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거면 차라리 이혼해!” 입 밖으로 해서는 안 될 말이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혼 7년 차 부부, 아이는 없고 고양이와 함께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다. 대체로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내지만 회피형/ INFP라는 점까지 똑 닮아서, 싸우게 되면 서로 밀어내다가 크게 폭발하고 만다. 그날도 울며불며 싸우다가 돌이킬 수 없는 ‘이혼’ 얘기까지 뱉어버렸다, 다음 날 눈뜨자마자 불현듯 내 사주에 정말 이혼수가 있나 싶어 사주 선생님께 연락드리고 찾아갔다.
현명하신 사주 선생님은 나의 큰 운 흐름이 남편, 직장을 의미하는 ‘관’을 깨고 있기는 한데, 이미 직장을 그만 두기로 결심한 시점이라 물상대체가 되었고, 이렇게 계속 나를 자극하는 시기에는 중요한 의사결정은 하는 것이 아니라 달래 주셨다. 그리고 내게 일명 ‘과부살’, ‘독수공방살’이라 불리는 ‘고란살’이 있다고 하셨다.
“네?! 제가 과부 될 팔자라고요?” 고란살이란 무엇인가. 일명 남편 잡아먹는 사주. 일반적으로 일지에 ‘상관’을 깔고 있는 ‘갑인일주’, ‘을사일주’, ‘정사일주’, ‘무신일주’, ‘신해일주’를 가진 여자 사주를 고란살이라 한다. 고란살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孤(외로울 고), 鸞(난새 란), 殺(죽일 살) 자를 쓰며, 대략 전설 속의 봉황새 같은 새가 외롭게 홀로 우는 모습을 뜻한다. 난새는 자기가 잘났기 때문에 상대를 고르기 힘들고, 수컷 없이 혼자 사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이 해석에서 조금 움찔했다. 나 잘난 맛에 살고 있기에...).
명리학적으로 해석해 보면, 나를 의미하는 ‘일간’, 바로 아래인 ‘일지(=배우자 자리)’에 관을 치는 ‘상관’이 있어 기본 구조 자체가 남편을 공격하고 있다. “선생님, 그럼 제가 다른 누구와 결혼하더라도 배우자 자리에 상관이 있으면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건가요?”. “그렇죠. 이 사주원국은 내 것이니 같은 패턴이 반복될 수 있겠죠?” 이럴 수가. 이 모든 다툼이 남편 탓이 아니라 내 사주 탓일 수도 있다니. 뭔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왔다. 이래서 길 가다 천막 같은 데서 재미로 사주 보던 시절부터 꾸준하게 결혼 늦게 하는 것이 좋다는 소리를 들어왔구나.
관을 치고 싶어 하는 ‘상관’이 내 사주의 ‘용신(=가장 활용을 많이 하는 십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남편과의 문제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도 자꾸만 상사를 우습게 보고 따지려고 하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리 자본주의적 미소를 장착한다 해도 진심으로 존중하지 않는 애티튜드가 어디선가 배어 나왔겠지. 윗분에게 찍혀 고전 중인 내 직장생활도 이 ‘상관’ 때문이었군.
(*십성: 사주에서 나를 뜻하는 일간을 중심으로 다른 글자들과의 관계성을 표현. 오행의 생극제화 및 음양에 따라 비견, 겁재, 식상, 상관, 정재, 편재, 정관, 편관, 정인, 편인으로 칭하며, 사주의 꽃으로 불릴 정도로 해석에 많이 활용된다)
고독하게 살 팔자지만, 사실 모든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이다. 직장과 남편을 의미하는 ‘정관’을 공격하는 ‘상관’이 있어서 이제 나는 마냥 불행하게 사는 것일까? 옛날식 해석이라면 남편이 여자의 모든 세계였기 때문에 이러한 사주를 흉하게 봤을 것이다. 사주 상담 중 질문 1위가 “저 남편복이 있나요?”라는데 결국 최근까지도 ‘여자 팔자 뒤웅박’이란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에 나오는 질문이겠지.
그렇지만 지금은 여자도 자신만의 사회를 가질 수 있는 시대다. 실제로 고란살을 가진 대부분의 여성들은 능력 있고 활동적으로 자신만의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지금의 부부는 상호보완적인 동반자 관계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각자의 삶을 일구어 나가는 모습을 꼭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관’ 또한 남편, 직장으로 단순하게 보기보다는 시스템, 규칙으로 해석한다면 룰을 깨는 ‘상관’은 창의적이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정의감이 있는 성향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호기심, 창의력, 정의감은 K-조직생활에 여전히 맞지 않는 성향이긴 하지만). 흔히 쓰는 ‘역마살’이라는 말도 정착, 안정을 중요시하던 예전 농경사회에서는 불운이라 여겨졌지만, 현대 사회에서 해외여행, 유학, 출장 등으로 해석이 가능해지자 환영받는 살이 되었다.
고란살에 대한 탐구를 마치고 나니, 상대를 향한 초점이 내게로 돌아오며 어느새 남편을 향한 감정이 한층 누그러짐을 알 수 있었다. 현명하신 사주선생님은 내 사주에서 또 하나의 키워드를 말씀해 주셨다. ‘명관과마’. 밝은 관이 말을 탄 형국을 의미하는데, 재생관하는 구조의 사주로 남편이나 자식을 귀하게 출세시키는 사주로 일명 '정경부인' 사주라고 한다. 내 사주의 일주는 ‘고란살’이지만, 다른 글자들이 또 이러한 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래서 하나만 보고 사주풀이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나 보다. 종합해 보면 내가 남편을 좀 들볶기는 해도 결국은 잘 되게 해주는 ‘평강공주’ 정도라고 하면 될까? 마침내 남편의 일지는 ‘정관’으로 나를 제어하고 극하는 관계이다. 그러니 오늘의 잔소리도 운명으로 받아들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