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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in Jun 19. 2018

잘해줄 때 잘하자

눈치와 센스는 만국 공통


외국에 나와서 느낀 한국인의 특징 중 하나는 눈치와 센스, 그리고 배려가 뛰어나다는 점이다. 타인에 대한 지나친 배려는 자칫 잘못하면 남들 눈치를 보고 쉽게 주눅들 수 있는 단점도 있지만 어쨌든 눈치 하나 만은 한국 사회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넌씨눈' (넌씨.. 눈치도 없냐)부터 '낄끼빠빠'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등의 유행어만 보더라도 이런 눈치와 센스가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 잘 나타내 준다.


한국인보다 자기주장이 강한 유럽인들 중에서는 소신껏 자기주장대로 사는 것은 좋지만 가끔 앞뒤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마이웨이를 걷는 사람들이 있다. 석사학위 수업 중에 눈치 없이 똑같은 질문을 백 번 하고, 무조건 본인의 일정에 맞추어서 조별과제 일정을 조율하는 등의 행동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농담도 잘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 즐거운 친구였지만 그 이후로는 어떻게 되었냐고? 조모임으로 그룹을 형성할 때 기피대상 1위로 떠올라 그 친구는 함께 과제를 할 친구를 찾기 힘들었다.


독일 회사생활에서도 똑같다. 독일 생활에서도 적용되고 내 일상의 모토 중 하나는 센스와 눈치 그리고 '잘해 줄 때 잘하자'라는 슬로건.



예 1: 독일의 휴가 일수는 일 년에 30일이다. 그 말은 모든 휴가를 한 번에 사용할 경우 한 달 반이라는 아주 긴 휴가기간을 가질 수 있다는 뜻. 일 년 중 7월과 8월은 다음 해 사업계획 준비로 바빠질 시기이지만 어차피 모두가 휴가도 많이 가니까 나는 한 달 넘게 휴가를 써서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이탈리아로 가서 휴식도 즐기고 이태리어 한 달 코스도 들어봐야겠다. 우리 부서에서 그 누구도 이렇게 긴 휴가를 쓴 적이 없지만 내가 선구자가 되어야지.



예 2: 한국에서는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중대한 건강상의 문제가 아니고서야 대부분 회사로 출근한다. 아주 아프더라도 출근해서 팀장에게 눈도장을 찍은 다음 합의하에 일찍 퇴근하거나 병가를 쓴다. 독일에서는 이틀의 병가를 쓸 경우 의사의 소견서가 필요 없다. 감기로 병원에 가면 약을 주지 않고 쉬면 낫는다고 하면서 일주일 정도의 병가 소견서를 얻는 일은 아주 쉽다. 사실 감기는 잘 먹고 잘 쉬면 낫는 질환이기 때문에 이 방법이 결코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회사마다 팀마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어떤 회사는 병가로 직원들이 자주 나오지 않고 '내일은 아플 것 같다'라는 몸의 약간의 이상 징후만 발생할라치면 회사에 나오지 않는 직원들도 있다. 특히 퇴사 통보를 한 후 약 3개월 간의 인수인계 기간 동안 갑자기 병가로 오랜 시간 동안 출근하지 않는 직원들도 있다. 병가는 내가 이 나라에서 가진 권리이니 언제든 쓸 수 있는 것이다.



예 3: 나는 하루 8시간만 근무하도록 되어 있고 자율출근 제이니 오전 7시에 와서 오후 3시 40분에 집에 가야겠다. 점심시간을 40분 쓴다 치더라도 딱 8시간을 근무하는 셈이니 나는 규칙에 맞게 일하고 있다 할 수 있다. 물론 오후 3시 반 이후로 잡히는 회의는 참석하지 않을 것이고 영국에 있는 동료들은 한 시간 시차가 있기 때문에 나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질문은 영국 시간으로 늦어도 오후 2시 반까지는 전달해줘야 답장할 수 있다. 내 업무시간은 내가 관리하니까, 팀 미팅도 오후 4시에 잡히는 것은 내 일정과 맞지 않으니 참석하지 말아야겠다.



예 4: 어디서나 공통인 점들. 시간 약속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 내가 소집한 회의임에도 불구하고 회의실의 Beamer setting 해놓지 않고 회의시간에 우왕좌왕하는 것, 이메일에 자세히 설명해놓지 않고 무작정 실행되지 않는다고 화내기, 업무 진행상황 제 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서 최후의 순간이 되어서야 매니저가 문제점을 알아차리게 하기 등등



예 5: 반대로 A라는 직원은 controlling 관련 업무를 하기 때문에 종종 초과근무를 한다. 초과근무가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한 번씩 회사 측에서 보너스를 지급하기도 하고 그 업무능력과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내년도 사업계획 작성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A에게 밤 10시에도 엄청나게 많은 이메일이 쏟아진다. A는 이 때문에 휴가 계획도 변경해야 한다. 같은 팀에 있는 B에게 업무를 분담시키고 싶긴 한데, A가 더 책임감 있고 꼼꼼하고 지금껏 그렇게 해 왔으니 앞으로도 A가 최소 2년 정도는 이 일을 맡아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회사 사정상 더 이상의 연봉협상은 불가능할 것 같다.



조금 과장된 내용도 있지만 이런 일들은 또한 실제로 발생하기도 하고 발생할 수도 있는 일들이다. 한국인으로서 조금 미련할 만큼 우직하게 일하는 스타일이라 사실 손해도 종종 보기도 하고 내 방법이 백 프로 옳은 방법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잘해줄 때 잘하는 것' 이 말만큼은 지켜내려고 한다. 나를 신뢰하는 매니저가 있으니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예의 외 태도는 갖추려 하고, 반대로 내가 그만큼 신뢰를 심어주었으니 회사 측에서도 그만큼 반응이 있기도 하다. 경제학 입문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There is no free lunch' 이 문장도 또한 어디서 통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회사가 나를 고용한 이유, 내가 이만큼 소중한 시간을 들여 회사를 다니는 이유. 서로가 원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서로서로를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상호작용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센스 있고 눈치 있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우리 부모님 세대처럼 한 직장을 30년 넘게 다니는 시대가 아니므로 언젠가는 이직의 순간이 있을 것을 모두가 안다.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다니는 동안에는 서로 윈윈 하기 위해서는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책임감 있고 센스 있게 행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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