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인문학 39

세계의 배꼽, 세비야

by Polymath Ryan


스페인 남부, 과달키비르강 옆에 자리한 도시 세비야. 오렌지 나무가 거리를 가득 채우고, 플라멩코 음악이 골목에서 흘러나오고, 황토빛 건물들이 저녁 햇살을 받아 붉게 물드는 도시. 처음 세비야를 접하는 사람은 그 감각적인 아름다움에 압도된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 아래에는 훨씬 복잡하고 깊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세비야는 한때 세계의 중심이었고, 두 문명이 공존했으며, 오페라의 무대가 됐다. 그 모든 것이 하나의 도시 안에 겹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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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의 관문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가 돌아온 곳이 세비야였다. 이후 신대륙에서 오는 모든 배는 세비야 항구로 들어왔다. 스페인 왕실은 세비야에 무역독점권을 부여했다. 세비야의 인디아스 교역소는 신대륙과의 모든 교역을 관리했다. 금과 은이 세비야로 쏟아졌다.


16세기 세비야는 유럽에서 가장 크고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였다. 인구는 10만 명을 넘었다. 유럽 전역에서, 그리고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상인, 탐험가, 예술가, 학자, 노예. 세계가 세비야로 흘러들어왔다. 과달키비르강은 단순한 강이 아니었다. 세계와 세비야를 연결하는 통로였다.


하지만 그 번영은 영원하지 않았다. 17세기 들어 강이 점점 얕아지면서 큰 배가 들어오기 어려워졌다. 교역의 중심이 카디스로 옮겨갔고, 세비야의 황금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 시대가 남긴 대성당, 알카사르 궁전, 황금탑 그리고 세계의 중심이었던 도시의 기억들은 남았다.



이슬람과 기독교가 켜켜이 쌓인 도시


세비야의 골목을 걷다 보면 이상한 감각을 느낀다. 기독교 성당 옆에 이슬람 양식의 건물이 있고, 무어인의 아치 위에 기독교의 십자가가 올라가 있다. 이 도시는 700년간 이슬람의 지배 아래 있었다. 711년 무어인이 이베리아 반도로 들어온 이후, 세비야는 알안달루스의 중요한 도시가 됐다. 이슬람 문명의 꽃이 이곳에서 피어났다.


히랄다 탑이 그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원래는 12세기 이슬람 사원의 첨탑이었다. 1248년 기독교 왕국이 세비야를 탈환한 후, 그 첨탑 위에 기독교 종탑을 올렸다. 이슬람의 탑 위에 기독교의 종이 울리는 것. 세비야 대성당 자체도 원래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유럽에서 가장 큰 고딕 양식 성당이, 이슬람 사원의 기초 위에 서 있다.


이 공존과 충돌의 역사가 세비야의 문화를 만들었다. 이슬람의 정교한 기하학적 장식과 기독교의 웅장한 건축이 하나의 도시 안에서 섞였다. 음식에도, 음악에도, 언어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세비야는 두 문명이 싸우고 공존한 흔적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도시 중 하나다.


오페라가 사랑한 도시


세비야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가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와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그리고 베르디의 돈 카를로. 그리고 비제의 카르멘이다. 이 걸작들이 모두 세비야를 무대로 한다. 왜 이렇게 많은 작곡가들이 세비야를 선택했을까.


세비야는 드라마틱한 도시다. 뜨거운 태양, 짙은 그늘, 격정적인 음악, 자존심 강한 사람들이 사랑과 질투, 명예와 복수를 가감없이 드러났던 곳이다.


오페라가 다루는 인간의 가장 극단적인 감정들이 이 도시의 공기 안에 있다. 카르멘의 자유롭고 반항적인 정신, 피가로의 기지와 유머, 돈 조반니의 욕망과 파멸. 이 모든 것이 세비야라는 공간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특히 카르멘은 세비야 자체를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담배 공장의 집시 여인 카르멘, 그녀를 사랑한 군인 호세, 투우사 에스카미요의 그 삼각관계가 세비야의 거리에서 펼쳐진다. 비제는 세비야에 가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상상 속에서 세비야를 완벽하게 그려냈다. 카르멘을 들으면 세비야가 보이고, 세비야에 가면 카르멘이 들린다.


플라멩코 — 영혼의 언어


세비야를 이야기하면서 플라멩코를 빼놓을 수 없다. 플라멩코는 단순한 춤이 아니다. 집시, 무어인, 유대인, 스페인인의 문화가 수백 년에 걸쳐 뒤섞이며 만들어진 예술이다. 억압과 고통,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열정을 플라멩코의 가장 깊은 감정인 '두엔데'라고 부른다.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것,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것을 표현한다.


세비야의 뒷골목 작은 공연장에서 플라멩코를 보면, 그것이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무용수의 발소리가 바닥을 치고, 기타 선율이 공기를 가르고, 노래가 탄식처럼 흘러나올 때, 그 순간 세비야의 모든 역사가 압축되는 것 같다. 무어인의 음악, 집시의 한, 신대륙의 부와 몰락, 두 문명의 충돌의 그 모든 것이 플라멩코 한 곡 안에 담겨있다.


세비야는 아직도 뜨겁다. 여름이면 기온이 40도를 넘고, 사람들은 낮에는 실내에 머물다가 저녁이 되면 거리로 나온다. 밤의 세비야는 낮과 다르다. 오렌지 나무 아래 사람들이 모이고, 플라멩코 음악이 골목을 채우고, 과달키비르강에 도시의 불빛이 반사된다. 한때 세계의 중심이었고, 두 문명이 공존했으며, 오페라의 무대가 됐던 도시. 그 모든 역사가 지금도 이 도시의 밤 안에서 살아 숨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