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 인간의 내면을 그리다

by Polymath Ryan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이자, 판화 작가인 에드바르트 뭉크는 노르웨이의 국민 화가이다. 그의 초상은 2019년 신권(지폐) 변경 전까지 1,000 크로네 지폐에 그려져 있었다. 그의 그림은 독특한 예술적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되며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예술적 영향은 현대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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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내가 본 것을 그리지 않는다. 내가 경험한 것을 그린다.”

이 문장은 그의 예술관을 정확히 보여준다. 뭉크에게 중요한 것은 외부 세계의 재현이 아니라, 심리적 진실이었다. 그는 세계가 어떻게 보이는지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사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에 집중했다. 이 점에서 그는 훗날 문학과 철학이 본격적으로 다루게 될 문제인 소외, 신의 침묵, 정체성의 불안, 고독한 개인을 이미 회화로 표현했다.


절규


이러한 특징은 <절규>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중은 이 그림을 흔히 무언가에 놀란 인물로 해석하지만, 뭉크 자신은 전혀 다르게 설명했다. 그는 자연을 가로질러 “무한한 절규가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실제로 그는 공황 장애가 있었다) 이 그림의 인물은 세상을 두려워하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의 불안을 자기 몸으로 받아내는 존재다. 뒤틀린 하늘과 흔들리는 풍경, 해골처럼 마른 신체는 공포를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존재 조건으로 보여준다. 또한 자신 뒤에 걸어오는 2명의 인물은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주며, 이 절규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온 것으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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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작품 세계는 그가 ‘삶의 프리즈(Frieze of Life)라 부른 연작으로 집약된다. 이 연작은 사랑과 욕망에서 질투와 절망,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전 생애를 다룬다. 그러나 뭉크에게 사랑은 위로가 아니다. 친밀함은 구원이 아니라, 오히려 자아를 해체시키는 경험으로 나타난다. 사랑은 완성이 아니라 상실의 또 다른 형태로 불안정성을 예고하는 시선이기도 하다.


죽음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본인 스스로가 일생을 죽음과 함께 있었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불운했다. 5살에 어머니를 14살에 큰 누나를 잃고, 여동생마저 정신병을 앓는다. 그 충격에 아버지는 광신도가 되어 정신적인 학대를 받았다. 이런 영향으로 그의 그림 중 <병든 아이>와 <죽음의 방>에서 죽음은 비극적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조용하고 무거운 일상이다. 눈물도, 극적인 몸짓도 없다. 오직 말로 표현되지 않는 슬픔만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뭉크는 인간이 더 이상 죽음을 종교적 구원의 이야기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확히 꿰뚫었다.그에게 죽음은 개인적이고 고립된 고통으로 경험이 된다.


뭉크의 가장 위대한 성취는 개인적 상처를 보편적 언어로 바꾸어 놓았다는 데 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고백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인간 조건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그렸다. 사르트르나 카뮈가 실존주의 철학으로 인간의 고독과 부조리를 말하기 이전에, 뭉크는 이미 그것을 시각적 형상으로 제시했다. 그의 인물들은 함께 있지만 연결되지 않고, 가까이 있지만 닿지 않는다. 이는 소통은 넘치지만 진정한 관계는 사라진 현대 사회를 그대로 보여주는듯 하다. 이 점에서 뭉크는 서양 미술사의 결정적 전환점을 이룬다. 그는 예술이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던 시대에서, 내면 의식의 드라마를 탐구하는 시대로 넘어가는 경계에 서 있었다. 르네상스가 조화를, 낭만주의가 감정을 찬양했다면, 뭉크는 그 아래에 깔린 진실(불안, 상실, 존재의 무게)를 드러냈다.


에드바르 뭉크는 관객을 놀라게 하기 위해 악몽을 그린 것이 아니다. 그는 근대 인간에게 악몽이 이미 일상의 일부가 되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그렸다. 우리는 뭉크의 그림을 이해하려면, 지금의 세상을 이해하려면 절규하는 비명 뒤에 숨어 있는 침묵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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