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프 니세포르 니엡스
프랑스의 발명가 '니엡스'는 빛을 영구적으로 담은 인물이다. 1826년 "르 그라의 창에서 본 풍경"이 세계 최초의 영구 사진이었다. 약 8시간 빛의 노출을 아스팔트(역청)으로 감광 재료를 삼아 이미지로 남겼다. 니엡스의 사진기 아니 빛을 담는 기계는 그가 죽은 후, 그의 협력자였던 "루이 다게르"가 '다게레오타입(1839)'을 개발하면서 실용적 사진술의 시작을 알렸다. 이 타입은 노출 시간이 짧았고, 선명도도 개선되어 상업적으로 활용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코닥"을 창업한 '조지 이스트먼'이 필름 기반의 대중적인 카메라를 발명하며 현대 카메라 시대를 열었다.
사진 이전의 시대와 사진 이후의 시대의 변화는 컸다. 사진은 단순한 기술적 성취가 아니었다.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이자 과거의 균열이었다. 빛은 더 이상 화가의 손을 거쳐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화학 반응을 통해 직접 기록되고, 인간의 해석이 아니라 물리 법칙에 의해 증거가 되었다.
예를 들자면 사진 이전의 시대의 기억은 언어, 그림, 서사를 통해 해석되었지만, 사진 이후의 시간에는 기억은 서술이 아니라 증거가 된다. 사진은 법적 증거, 과학적 기록,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는 진실의 기준이 된다. 이때부터 기억은 철학에서 물리학으로 넘어간다.
사진은 시간을 붙잡는다. 과거가 멈춘 이미지로 저장되니 인간에게 새로운 감각이 생긴다. 죽은 사람은 사진 속에서 웃고 있으며, 더 이상 볼 수 없는 장소는 언제든지 볼 수 있고, 행복했던 순간은 반복해서 볼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이 선형적이지만 사진은 데이터로 전환된다.
또한 과거의 기억은 권력자와 예술가의 특권이었다면, 이제는 누구나 소유할 수 있다.
사진 기술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남겼을까?
우선 회화의 위기가 떠오르는가? 아니다. 사진이 빛을 담아내자, 회화는 질문을 바꾼다.
어떻게 정확하게 그릴 것인가? 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로....
빛은 더 이상 형태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색채를 분해하는 스펙트럼으로 이해한다. 모네, 루누아르, 드가 등은 형태의 정확성보다 빛의 순간적 변화와 빛을 지각하는 순간을 담아낸다. 르네상스 이후, 원근법, 해보학, 명암법을 발전시키며 더 정확한 재현을 추구했던 회화는 현실보다는 감정과 내면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과학이 세계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록 예술은 더 자유로워진다. 사진의 물리적 과학이 회화를 해방시킨 것이다.
사진기의 발명은 기술 혁신일 수 있겠지만 보이지 않는 철학적 사건이었다.
우리가 보는 것, 보이는 것은 표면일 뿐이며, 그 표면은 언제나 물리적 수학과 시간적 구조에 놓여 있다.
하지만,
회화가 추상으로 이동한 것도, 과학이 양자역학으로 들어간 것도 표면을 본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구조를 읽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이 질문을 해야한다.
"만약 기계가 세계를 대신한다면, 인간은 무엇을 창조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렇게 답해야 한다.
"기계가 볼 수 없는 질서를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