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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과 단감 Oct 22. 2023

사주 1년 배우고 나의 성공시대 시작됐다?!

사주 이즈 사이언스, 사주 이즈 나의 서울사이버대학교

어느새 사주를 배운 지도 1년 여가 지났다. 물론 회사를 다니며 바쁜 시절에는 쉬어가기도 하며 띄엄띄엄 배워 밀도는 낮았지만 이제 적어도 사주 풀이를 들으면, “어떤 글자와 어떤 관계를 보고 이런 얘기를 하는구나” 하며 이해를 하는 정도가 되었다.      


MBTI가 수많은 과몰입러들을 양산하며, ‘너 T발, C야’ 같은 다채로운 밈들을 양산한 것과 같이 사주를 배우면서 함께 배우는 친구들과 드립 치는 재미가 쏠쏠하다. 공교롭게도 사주선생님을 소개해준 친구도 심리학과, 같이 배우는 친구도 심리학과, 심지어 나 또한 심리학 전공으로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보니 은은한 배덕감이 깔린 ‘길티플레져’ 같은 느낌이랄까(쉿! 교수님껜 비밀이다).     


까탈스러워진 친구에게 “너야? 겁재야?” 물어본다던지, 대충을 모르는 완벽주의 친구에게는 “역시 넌 정관이 있어서 안돼” 놀린다던지. 퇴사를 결심하고, 사주를 배우는 1년 동안 나의 ‘퇴사방지위원회’였던 사주선생님이 선물을 주셨는데 동봉한 엽서를 보고 그대로 쓰러져 흐느끼며 웃었다. “유(酉) 대운. 편관 노노! 상관제살! 예스 ♡” 1년 전만 하더라도 못 알아들을 말인데, 뭔가 외국어를 배운 듯 세상의 해상도가 높아진 것만 같다.      


멈출 수 없는 사주 드립


‘정대만 망신살’이라던가, ‘리아킴과 미나명이 싸운 이유’ 같은 것들이 인터넷을 돌 때 진지하게 분석해 보는 재미도 생겼다. 회사에서 상무님이 면담 잡으라고 할 때는 만세력 어플을 켜고 택일을 하여 면담일정을 잡았다. 칼이 들어올 때는, 점을 뺀다던지 하는 소소한 개운법들도 알아가며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마음으로, 서핑을 하는 것처럼 운을 탄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뭔가 인생 공략집 같은 사주지만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것에 대한 무게감이 만만치 않다. 사주를 배운다고 하면 지인들이 엄청난 관심을 보이며, 자신의 사주도 봐달라는 요청이 빗발치는데 아직 사주를 온전히 풀 수 있는 실력은 되지 않아, 만세력 어플에 고이 저장해 놓고 수업 중에 간간히 선생님께 여쭤본다. 그때마다 사주선생님이 가장 먼저 하는 말. “……친해요?”  말줄임표에 많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젠 뭔가 여쭤보기도 조심스럽다. 사주가 모든 것을 다 말해주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운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SNS 계정 비밀번호를 아는 느낌이랄까.      


사주 해석은 보이는 글자가 다가 아니라 다층적인 레이어를 고려하여(형충파해...) 해석해야 하기 때문에 고작 알파벳을 읽는 정도의 내가 얘기한다면 “관이 없으니 넌 결혼도 못하고 직장도 없네” 수준이 될 것이기에, 요즘은 일주 정도 알려준 뒤에 블로그나 유튜브를 검색해 보라고 한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점은 사주는 너무나 수학적이라는 것이다. 이렇게도 외워야 할 것이 많다니! 음양오행과 십성 정도 배우면 사주 좀 볼 줄 아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지지 합은 뭔가요? 십이운성, 십이신살은 또 뭐죠? 지장간은 뭐고, 공망은 뭔가요? 뭐가 이리 계산할 것이 많은지. 게다가 회사를 다니며 배우는 지라 예습/복습은 말할 것도 없이 그저 헐레벌떡 가서 앉아있기 바쁜 지라 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22개의 천간과 지지를 한자로 쓸 때마다 멈칫한다. 한자로 필기하다가 못 따라가서 우선 한글로 급하게 써보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굴욕적이고 민망한 마음이다.      


기습적인 쪽지 시험을 본 다음날, 사주선생님은 카톡으로 빨간펜 퍼레이드인 시험지 사진을 보내주시며, 우리의 정을 생각해 시험지를 불에 태워버리셨다고 하셨다. 친구의 시험지는 잘게 찢어 강물에 흘려보내셨다고. 농담 속에 뼈가 있었으나 애써 모른 척하며, 그저 선생님이 우릴 포기하지 않으심에 감사할 뿐이다.      


가끔은 매주 수업이 아닌 내 사주 보러 가는 건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조금씩 더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주를 처음 배울 때만 하더라도 ‘사주 완전 정복해서 심리학 석사 & 마케터 출신의 직장운 전문 사주쟁이로 포지셔닝하여 떼돈을 쓸어 담아야지’라는 야망이 있었지만 말이다. ‘인성’이 들어오는 올해,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다. 만약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더라도, ‘문서’, ‘공부’를 의미하는 ‘인성’이 들어왔으니 나는 자격증을 준비하는 식으로 그 운을 활용했겠지? 사주는 일종의 바람의 방향 같은 것이라 이해를 하니, 더 자유로워지는 기분이다. 어떤 운이 들어오더라도 그 바람을 탈 것인지, 지나 보낼 것인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by 단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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