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인문학 29

사라예보, 작은 도시가 세계를 흔들다

by Polymath Ryan


어느 감옥에서 징역 20년형을 선고 받은 23살의 청년이 숨을 거둔다. 그는 무슨 죄를 지었을까? 그의 죄는 제1차 세계 대전의 불씨였던 '사라예보 사건'이다. 그 청년의 이름은 '가브릴로 프린치프', 보스니아에 거주하던 세르비아인이었다.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그의 나라 보스니아를 지배하고 있었고, 프린치프는 제국에 대한 저항을 한 것이다.


사라예보는 지도에서 보면 아주 작은 도시, 발칸의 변두리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그 위치는 과거 모든 문화의 경계였다.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 문화, 합스부르크 제국의 가톨릭 문화, 동방 정교와 유대 공동체가 이 도시 안에서 수세기 동안 공존한다. 문명들이 겹치며 일명 '유럽의 축소판'이라 불리게 된다. 늘 그렇듯이 공존은 언제나 불안정하다. 힘있는 자가 있을 때는 균형이 가능하지만 힘있는 자가 없을 때는 가장 먼저 균열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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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작은 담배 불씨 하나가 떨어진 것이다. 언제 폭발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발칸에서 일어날 것이다' 비스마르크는 당시 위태로운 화약고 였던 유럽을 이렇게 예측했다. 그리고 발칸의 아주 작은 도시에서 작은 불씨가 떨어져 결국 화약고를 폭발시킨다. 이 폭발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시작이 되었고, 20세기 전체의 비극을 연쇄적으로 일으킨다. 견고해 보이는 것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은 아주 작은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이 진리는 국가건 사람이건 모두 적용된다. 지금의 우리의 상황이, 지금 나의 건강이 완벽해보이거나 영원할 거라 느껴질 때, 작은 곳, 작은 것을 다시 살펴야 한다. 가끔 한번에 무너지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가장 작고 방심한 부분에서 균열은 시작된다.


그 이후, 사라예보는 또 한번 세계사의 사건을 남긴다. 1992년 보스니아 전쟁이 시작되면서 사라예보는 포위를 당한다. 그리고 3년 동안 포격과 저격 속에서 그들은 도시를 포기하지 않았다. 사망자 11,541명, 부상자 수는 5만 명을 넘었다. 사라예보 사람들은 끔찍한 상황에서도 지하에서 음악회와 연극을 하고 도서관이 불타는 가운데서도 책을 살리고 시를 읽었다. 이것은 사치가 아니라 그들의 존엄을 지키는 마지막 장치였다. 그들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예술을 통해 인간의 선함을 느끼고자 했다.


역사적 지층이 두터운 곳, 하지만 변두리의 작은 도시. 공존의 낭만보다 공존의 위험성을 지녔던 도시. 다민족, 다종교에서 신앙적이고 도덕적인 것보다 끊임없는 긴장을 내뿜은 도시, 바로 사라예보다. 도시는 기억으로 존재한다. 사라예보에는 포탄 자국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들은 그것을 '사라예보의 장미'라고 부르며 도시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평화는 망각에서 오지 않는다. 평화는 기억을 다룰 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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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를 읽는다는 것은 한 도시를 아는것에 그치지 않는다. 도시의 크기로는 중심이 될 수 없었던 이 작은 도시는 세계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비록 가장 비극적인 방식으로 증명했지만...


언제든지 작은 존재가 나를 무너뜨릴 수 있고, 작은 습관이 커다란 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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