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잃어버린 것 26

불편함

by Polymath Ryan


요즘 대한민국의 일부 초등학교에서 상장이 사라지고 있다. 상장을 받지 못한 아이가 상처를 받는다는 이유다. 축구도 금지되는 학교가 생겼다. 공을 못 차는 아이에게 불이익이 간다는 논리다. 운동회마저 점점 사라진다. 경쟁에서 진 아이에게 패배의 기억을 남긴다는 이유다.


이 모든 결정의 배후에는 하나의 선한 의도가 있다. 아이를 보호하겠다는 것. 하지만 묻고 싶다. 우리는 정말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가? 아니면, 아이에게서 무언가를 빼앗고 있는가?


불편함은 교사다


상장이 주는 것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다. 상장을 받지 못한 아이가 그 순간 경험하는 것 — 그 묘하게 쓴 감각 — 이 진짜 교육이다. '나는 아직 충분히 잘하지 못했다'는 인식, '더 열심히 하면 다음엔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혹은 '축구는 내 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자기 인식. 이 모든 것이 불편함이라는 경험 속에 담겨 있다.

운동회에서 꼴찌를 한 아이를 생각해보자. 그 아이는 분명 실망할 것이다. 그런데 그 실망이 상처인가, 아니면 성장의 씨앗인가? 불편함을 제거하는 사회는 그 질문 자체를 아이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아이가 실망을 느끼기도 전에, 어른들이 먼저 그 상황을 없애버린다.


철학자 니체는 말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거창한 철학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안다. 근육은 저항을 통해 만들어진다. 사유는 혼란을 통해 깊어진다. 인내는 기다림을 통해 길러진다. 불편함은 성장의 조건이지, 성장의 적이 아니다.


그런데, 이것이 아이들만의 이야기일까


잠깐 아이들에게서 눈을 돌려 우리 자신을 바라보자.

우리는 불편한 대화를 직접 하는 대신 카톡 메시지로 대신한다. 어려운 책 대신 요약본을 읽는다. 의견이 다른 사람과 부딪히는 대신 슬며시 침묵을 선택한다. 마음이 불편한 관계는 '바쁘다'는 이유로 조금씩 멀리한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는 대신 언제나 네비게이션을 켠다. 기다리는 것이 싫어 2배속으로 영상을 본다.


우리는 매일, 아주 조금씩, 불편함을 제거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효율'이라고 부른다. '스마트한 삶'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솔직히 물어보자. 우리는 정말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더 매끄러운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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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을 잃은 우리는 어떤 인간이 되는가

마찰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조금만 불편해도 관계를 끊고, 일을 그만두고, 자리를 피한다. 불편함을 성장의 신호로 읽지 못하고 재난으로 읽는다. 그래서 늘 도망치지만, 도망칠 곳은 점점 줄어든다.


타인의 성공을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누군가 더 잘한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는 법을 잊는다. 비교가 동기가 아니라 상처가 된고 타인의 성취 앞에서 당연히 느껴야 할 자극 대신, 설명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된다. 경쟁과 실패는 잔인하지만, 동시에 '나는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가'를 알게 해주는 거울이다. 그 거울을 치워버린 사람은 자기 윤곽을 잃어간다. 아무것도 제대로 해낸 것이 없는데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여기거나, 반대로 작은 실패 하나에 자신의 전부를 부정한다.


이것은 아이들의 미래가 아니다. 지금 우리의 이야기다.


우리가 진짜 보호해야 할 것

아이를 불편함으로부터 격리하려는 어른들을 탓하기 쉽다. 하지만 그 어른들 역시 불편함을 피하며 살고 있다. 우리는 아이에게 가르치지 못한 것을, 사실 우리 스스로도 배우지 못했거나 잊어버렸다.


보호에는 두 종류가 있다. 위험으로부터 격리하는 보호, 그리고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보호. 상장을 없애고 축구를 금지하는 것은 전자다. 하지만 진짜 보호는 꼴찌를 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상장을 못 받아도 네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불편함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나무는 바람이 없으면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는다. 바람이 흔들어야 뿌리가 땅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든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상장이 아니다. 흔들리면서도 서 있을 수 있는 힘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