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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in Jan 05. 2019

죄책감 없이 빈둥거릴 수 있었던 일요일 아침의 발코니

상점도 나도 일요일은 쉽니다


다른 도시로 대학을 진학하며 독립을 했고 햇수로 10년 넘게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다. 그 기간 중 근 절반을 해외에서 살았으니 내가 참 멀리까지 갔었구나 싶다. 최근 6년 동안 독일 생활을 하며 많아봤자 1년에 한 번,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삼주일 정도만 한국에 머물렀다. 짧은 시간 동안 손님처럼 머물렀다 훌쩍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는 딸을 보는 부모님의 마음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새삼 든다.


한국에서 다시 시작하려고 돌아오기 전 취업만큼 가장 큰 고민은 거취 문제였다. 부모님 댁은 지방이지만 서울 혹은 경기권을 목표로 취업준비를 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준비기간 동안 서울에서 살아볼까 했지만 서울 원룸/오피스텔 시세를 보고 가볍게 그 마음을 접었다. 눈 딱 감고 '3개월만' 먹여주고 재워 달라 부탁하고 부모님 댁에 얹혀사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약속한 3개월 중 벌써 절반 정도가 지나가고 있다.



죄책감 없이 빈둥거릴 수 있는 일요일


영원할 수 없는 생활임을 알았기에 언젠가 독일을 떠나게 된다면 무엇을 가장 그리워할지 손꼽아보곤 했다. 퇴근길 노천카페에서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 집 근처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가만히 누워서 공상하는 시간, 마음만 먹으면 훌쩍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다른 나라로 떠날 수 있었던 자유. 그 어느 것 하나 그립지 않을 것 같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일요일 아침 아파트 발코니에 앉아 누리던 조용한 시간'을 가장 그리워할 것 같았다. 그때는 추측이었지만 실제로 지금 그 시간이 가장 많이 생각난다.


니콜라와 함께 살던 아파트는 그리 크지 않았고 아주 신식 건물도 아니었지만, 거기에는 작고 근사한발코니가 있었다. 그 조그만 공간에는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있었고 생물학을 전공했던 니콜라가 키우던 많은 화분들이 자라났다.




가끔 먹이를 놓아두면 다람쥐와 새가 손님으로 찾아왔다. 작은 그릴로 요리를 해 먹었고 힘든 날은 큰 대화 없이 맥주만 마시기도 했다. 여름 아침의 뜨거운 햇살을 느끼며 모닝커피를 마셨고 독일어 시험공부를 했다. 해가 뜨고 지고, 비 내리고 눈 오는 풍경을 감상했다. 어느 외로운 날에는 주변에 드문드문 불 켜진 집들을 마냥 바라보기도 했다. 둘이 있어도 좋았고 혼자 있어도 좋았다. 그냥 그 조용한 순간들이 좋았다.



권태와 쉼표를 견디지 못했고 독일 생활에서 무언가라도 얻어가려면 빈둥거리는 시간이 없어야 한다고 종종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렇다고 해서 매 순간 부지런하지만은 않았다. 마음만 바빴지 괴로운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넋 놓는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일요일의 그 발코니에서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싶었다. 일요일 아침 우리 동네는 사람 한 명 살지 않는 곳처럼 고요했다. 상점들이 문을 열지 않고 조용한 날이라고 불리는 (Ruhetag) 독일의 일요일은, 내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이었다.



몇 안 되는 친구들을 만나 브런치를 먹기도 했고 일요일에만 열리는 시장에 가기도 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한 시간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발코니에서 커피나 맥주를 마시던 시간이었다. 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쁘고 영어와 독일어에 조금씩 치여가다가도 오롯이 혼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시간들.


해외생활을 하면 가까운 사람들과 잠시 멀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나에게만 집중해 시간을 쓸 수 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생활에서 벗어나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잘 살 수 있고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생활지를 해외로 옮겨왔을 뿐 살아가는 모습은 어디서나 비슷하지만 고국을 주 생활 처로, 해외의 생활터를 두 번째 공간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조금은 여행자의 마음으로 머무는 두 번째 공간에서는 생활의 너저분함을 잊고 예전에는 할 수 없었던 생각들도 할 수 있었나보다.


조만간 새로운 생활을 위해 독립하게 되면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할 것이다. 내가 독일 집의 발코니를 그리워하듯, 언젠가는 엄마의 끝없이 이어지는 잔소리와 수다가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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