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와 연극, 두 길을 하나로 잇다. 이상직 호스트

by 이경민

전남 구례, 섬진강이 흐르는 지리산 자락에서 자연농업을 실천하는 이상직 호스트. 그는 2010년 귀농하기 전까지 국립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연극 무대 위에서 살던 그가 왜 서울에서도 멀리 떨어진 한적한 농촌에서 농부이자 배우로, 또 우프 호스트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일과 놀이가 함께 어우러진 삶, 농사와 문화, 예술이 하나로 이어지는 삶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상직 호스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 1막. 농사와 연극, 인간과 자연, 공동체를 잇는 무대

2509우프2.jpg 2011년부터 지역민들과 함께 극단 마을을 창단해 풀뿌리 유기농 연극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우프코리아 블로그

서울에서 연극을 하던 시절, 이상직 호스트는 자본 논리에 휘둘리는 공연 현장을 보며 깊은 회의에 빠졌다. 원래 연극은 공동체의 삶 속에서 자연스레 피어나는 제의이자 놀이였음을 깨달았을 때, 그는 답을 찾았다.


연극은 땅 위에서, 사람들 속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는 농사를 짓는 자리에서 연극을 새롭게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2011년, “농사와 연극을 함께 하겠다”는 그의 다짐은 많은 이들에게 무모하게 들렸다. 그러나 이상직 호스트는 멈추지 않았다.


농촌으로 내려와 이웃들과 극단을 꾸리고 작은 무대를 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지금, 그 극단은 여전히 구례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도시 사람들이 연극을 보기 위해 구례를 찾아오는 풍경은, 그가 꿈꾸던 장면이 현실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연극이 자립하려면 ‘관객의 정당한 지불’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입장료를 받았다.


“후원에만 기댄다면 자존감을 잃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야죠.”

그 선택은 쉽지 않았지만, 결국 극단이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코로나 시기에도 공연을 이어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그 믿음이 있었다.


# 2막. 농업으로 풀어내는 문제들

이상직 호스트는 자신의 농장과 삶을 지탱하는 네 가지 기둥을 PAAN(Philosophy 철학, Agriculture 농업, Art 예술, Nature 자연)이라 정의한다. 철학과 농업, 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질 때 다양한 사회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도시에서 자립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 예술인의 문제, 지방 소멸의 위기, 그리고 사라져 가는 공동체 문제 모두가 농업이라는 매개를 통해 풀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의 마을에는 도시에서 연극을 하다 내려와 정착한 청년 예술인들이 있으며, 이들 역시 농업을 기반으로 자립하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 3막. 농업을 통해 자립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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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계절이 아름다운 지리산 자락에서 농가민박, 그리고 감농사를 짓고 있다.(사진출처: 우프코리아)


이상직 호스트가 실천하는 농업은 ‘자연농’이다. 1,000여 평의 땅에서 대봉감을 재배하고, 또 다른 1,000여 평의 논과 밭에서는 다양한 작물을 키운다.


친환경 농업의 길은 쉽지 않았다. 감 재배 초기에 둥근 무늬 낙엽병으로 큰 피해를 입어 몇 해 동안 제대로 된 수확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인위적 방제 대신 자연의 회복을 기다린 끝에, 지난해부터는 다시 수확량이 늘기 시작했다.


“농촌에 내려와 자립하기 위해 농사와 농촌민박을 시작했습니다. 유럽에서는 국내 여행의 30%가 농촌으로 향한다는 사례를 듣고, 몸과 마음을 편히 쉬어갈 수 있는 민박을 준비했지요.”


지리산을 마주한 민박집은 산책로와 숲 속 오두막을 갖추고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다. 어린 시절 꿈꾸던 ‘숲 속의 집’이 이제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인기 공간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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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이 샘솟는 깊은 산 속 천수답을 정비해 지금은 계단식으로 유기농 벼를 재배하고 있다.


# 피날레. 농사와 예술, 함께 살아가는 길

2019년부터 시작한 우프 호스트 활동은 이상직 호스트가 귀농하기 전부터 간직했던 오랜 꿈이었다. 우퍼들을 맞이할 숙소를 준비하며 시작된 이 활동은 그의 농장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혼자 농장을 관리하느라 힘들었는데, 함께 일할 손이 생기니 즐겁고 심심할 틈이 없었습니다. 일을 같이하고 밥을 같이 먹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 삶의 활력이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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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전 세계에서 많은 우퍼들이 이 곳을 찾아, 자연을 느끼고 농사와 예술을 경험하고 있다.(사진출처: 우프코리아)


독일에서 온 10대 소녀 우퍼는 농장 벽에 그림을 그려주었고, 연극 스태프로 참여한 우퍼들도 있었다. 그렇게 남긴 흔적들은 여전히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상직 호스트의 삶은 농사와 예술, 공동체와 놀이가 뒤섞여 있다. 밭일하던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고,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청년 우퍼들이 흙을 만지며 노래를 부른다.


그의 꿈은 단순하다. 농사와 예술,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함께 이어지는 자립의 길. 농산물 가공, 공연, 숙박과 체험이 서로 연결되며 작은 경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모인 힘으로, 그는 오늘도 밭에서, 마을에서, 무대 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우프코리아(https://wwoof.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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