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축인묘진사오미'는 돌아오는 거야
그냥 그럴 때일뿐. 사주가 주는 위로
나의 사주 선생님
‘내 사주팔자, 내가 읽어보겠노라’ 결심하고 사주를 배우러 갔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한참을 지나 안양역에 내렸다. 카카오맵을 켜고 안양역에서 사주 선생님의 사무실까지의 길찾기를 눌렀다. 낯선 골목들 사이로 그려지는 파란 선을 눈으로 먼저 따라가본다. 저기에 내 사주 선생님이 계시는구나.
떨리는 마음으로 노크를 하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사주, 타로, 신점 가리지 않고 보러다닌 덕에 만들어진 스테레오 타입을 배반하는 말그대로 깔끔한 사무실. 그 흔한 부적이나 병풍 같은 것도 없이 깔끔하고 정갈한,칠판과 책상이 놓여진 작은 보습학원 같은 풍경이었다. 선생님도 개량한복이 아닌 깔끔한 단발에 정장 원피스를 입고 계셨다.
선생님은 먼저 사주를 배우고 있던 친구에게 추천을 받았다. 친구가 사주를 배운다고 했을 때, 안양까지 가서 배운다길래 “아니 왜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배우는 거야?” 라고 물었다. 친구의 말이 걸작이었다. 사주 배우러 가서까지 여자 팔자 운운을 듣고 싶지 않아, 21세기적 상식과 교양이 패치된 여자 선생님을 어렵게 찾았다는 것. 사주를 배우고자 결심했을 때, 바로 그 생각이 났다. 나도 남자복 운운, 물장사 운운하는 풀이는 듣고 싶지 않으니까.
천릿길도 내 사주부터
역시 수업의 첫 시간은 나의 사주풀이부터였다. 사주 선생님은 내 사주를 보고 ‘멋있는 사주’라고 하셨다. 흉신을 길신으로 바꾸는 사주라나. 내 일지의 사화 상관이 월지의 축토 정재를 향해 식상봉재하며, 재생관을 향해 가는 융통이 잘되는 사주라고 하면, 그날의 나처럼 다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지. 내가 가진 불이 얼음 땅을 녹여 내게 없는 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 말도 어려운가. 한마디로 내가 노력해서 내게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는 구조라고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주 선생님을 소개해준 친구에게 DM을 보냈다. “나, 멋있는 사주래”, 친구가 답을 했다. “응, 선생님은 고난을 극복하는 걸 멋있다고 하심. 그냥 잘먹고 잘사는는 사주 하면 안되나요?”
벌써 1년이 지났는데도 그 말이 문득문득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나는 멋있는 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흔한 영웅서사의 구조처럼 이 시련은 멋있는 나를 위해 준비된 시련일 뿐. 다 지나갈 것 같은 느낌. 22년은 나에게 직장과 가족 모두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이 벌어진, 이렇게까지 되는 일이 없을까 싶을 정도로 절망더하기 절망의 한 해였다.
내 사주의 여덞 글자 안에는 과연 22년부터 5년간 편관, 흔히 칠살이라고 말하는 대운이 들어와 있었다. 큰 칼이 작은 나무인 내 머리 위에서 흔들리고 있으니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구간. 실은 지금 이러이러해서 힘든 상황이라 말씀드리니, 23년 이후 안전한 계절이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보자고 말씀하시는데 괜히 눈물이 났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추측하지 말고 예측하지 말고 만들어내지 말라고 하시는 데 너무나 정신과에서 들은 말과 똑같아서 놀라기도 했다. 그런데 왜 같은 말인데도 마음에 더 깊게 와닿는 것일까?
자축인묘진사오미는 돌아오는 거야
사주에서는 팔자라고 부르는 여덟 글자가 나의 사주원국을 이루고 그 각각의 글자가 나를 의미하는 일간과 어떤 관계인지를 풀어 대략적인 나의 타고난 성향과 패턴 등을 읽어낸다. 그리고 운은 매해 어떤 글자가 들어오느냐에 따라서 내가 가지고 있는 글자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본다. 말 그대로 운은 타이밍인것이다. 내가 어쩔 수도 없지만, 또 지나가버리기도 하는 바람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글자들은 제 순서가 되면 돌아온다.
“선생님, 이상하게 저의 상황이 달라진 것이 없는데 지금이 힘든 시기라는 말을 들은 것만으로도 마음이 나아졌어요. 이상해요. 좋은 말 들은 것도 아닌데” 선생님은 내 질문에 웃으며 대답하셨다. “모르고 맞는 것보다 알고 맞는 게 낫지” 맞다. 운에 얻어터지면서도 곧 다른 계절이 올거라고 생각하니 그 어떤 위로보다 위안이 된다. 그냥 다 지나갈 거라 말하는 사람들의 얘기보다도, 사주팔자의 세계관 안에서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음양오행과의 관계성과 강약, 조명(?), 온도, 습도 이렇게 풍경으로 다가오는 말들이 받아들여진다. 지금은 그냥 그런 계절, 그런 시간이구나.
결국 나는 사주를 배우기보다는 나에 대한 해석들을 들으며 이해라는 이름의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일까?
1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내 사주 얘기가 가장 재미있어, 쉽사리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덕에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던 회사를 1년이나 더 버틸 수 있었다. 양희은 님의 유명한 말인 '그럴 수 있어', '그러라 그래'가 사주의 필터를 끼고 본 세상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왜냐하면 나의 사주선생님의 명언처럼 '자축인묘진사오미는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의 안전한 계절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by 단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