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나이 50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를 보니 여지없는 꼰대다. 지금까지의 삶이 나를 만들고, 생각이 그 삶을 움직이며 타인을 바라보는 눈과 입을 만들었다. 자식을 키우다 보니 '나'라는 존재는 참....할 말이 없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쓰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시대가 변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잃어버린 것이 나만의 기준일 수 있겠구나. 잃어버리는 이유가 다 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금새 책이나 글들을 보면 나와 비슷한 사유를 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안도감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 용기를 갖고 또 말하려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떠올릴 때, 우리는 흔히 거창한 가치들을 생각한다. 공동체 의식, 연대, 신뢰, 존중 같은 단어들이다. 그러나 정작 먼저 사라지는 것은 늘 더 작고, 너무 익숙해서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다. 인사는 그런 것 중 하나다. “안녕하세요”라는 짧은 말 한마디는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보내는 가장 기본적인 존재의 신호였다.
인사는 단순한 관습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가장 일상적인 의식이다. 인사를 건넨다는 것은 곧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고 말하는 행위이며, “당신은 나에게 의미 없는 배경이 아닙니다”라고 선언하는 일이다. 철학자 레비나스의 말처럼, 윤리는 거창한 규범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인사는 윤리의 최소 단위다. 그 작은 행위가 사라질 때, 우리는 예절이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는 감각을 잃는다.
오늘날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명을 스쳐 지나가지만, 그중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을 수 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골목길에서도, 심지어 같은 공간에 앉아 있으면서도 각자는 자신의 화면 속에 머문다. 과거에는 마주침이 곧 인사의 이유가 되었지만, 이제 마주침은 오히려 피해야 할 불편이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사할 이유를 잃어버린 사회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속도의 논리가 있다. 인사는 멈춤을 요구한다. 잠시 발걸음을 늦추고, 시선을 맞추고, 시간을 내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멈춤을 허락하지 않는다. 효율과 생산성의 언어 속에서 인사는 점점 비생산적인 행위가 된다. 결과를 만들지 못하고, 성과로 환산되지 않으며,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일을 하면서도, 점점 덜 사람을 만난다.
인사가 사라진 사회는 무엇을 잃을까. 우선, 익명의 완충지대를 잃는다. 인사는 낯선 사람을 잠재적 위협이 아니라 아직 알지 못한 이웃으로 바꿔 주는 작은 장치였다. 또한 인사는 갈등을 예방하는 평화의 신호였다. 공격적인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안녕하세요”는 관계를 부드럽게 여는 가장 오래된 기술이었다. 무엇보다 인사는 존중을 습관으로 만드는 일상의 훈련이었다. 존중은 선언이 아니라 반복 속에서 만들어진다.
우리가 인사를 잃어버렸다는 말은, 우리가 무례해졌다는 뜻만은 아니다. 그것은 서로를 더 이상 ‘존재’로 인식하지 않게 되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누군가를 만났다는 감각은 줄어들고 있다. 인사가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것은 편리함과 속도, 그리고 조용한 고립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거창한 도덕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용기일지도 모른다. 먼저 눈을 들고, 먼저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말을 건네는 용기. 인사는 세상을 바꾸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사는 우리가 사는 세계의 온도를 아주 조금 바꾼다. 그리고 때로는 그 아주 조금이, 인간다움을 지키는 마지막 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