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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과 단감 Sep 05. 2023

어떻게 사주 배울 생각을 했어요?

코딩도 영어도 아닌 사주 배우는 직장인 이야기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 22년의 여름. 복직을 한 달 정도 남긴 시점이었다. 잠시 신세한탄을 해보자면, 공채로 입사한 대기업에서 정신 차리고 보니 12년 차로 일하고 있으며, ‘경제적 자유’를 외치며 재테크를 하거나 셀프 브랜딩을 하거나 이직 준비를 부지런히 하며 제2의 인생을 부지런히 준비하는 동료들을 보며 살짝 불안하지만 그래도 너무나도 익숙한 회사와 일과 사람에 안주하며 ‘아직은 괜찮겠지’ 현실에 안주하는 그 끓는 물의 개구리 같은 아주아주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회사를 평생 다닐 거라는 믿음은 없었지만, 늘 2~3년의 유예기간을 자신에게 주며, 출근하면 동료들과 ‘뭐 해 먹고살지?’를 주제로 스몰토크 하기 바빴던 어느 날, 역시 세상은 나의 계획과는 무관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그때 사내 스타트업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었고, 신규 브랜드를 론칭한 지 3일째 되던 날이었다. 회사의 높은 분으로부터의 갑작스러운 호출이 있었고, 그 후에도 두어 번 더 불려 갔다. 불려 간 이유는 ‘뭐라 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 잘됐으면 좋겠어서’라는 명분으로 브랜드 운영에 관한 피드백을 하고자 하는 자리였는데, 나의 애티튜드가 영혼이 없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는지 2달도 안되어 나는 리더 자리에서 경질됐다. 명확한 이유를 듣지도 못한 채, 다른 팀으로 이동도 못한 채 그냥 일단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야 했다. 나름 평판 좋고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 하던 나는,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 위에 찍혔으니 함께 일하기 불편한 사람이 되었다.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브랜드에 피해가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회사를 상대로 싸울 자신도 없었던 나는 일단 휴직을 했다. ‘적응장애’라는 정신과 진단서를 첨부한 채.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얼마 남지 않은 긍정회로를 끌어올려 나는 휴직 기간에 최선을 다해 회복하기로 마음먹었다.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며 꿈에 그리던 외국에서의 한 달 살기를 위해 티켓도 끊었다. 자아도 왠지 외국에서 찾아야 잘 찾아질 것 같다는 마음으로. 사내 스타트업을 준비하며 번아웃 직전이었던 나는 이 시간이 왠지 휴가 같다는 생각에 오히려 잘 됐다는 정신승리를 하던 찰나에, 역시나 또 세상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 아빠가 기침을 많이 해서 동네 병원에 모시고 갔었는데, 병원에서 딸하고 같이 오랬다고 한다.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분명 안 좋은 상황일 텐데 마음의 준비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걸까. 그리고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노랫말처럼, 의사는 소견서를 써줄 테니 대학병원으로 가보라고, 폐암이 의심된다는 말을 했다. 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바짝 들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막막했다. 인터넷에서 수많은 정보들을 찾아보며 슬픈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사치란 생각이 들었다. 병원을 예약하고, 조직검사를 하고, 소세포폐암 확장기라는 진단을 받고, 산정특례 등록하고,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을 옮기고, 첫 진료를 받고 치료 플랜을 세우고, 임상에 참가하게 되고 두 달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마일리지로 끊은 항공권은 3,000마일의 위약금을 내고 취소했다. 잠시 3,000마일을 모으려면 내가 카드를 얼마큼 써야 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항암치료는 3주마다 3박 4일 동안 입원을 하며 하루 6~7시간씩 네 가지 종류의 항암제를 투여받는 스케줄이었다. 네 번의 항암치료가 끝나면 3주마다 외래로 면역 항암제와 임상을 진행하는 항암제를 투여하기로 했다.      


22년은 내가 딛고 있는 직장과 가족이라는 기반을 흔들어 놓았다. 단단한 줄만 알았던 바닥이 어느새 트램펄린처럼 나를 정신없이 튕겨냈다. 왜 내게 자꾸 이런 일이 생기지? 한동안 끊었던 사주가 생각났다. 휴대폰 연락처에는 각종 유명한 도사님들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다. 직장생활 10년 넘으면 자연스럽게 각종 신점, 사주, 타로 선생님들의 빅데이터가 저장된다.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토로하면서도,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명쾌한 답을 대신 말해주는 사람들. 100% 믿는 것은 아니지만, 틀린 답일지라도 답을 듣는 것 자체의 안도감이 있다. ‘이건 맞네, 이건 틀렸네’ 하며 연락처를 검색하며 지나간 도사님들의 점사의 추억에 빠져있을 무렵, 문득 친구가 사주를 배운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저장된 연락처만큼 통장을 빠져나간 복채들이 생각나며, ‘차라리 이럴 바엔 내가 배워서 셀프로 볼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마지막 입원 치료가 끝나고 복직이 1주일 남았을 때, 사주를 처음 배우러 갔다.      


by 단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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