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그너 링 시리즈, 세계의 시작
리하르트 바그너의 반지 시리즈 마지막 악장인 오페라 <신들의 황혼>은 흔히 거대한 파국의 오페라로 기억된다. 불길에 휩싸인 발할라, 무너지는 신들의 세계, 압도적인 관현악의 물결. 그러나 이 작품을 단순히 “신들의 몰락”으로 읽는다면, 바그너가 이 마지막 장에 담아낸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된다. <신들의 황혼>은 신화의 끝이 아니라, 권력과 약속, 기억에 의해 유지되던 세계 질서의 붕괴에 관한 작품이다.
또한 니체의 '허무주의'를 예술의 언어로 예감한 작품이기도 하다. 니체는 바그너와 결별했지만, 이 작품에 담긴 세계 붕괴의 감각은 끝내 비난하지 못했다. 니체의 허무주의는 아무것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어온 가치들이 더 이상 우리를 지탱하지 못하는 순간을 말한다. 바로 이 <신들의 황혼>은 그것을 무대 위에서 구현한다.
오페라는 세 명의 노른이 운명의 밧줄을 엮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들은 미래를 예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과거를 기억하며 현재를 지탱하려 애쓴다. 그러나 밧줄은 끊어진다. 운명이 폭력적으로 파괴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세계를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 둘 수 없기 때문이다. 바그너는 시작부터 명확히 말한다. 이 세계는 이미 내부에서부터 붕괴되고 있다고.
이 붕괴의 한가운데에는 전 악장인 지크프리트가 있다. <지크프리트>에서 그는 가능성의 인간이었다. 공포를 모르고, 규칙에 속하지 않으며, 자연과 직접 연결된 존재였다. 그러나 <신들의 황혼>에서 그 순수성은 더 이상 힘이 되지 못한다. 사랑을 잊게 하는 약을 마신 그는 브륀힐데를 배신하지만, 그 배신에는 의도가 없다. 문제는 악의가 아니라 기억의 상실이다. 니체가 가장 경계했던 인간은 악한 인간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바그너는 여기서 냉정한 통찰을 제시한다. 기억 없는 영웅은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 가장 쉽게 조작 가능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기비훙 가문은 신들의 세계와 전혀 다른 권력의 형태를 보여준다. 그들은 위대한 이상도, 신화적 사명도 없다. 군터와 구트루네는 공허한 야망만을 지녔고, 하겐은 계산과 소유만을 추구한다. 그는 신처럼 명령하지도, 영웅처럼 싸우지도 않는다. 대신 계획하고 기다리며 이용한다. 하겐은 신화의 잔재가 아니라, 오히려 근대적인 권력의 얼굴이다. 바그너는 신들이 사라진 자리에 더 순수하고 더 차가운 폭력이 등장할 수 있음을 예견한다.
이 세계에서 가장 큰 변화를 겪는 인물은 브륀힐데다. 발퀴레였던 그녀는 사랑을 통해 인간이 되었고, 배신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는 존재로 변한다. 브륀힐데는 반지가 단순한 보물이 아니라, 세계를 병들게 한 원리임을 깨닫고 반지를 파괴한다. 그것은 새로운 이전에 꼭 필요한 파괴다. 하지만 새로운 탄생을 보장하지 않는다. 불은 발할라를 태우지만,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물이다. 이는 파괴의 승리가 아니라, 순환의 회복에 가깝다. 신도, 영웅도, 권력도 사라진 자리에서 오롯이 자연만이 남는다.
니체의 초인(위버멘쉬)은 신의 자리를 차지하는 존재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인간이다. 하지만 바그너는 그 초인(위버멘쉬)을 제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직 인간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들의 황혼>의 결말은 흔히 ‘구원’처럼 보이지만, 그 구원은 명확하지 않다. 새로운 신도 등장하지 않고,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약속도 없다. 남는 것은 침묵과 여운이다. 바그너와 니체는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화와 도덕, 권력과 의미가 붕괴되는 세계. 바그너는 이를 음악으로 애도했고, 니체는 철학으로 돌파하려 했다. 두 사람의 길은 갈라졌지만, <신들의 황혼>이라는 작품 안에서 그들은 같은 질문을 남긴다.
신(권력)이 사라진 뒤, 인간은 무엇으로 세계를 지탱할 것인가?
이 작품은 신화의 언어를 빌려 근대의 불안을 드러낸다. 약속은 더 이상 효력을 갖지 않고, 이름은 정체성을 보장하지 않으며, 기억조차 인위적으로 지워질 수 있다. <신들의 황혼>은 고대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현대적인 오페라다. 그것은 우리가 의지해온 모든 구조가 무너진 뒤에도 세계는 계속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결국 바그너는 신들의 종말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오래된 세계가 끝났음을 보여준다. 그 이후의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는, 더 이상 신도 작곡가도 아닌 우리 자신에게 맡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