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사주왕을 꿈꾸며
비록 오늘의 나는 부족하더라도
사주 공부를 처음 시작한 것은 그냥 내 사주를 내가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 3개월 정도만 배우면 되려나 싶었는데 어느새 3년 차가 되었다. 3년 차라기엔 여전히 한자도 잘 쓰지 못하고 선생님의 질문에 재깍재깍 대답도 하지 못하는 사주 멍청이 수준이다. 멍청하긴 하지만 여전히 사주 수업은 재미있다.
조금 익숙해진다 싶으면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는 다른 스테이지가 열린다. 어떤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지 조금 헷갈리기 시작하다가도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방법을 접근하다 보면 사람들에게 적용하다 보면 또 갑자기 흥미로워진다. 선생님도 나에 대해서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것 같다. 과연 내가 알아듣고는 있는지 긴가민가할 때,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갑자기 똑똑한 소리를 내뱉어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걸 알려주고 싶다고. 그렇게 선생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그리고 나도 계속 새로운 스테이지에 도전하며 배우다 보니 얼레벌레 3년 차가 되었을 뿐이다.
이왕 이렇게 배우고 있으니 사주를 다음 직업으로 삼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주변 친구들도 다들 나서서 부추겨줬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사주를 봐주는 회사원이라니! 마치 사주를 잘 봐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대학을 나온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 만큼 그럴싸한 조합이었다. 심지어 큰 회사에서 마케팅을 하고 있으니 더 세련되게 잘 될 것 같다고 당장 상담을 시작하라는 친구까지 있었다. 건너 건너 소문으로 듣기로는 큰 광고회사에 다니던 어떤 분이 임원들의 사주 상담을 봐주면서 소문이 여기저기 났고, 이제는 사주 상담을 직업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 회사 사람들의 사주를 봐주기 시작하면 주변에 있는 관련 업계에 여기저기 금방 소문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동네만 우선 접수하면 이걸로 먹고살기 가능할 것 같다는 야망이 올라왔다.
하지만 가끔 그럴싸한 말을 할 수는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얼레벌레한 사주멍청이다. 나의 어설픈 실력을 밀고 나갈 만큼 뻔뻔하지도 못했고 자신감이 있지도 않다. 게다가 답을 정해놓고 물어보는 대화를 하다 보면 울화가 터지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내가 말해줬는데 안 들을 거면 왜 나한테 묻고 싶은 거야? 듣고 은 말만 들을 거면 도대체 왜 사주 상담을 하고 싶어 하는 거야? 내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는 사람들의 한탄을 들어주기도 어려웠다. 상담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 T여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사주를 직업으로 삼는 계획은 우선 보류해 두었다.
하지만 당장 써먹지 못하더라도 사주는 배우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남자였어야 하는 사주’ ‘남편 기 죽이는 사주’라는 이상한 사주풀이를 듣고 오면 구구절절 구체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힘든 일이 닥칠 때면 ‘자축인묘진사오미는 돌아오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이 어려움을 조금 견뎌낼 수 있게 되었고, 나의 이상한 성질 머리를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을 땐 ‘나의 편관이 지금 날뛰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나를 진정시켰다. 상대방을 바라볼 때도 ‘너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양으로 태어났으니 그런 모양으로 살아야지’ 하며 분노를 누를 수 있었다. 사주 필터로 바라보면 세상에는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렇게 조금씩 세상을 이해하고 사주 세상의 나를 레벨업 시키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사주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 언젠가와 그 모양은 알 수 없지만.
by 오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