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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과 단감 Oct 22. 2023

내 팔자는 정해져 있다면서 말이 왜 달라?

사주 보러 다니다 사주 배우러 다니는 직장인 이야기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때면 사주를 보러 갔다. 사주에 대한 믿음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답답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우리 사주나 보러 갈까? “라고 동료에게 제안하는 것은 직장인의 흔한 행동 패턴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이건 마치 배고프니까 밥 먹으러 갈래?라는 말과 같은 수준의 권유다.)  


사주나 타로, 신점에 관심이 전혀 없어도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한 번쯤은 용한 선생님 추천을 받는다. 어느 팀의 누군가가 봤던 전화 타로가 꽤 괜찮았다는 소리가 언뜻 들리기만 해도 우르르 몰려가서 번호 공유를 요청했다. 중요한 프로젝트의 성패를 예견했다는 신점집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예약을 걸었다. 3명 이상이 동시에 예약을 하면 회사 앞으로 출장을 오는 사주선생님을 함께 만나지 않겠냐는 제안도 심심찮게 받아봤다.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많은 선생님들이 유행처럼 회사를 한바탕 쓸고 지나갔다.


깝깝해하고 막막해하던 동료들이 사주-타로-신점 중 그 무언가를 보고 와서는 신나게 공유해 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그 일이 정말 좋게 풀릴지 아닐지 결과를 아직 알 수 없어도 나도 우선은 좀 그걸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딱히 믿음이 없어도 일 년에 한두 번씩은 회사에서 유행하는 용한 선생님을 찾아가는 보통의 직장인이 되는 것이다.  


내가 사주를 보러 갈 때 궁금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 특출 난 재주가 없는 내가 과연 회사를 그만둬도 먹고살 수 있을지, 내 밥벌이가 사주에 어떻게 정해져 있을지 궁금했다. 그 대답은 비슷한 듯 달랐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다녀야 될 것 같은데? 일을 계속해야 해 “

“그만둬도 돼! 어차피 평생 일할 팔자라서 어떻게든 먹고 살 거예요”

회사에 안 다녀도 잘 먹고 잘 살 거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아무도 그 말은 해주지 않았다. 계속 일을 해야 하는 팔자라는 것 하나만은 분명해서, 내가 타고난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근데 어떻게 일을 해야 한다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지금처럼 회사원으로 살라는 거예요 아님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어차피 일을 해야 한다면 내 운명의 직업이라도 알고 싶었지만, 역시나 내가 원하는 대답은 듣지 못했다. 어떤 분은 나에게 재주가 많으니 자격증을 따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했다. 갑자기 무슨 자격증을 따라는 건지 물어봤더니 그 자격증은 내가 알아서 골라보라고 했다. 어떤 분은 내가 머리가 영특하니까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연구원처럼 되라는 건지 석사나 박사까지 하라는 건가 궁금했지만 명확한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또 어떤 분은 나에게 교사를 했어야 한다고 했다. 가르치는 게 싫어서 과외 아르바이트도 안 해본 내가 도대체 내가 뭘 가르칠 수가 있는 거지? 사주를 봐도 개운해지는 부분은 단 하나도 없었다.


'퇴사해도 되는 팔자’에 대해 원하지 않았던 답을 듣고 나면 사주 상담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렸다. 으레 풀이해 주는 결혼이나 자식에 대한 이야기들은 대충 흘려들었다. 낳지도 않을 자식이 내 말을 잘 닫네마네 하는 것이나, 아마도 존재할리 없는 남편 때문에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는 나와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분은 나에게 원하는 것만큼 얻지 못해서 괴로운 팔자라고 했는데, 나는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해 왔다. 나는 현실타협이 무척 빠른 편인데 고집부리지 말고 성질을 죽이라는 말도 들어봤다. 이렇게 다 다른 말을 들을 거면 사주를 보는 게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사주를 아예 끊지는 않았다. 화날 때면 타로도 보고 사주도 계속 봤다. 딱히 믿은 적도 없었고 그저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하고 있던 모든 일이 대차게 꼬여가던 어느 날, 그날도 회사 동료에게 유명한 사주선생님의 전화번호를 또 하나 공유받았다. 예약을 하려다 언제나처럼 일복이 많으니 힘들 거라는 애매한 말이나 듣겠지 싶어서 그만뒀다.  


사주는 이미 다 정해져 있는 거라면서, 왜 다들 정확한 답을 해주지 않는 거지?
 

갑자기 내 사주를 확실히 알고 싶다는 마음이 갑자기 훅 올라왔다. 남들이 해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 팔자는 내가 직접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한자라고는 숫자 1~10과 내 이름 밖에 못 쓰지만 사주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사주를 보는 사람에서 배우는 사람이 되었다.


 by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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