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의 삼시세끼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 즐거움 중의 하나는 점심시간 메뉴를 고르는 일이었다. 다양한 음식점들이 회사 근처에 포진해 있었고, 가끔은 맛집 탐방을 하러 동료의 차를 타고 인근 동네로 이동하는 열정까지 보이곤 했다. 회사 빌딩에 있던 샤브샤브집, 회사 앞 낙지볶음, 쌈밥, 김치찌개 집부터 시작해서 돈가스, 스파게티 집까지 없는 게 없었다. 구내식당에서 식사할 때도 있었고 바쁠 때는 매점에서 간단하게 김밥으로 요기를 할 때도 있었다.
회사 점심시간뿐 아니라 식사메뉴를 고를 고민을 하는 것은 한국에서 나고 자랐던 내가 가진 아주 큰 특권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독일에 와서 깨달았다.
11시 반에 점심식사 시작?
유연한 근무시간만큼 독일의 점심시간은 천차만별이다. 스스로가 점심시간을 정하지만 구내식당이 11시 반부터 14시까지 운영하는 것으로 보아 이것이 일반적인 점심시간의 범위이다. 11시 반이라니.. 너무 이르지 않나? 싶었는데 근 3년간 12시 정각에 식사하는 습관이 들어서 이제는 12시 반만 되어도 엄청나게 배고파진다. 대체로 독일 직원들은 점심식사를 일찍 하는 편이다. 아침 7시부터 와서 일찍 근무하고 일찍 퇴근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리라.
팀 회식을 점심에 하거나 조금 특별한 경우에는 점심시간을 한 시간 반 정도 쓰기도 한다. 그래도 문제되지 않는 이유는 본인의 근무시간 (하루 8시간)은 스스로 관리하기 때문에, 전날 초과근무를 했고 당장 바쁜 일이 없다면 점심시간을 오래 가질 수 있다. 보통 식당의 줄이 길지 않다면 대체로 30분 정도 식사를 하고, 커피를 함께 마신다면 50분 정도인 것 같다.
한국에서 근무했던 회사는 거의 30층에 육박하는 빌딩이어서 점심시간 혼잡을 고려해 건물의 절반 층은 12시부터, 나머지 절반은 12시 반부터 점심시간을 갖도록 하는 지침이 있었다. 그 당시는 탄력근무제 시행이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가 9시 혹은 8시반에 함께 일을 시작하고, 12시면 함께 점심시간을 가졌었다.
함께 점심을 먹을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한국과 다른 점은 팀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게 당연하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어떤 팀들은 대부분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다. 그 경우 각자 간단하게 집에서 음식을 마련해 와서 모니터 앞에서 식사를 한다. 영국 회사들이 이런 식으로 모니터 앞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지만 독일은 그 정도는 아니고, 각자 할 일이 있는 경우 이렇게 먹기도 한다.
다른 팀 혹은 다른 계열사 동료들과 번갈아가면서 식사를 하기도 한다. 한국처럼 자리에 앉아 있으면 누군가가 다가와서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저녁에 술자리를 하는 경우도 거의 없기 때문에 네트워킹이나 정보교환 목적으로 점심 초대나 커피 초대를 한다. 말이 초대이지, 각자의 직원카드로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이다.
점심메뉴= 양식부페
메뉴는 당연히 양식이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서는 정해진 가격에 뷔페식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가져다 먹는 시스템이다. 대개는 세 가지 메인 메뉴가 나오고, 부수적으로 함께 곁들여먹을 수 있는 삶은 감자 (독일에서 감자는 한국의 쌀과 같은 개념이다), 쌀밥, 샐러드가 있고 푸딩이나 요구르트 류의 후식도 고를 수 있다. 메인 메뉴는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를 기반으로 하는 종류가 많고 생선이나 채식주의자들을 배려한 메뉴들도 나온다. 3년 정도 다녔으니 이제는 이 메뉴들을 모두 꿰고 있고 조금은 지겨워지기도 하지만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구내식당에서 동료들과 식사를 하면서 점심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동료 한 명과 함께 단독 오피스를 쓰기 때문에 점심까지 먹지 않으면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구내식당이 없는 회사의 경우 근처 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가는데, 독일에서 그런 식으로 매일 점심을 사먹으면 월급의 대부분을 소진해야 할지도 모른다. 피자에 음료 하나 정도 마셔도 거의 10유로 이상이 나오고 매일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은 질리므로 이럴 때는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는 경우가 많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근처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식당을 가려면 걸어서 15분 정도가 걸리는데 점심시간 한 시간 내에 다녀오려면 빠듯하다.
독일사람들은 은근히 소식하는 편이다
독일인들=게르만족 하면 아주 덩치가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 말은 맞고 또 틀리다.
(평균 키) 대다수가 키가 크고, 말랐다고 하더라도 기본 골격이 동양인과는 다르지만 아주 과체중인 사람들을 많이 못 봤다. 운동을 즐겨는 이유도 있지만 실제로 독일인들은 소식하는 편이다. 점심시간에 음식을 접시에 담다 보면 어떤 날은 내가 가장 많이 먹는 것 같고, 키가 190에 육박하는 동료도 나랑 먹는 양이 비슷할 때가 있다. 기본적으로 많이 먹지 않고 건강한 음식을 먹으려고 하기 때문에 독일인들은 건강한 식단을 유지한다.
저녁식사로 빵 먹는 나라
특별하다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저녁에 먹는 빵’ 이다. 아침식사는 빵, 뮤슬리, 과일, 커피 등으로 간단히 먹고 점심 혹은 저녁 한 끼는 웜 밀-제대로 요리한 따뜻한 음식을 먹는다. 회사 식당에서 이렇게 점심을 먹게되면 저녁은 간단하게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샐러드나 빵으로!
한국에서 빵은 후식 개념이었고 샌드위치를 먹으면 식사를 한 것 같지 않은 게 내 식습관이었는데 여기서는 빵으로 저녁을 대체한다. 건강한 곡물 빵이기도 하고, 여기에 아보카도, 치즈, 계란, 쨈 등을 곁들이면 간단하고 든든한 저녁식사가 된다. 아 물론 맥주를 마실 때는 예외다. 1리터짜리 맥주를 몇 잔씩 마실 수 있는 것이 독일인이다 (물론 안주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