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잃어버린 것 29

이름

by Polymath Ryan


우리는 매일 서류에, 명함에, 메신저 프로필에 자신의 이름을 쓴다. 그 이름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 이름이 가리키는 사람이 누구인지, 우리는 정말 알고 있는가. 이름은 있는데 그 이름의 주인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


정체성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질문을 자꾸 미룬다. 바쁘다는 이유로, 지금은 아니라는 이유로, 나중에 생각하자는 이유로. 그러다 보면 이름만 남고 그 이름이 가리키는 사람은 흐릿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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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함이 이름을 대신할 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우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름보다 먼저 직함이 나온다. 어느 회사 누구입니다. 팀장입니다. 교수입니다. 명함을 건네면 이름보다 소속과 직위가 더 크게 적혀 있다. 우리는 이름이 아니라 역할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


물론 아버지로서의 나, 직장인으로서의 나, 선생님으로서의 나로서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 역할들이 삶을 구성한다. 하지만 역할이 이름을 완전히 대신하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역할은 상황에 따라 바뀐다. 직장을 잃으면 팀장이라는 역할이 사라진다. 아이들이 독립하면 아버지라는 역할이 변한다. 은퇴하면 교수라는 역할이 끝난다. 그 순간 많은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다. 역할이 사라졌을 때, 나는 누구인가.


타인의 기대가 이름을 덮을 때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기대, 사회의 기대, 주변의 시선 등 타인의 기대 안에 놓인다. 어릴 때는 그 기대에 맞추는 것이 생존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어른이 된 후에도 그 패턴이 계속된다. 타인이 원하는 나의 모습을 연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진짜 나와 연기하는 나의 경계가 흐려진다.


심리학자 칼 융은 페르소나라는 개념을 이야기했다. 사회적 역할에 맞게 우리가 쓰는 가면. 페르소나는 필요하다. 상황에 맞게 자신을 조율하는 것은 사회적 삶의 일부다. 하지만 페르소나가 너무 두꺼워지면, 가면 뒤의 얼굴을 자신도 잊어버린다. 타인의 기대에 맞춘 나를 진짜 나라고 믿게 된다.


연예 프로그램에서 한 남자가 울었다. 자신이 평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왔는데, 결국 자신이 특이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눈물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외면하고 있었던 것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된 순간의 눈물이었다. 타인의 기대가 만든 나의 이미지가 무너지는 순간. 그 아래에 진짜 이름이 있었다.


바쁨이 이름을 잊게 할 때


현대인이 자신을 잃어가는 가장 흔한 방식은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생각할 틈이 없어서, 멈추면 뒤처질 것 같아서의 바쁨이다. 이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달린다. 그 달림이 때로는 자신을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고요해지면 불편한 질문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것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인가.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이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이유는 하나다.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멈춰야 한다. 달리다가 멈추고 바쁨 속에서 고요함을 찾는다면 그 고요함 안에서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


다시말하자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일정표를 덮고, 혼자 앉아있는 그 시간이 불편한 것은 자신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피해다니는 한, 자신의 이름은 계속 흐릿해진다. 바쁨은 자신을 잊는 가장 세련된 방법이다.


이름을 되찾는다는 것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역할이 아닌 나로서 무엇을 좋아하는지 기억하고 타인의 기대가 아닌 자신의 감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달리다 잠깐 멈추고 지금 내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확인하면 된다.


정체성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계속 발견하고, 잃어버리고, 다시 찾는 과정이다. 그 과정 자체가 정체성이다. 완성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의 질문을 계속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자신의 이름을 쓴다. 그 이름을 쓸 때마다 잠깐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이름이 가리키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 질문이 습관이 될 때, 우리는 조금씩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