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사주팔자는 대충 이런 거다. 타고난 재능이 있었으면 좋겠고 돈도 적당히 좀 있으면 좋겠다. 아픈데 없이 건강하면서 큰 문제없이 살고 걱정거리도 없으면 좋겠다. 크게 바라는 건 없지만 대충 편히 쉽게 살고 싶은 큰 꿈이 있다.
하지만 실제 내가 가진 사주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내 사주는 ‘관살’이 혼잡하다고 했다. 부정적인 관점에서 단편적으로 해석하자면 ‘관’과 ‘살’이 엉켜서 나에게 부담을 주고 있어 직장 생활도 쉽지 않고, 배우자도 쉽지 않고, 인덕도 없고, 성격은 예민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뜻이다.
일이 쉽게 풀리는 것 같진 않다. 노력이 배신을 하지는 않아서 그런대로 결과는 나왔지만 대단한 것을 얻지는 못했다. 사주를 보러 가면 ‘원하는 만큼 잘 되지 않아 억울하겠다’는 말을 듣고는 했다. 억울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불만은 있었다. 왜 나는 대충 해도 잘되는 사람이 될 수 없는지, 내가 원하는 복세편살은 아무래도 내 사주엔 없는 것 같았다.
이건 다 ‘관’ 때문인가?
첫 수업에서 내 사주를 본 선생님은 ‘사주를 풀어보니 자기가 더 좋아지네’라는 말씀을 하셨다. 지금은 운이 좋지 않은 때라 힘들겠지만, ‘정관’을 포함해서 귀하고 반듯한 글자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 올바른 길로 가서 잘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 관’은 나를 힘들게 하지만 나를 올바르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나 스스로가 뿌리가 되어 나를 세우는 사람이라고 했다. 다른 곳에 기대지 않고 내가 가진 것으로 나의 명예와 역할을 세워나가니 얼마나 멋지냐는 말도 덧붙여졌다.
‘이왕이면 귀하고 멋진 것이 좋지!’라는 생각에 뿌듯했지만 그것도 잠시… ‘멋지다’는 표현에는 함정이 있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선생님이 일컫는 멋진 사주는 역경을 극복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무조건 좋은 것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이 있어도 그것을 해결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멋짐엔 항상 고통이 따르고 있었다.
저는 멋진 사주 하고 싶지 않은데요
나는 역경을 극복할 의지가 없었다. 세상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할 만큼 내가 처한 모든 상황이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던 때라 그저 도망가고만 싶었다. 멋지지 않아도 좋았다. 차라리 도망가는 멍청이가 되고 싶었다. 멋진 사주 너무 싫다고 반항을 했지만 선생님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너무 당연하게도 내 사주는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주 네 개의 기둥 속 여덟 글자는 글자마다 역할과 성격을 가지고 있고, 또 글자끼리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관계를 형성한다. 각각의 글자들이 어떤 구조로 존재하느냐를 살펴보면 사주의 큰 주제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내 사주 속에서 나는 명예를 지향하는데,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내가 아프거나 다쳐야만 한다. 그러면 명예를 안 좇으면 되지 않나 싶었지만, 이미 다 정해져 있는 거라 이걸 바꿀 수는 없다는 거다.
다른 사주를 보며 이 사람은 어떤 글자(=소재)를 가지고 어떤 운(=스토리 라인)으로 살게 되는지에 대해서 계속 공부하고 고민하다 보니, 나중에는 사주들이 소설의 줄거리나 영화의 시놉시스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별 특징 없이 흐르는 사주는 특별히 더 기대되거나 궁금하지는 않았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사주를 보면 나도 모르게 말년의 운이 평화롭길 응원했다. 인생이 멋지게 흐르기 위해서는 극복할 만한 사건들이 좀 있어야 했다. 영웅 서사에 괜히 역경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정해진 스토리라인이라면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내 사주가 멋있게 되어야 한다면, 결국 내 팔자 안에 고난 극복의 서사가 꼭 필요하다면, 이왕이면 그 서사를 즐기는 영웅이 되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주 공부가 사람을 이렇게 만든다. 멋지기는 싫지만 타고났으니 그냥 멋지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