데에도 저마다의 속도가 있는 것이다. 고요하면서 차가운 겨울의 익숙함 속에서, 나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바람의 방향이 조금씩 달라지고, 빛이 사라지는 시각이 조금씩 늦춰진다. 그렇게 어느덧, 봄은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내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며칠 동안, 봄은 이미 나를 감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계절은 그렇게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온다. 봄은 강요로 열리는 것이 아니라, 푹 익어야 맛이 나는 된장처럼, 기다림으로 시작된다.


이제는 알겠다. 자리를 내어준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잊는 일이 아니라, 그것을 간직한 채 다음을 맞이하는 일이라는 것을. 겨울의 체온을 간직한 손으로, 나는 봄의 문을 열 준비를 한다. 삶은 그렇게 한 계절씩, 한 마음씩 옮겨가며 이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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