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인문학 33

포르투갈 리스본

by Polymath Ryan


경계의 도시 — 유럽의 끝에서 바다를 보다

리스본은 유럽 대륙의 서쪽 끝에 서 있다. 중세의 상상력 속에서 그 너머의 바다는 공포와 미지의 공간이었다. 땅은 여기서 멈추고, 세계는 사라지는 듯 보였다. 경계는 보통 한계로 읽힌다. 그러나 리스본은 그 한계를 해석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기원전 1200년경 페니키아인이 세운 항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한 리스본의 탄생이다. 지리적 위치로 로마, 서고트, 이슬람의 지배 아래있었고, 1147년 10월 24일 리스본은 해방되었다.


15세기, 포르투갈은 대서양으로 나아갔다. 엔히크 항해왕자의 후원 아래 항해술과 지도 제작이 발전했고, 바스쿠 다 가마는 인도 항로를 열었다. 이어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항해는 세계가 하나의 구체로 연결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순간, 경계는 막다른 곳이 아니라 출발점이 되었다. 리스본은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했다. 유럽 내부의 도시였던 이곳은 세계를 향한 관문이 되었다. 바다는 더 이상 두려움의 공간이 아니라, 가능성의 공간으로 해석되었다.


이 도시는 묻는다.

경계는 우리를 멈추게 하는가, 아니면 밀어내는가?

세계의 재구성 — 대항해와 근대의 탄생

대항해 시대는 단순한 항로 개척의 시기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 인식의 전환이었다. 바다를 통해 유럽은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와 연결되었고, 세계는 하나의 교역망으로 재편되었다. 리스본은 그 네트워크의 중심 허브가 되었다.


향신료와 금, 은, 노예, 종교와 사상이 이 도시를 통과했고 공간은 측량되고 지도화되었으며, 세계는 계산 가능한 대상으로 변모했다. 항해 기술과 천문학의 발전은 인간 이성이 자연을 이해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강화했다. 근대성의 출발은 바다 위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확장은 중립적이지 않았다. 교류는 동시에 지배였고, 무역은 동시에 착취였다. 식민지 체제와 노예 무역은 근대 세계 경제의 기초가 되었다.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었지만, 그 연결은 불균형했다.


리스본은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품는다.

세계화의 시작은 만남이었는가, 아니면 위계의 형성이었는가?

근대는 진보였는가, 아니면 권력의 재배치였는가?

이 질문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폐허와 합리 — 재난 이후의 세계관

1755년, 리스본은 대지진과 해일, 화재로 파괴되었다. 수많은 건물과 생명이 사라졌다. 이 사건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관을 흔든 사건이었다. 그들은 질문했다. 신은 왜 이런 재난을 허락했는가? 세계는 섭리 속에 있는가, 아니면 자연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가?


이 질문은 유럽 계몽주의의 사유를 자극했다. 리스본은 폐허 위에서 다시 설계되었다. 직선 도로와 기하학적 구획, 합리적 도시 계획이 도입되었다. 신의 질서 대신 인간의 설계가 도시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신 중심 세계에서 인간 중심 세계로의 또 하나의 전환이 일어난다.

리스본은 두 번 경계에 섰다. 한 번은 바다 앞에서, 또 한 번은 폐허 앞에서. 그리고 두 번 모두 전환을 선택했다.


우리는 어떤 경계에 서 있는가

리스본은 끝에 선 도시였지만 그들은 그 끝을 시작으로 읽었다. 그 해석은 세계 지도를 바꾸었고, 근대 세계 체제를 형성했다. 동시에 그 선택은 지배와 불평등이라는 구조를 낳았다.


경계는 단순한 지리적 선이 아니다. 그것은 해석의 문제다.

멈춤으로 읽을 것인가, 가능성으로 읽을 것인가.


리스본은 말한다.

전환은 두려움 속에서 시작되지만, 책임 없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또 다른 경계 위에 서 있다.

그 경계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가, 우리의 세계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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