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시간을 부여하다
벨기에의 한 가톨릭 사제가 팽창하는 우주를 설명한다. 이 이론은 에드윈 허블에 의해 관측되며 이 팽창을 설명하는 법칙은 '허블-르메트르 법칙'이라 한다. 또한 '빅뱅(대폭발)이론'을 제안하며 세상의 시작을 선보인다. 그의 이름은 바로 조르주 르메트(Georges Lemaître)이다.
1차 세계 대전에 포병 장교로 참전 후,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하여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 천문대, 그리고 MIT에서 공부한다. 벨기에로 돌아와 모교인 루뱅 가톨릭 대학교에서 가르치며 우주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며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바탕으로 우주 팽창의 이론을 발표한다.
우주의 시작이란 질문
인류는 오랫동안 우주를 변하지 않는 무대처럼 상상해 왔다. 별들은 늘 그 자리에 있고, 하늘은 인간의 역사와 무관하게 영원히 지속되는 공간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조르주 르메트르는 이 오래된 직관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르메트르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단순하면서도 혁명적인 명제에서 시작된다.
우주는 정지해 있지 않다.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
1927년, 그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토대로 이 결론을 수학적으로 도출했다. 당시만 해도 대다수 과학자들은 우주가 영원히 동일한 상태를 유지한다고 믿고 있었기에, 그의 주장은 급진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몇 년 뒤, 에드윈 허블이 은하들의 적색편이를 관측하며 우주 팽창의 증거를 제시했고, 르메트르의 이론은 비로소 과학적 현실이 되었다.
르메트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려 했다. 그가 제안한 개념은 ‘원초적 원자’였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빅뱅 이론의 초기 형태로, 우주는 과거 어느 순간 극도로 밀집된 상태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팽창해 왔다는 생각이다. 이 이론은 한동안 “종교적 창조론의 과학적 포장”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오해를 가장 단호히 거부한 사람은 바로 르메트르 자신이었다.
그는 사제였지만, 과학과 신앙을 혼동하지 않았다. 과학은 ‘어떻게’를 설명하고, 신앙은 ‘왜’를 말한다라며 오히려 그는 두 영역을 분명히 구분했다. 이 말은 르메트르의 지적 경계에 대한 태도를 정확히 드러낸다. 그는 자신의 우주론을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았고, 반대로 신앙을 과학 이론의 근거로 삼지도 않았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과학의 태도이다.
르메트르의 사상은 과학사적으로도 깊은 의미를 지닌다. 그는 우주를 더 이상 ‘영원한 배경’으로 보지 않고, 시간 속에서 생성되고 변화하는 존재로 이해하게 만든 인물이다. 이는 단지 천문학의 발전에 그치지 않는다. 철학적으로도 인간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시작을 가졌다면, 인간의 삶 역시 더 이상 무의미한 반복이 아니라,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 놓인 하나의 장면이 된다. 우주가 시작을 가진다면, 인간 또한 그 역사 속의 우연적 존재가 아닌 의미를 가진 존재가 된다.
초기에 그의 이론을 회의적으로 바라보았던 아인슈타인조차도, 시간이 흐른 뒤 “이것은 내가 들은 가장 아름다운 설명이다.”라며 평가했다. 이 한마디는 르메트르의 업적이 단지 옳았을 뿐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설득력을 지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는 빅뱅 이론을 교과서에서 자연스럽게 배운다. 그러나 그 이론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은 우주와 인간에 대한 오래된 확신을 뒤흔드는 사상이었고 르메트르는 그 흔들림의 한가운데에 서 있게했다. 그는 우주를 ‘영원한 공간’에서 ‘시간을 가진 존재’로 바꾸었고, 과학을 신앙과 대립시키는 대신, 그 경계에 굳건히 서 있다.
그래서 조르주 르메트르는 그저 위대한 과학자가 아니다. 그는 우주에 시간을 부여한 사람, 그리고 인간에게 새로운 역사 의식을 열였다. 그의 업적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는 방식을 조용히 바꾸고 있으며, 과학과 신앙의 경계를 지키는 파수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