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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가족, 불편하다...

가족이라고 다 편하고 친해야하는 건 아니니까

by 두몽


4인가족의 차녀로 태어났다.

언니와는 3살 터울. 어렸을 때는 아빠라는 존재가 참 무섭고 어려웠던 것 같다.

물론 태생적으로 귀엽고 애교가 많았던 나는(^0^) 꽤나 귀여움을 독차지하긴 했지만 그 사랑이 꽤나 가변적이었다.

내가 이 집 강아지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분이 좋을 때, 내가 귀여운 행동을 할 때만 기뻐하고 사랑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혈질인 그는 급격히 화를 내는 일이 잦았다.


언니와도 자주 싸우긴했지만 그래도 함께 노는 게 꽤나 재밌기도 한 그런 좋은 관계였다.

그러다 언니는 재수를 했고, 난 정말 지옥을 맛봤다. 마치 폭군같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인간이 저렇게 미쳐버릴 수 있다는 걸 알게되며, 절대 재수따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난생처음 언어 4등급이라는 점수를 받으며 수능 1교시를 죽 쑤었지만 선생님과 부모님의 재수 권유에도 나는 "아니요. 제 목표는 재수를 안하는 거였어요. 인서울에 내가 원하던 학과(허들이 낮은 과였다)가 되었으니 그냥 가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대학교에 들어갔다.

수능이라는 다소 폭력적이게 느껴졌던 목표를 벗어나 꽤나 즐거운 대학생활을 했다. 아르바이트도 이곳저곳에서 해보고 동아리, 봉사활동도 했다. 근데 언니는 트러블이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공무원 준비를 하기도 하고, 또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그러다 대기업 계열이지만 꽤 일이 힘든 회사에 들어갔고, 나는 그 과정에서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시작한다. 당시 승무원 준비를 했었는데, 뒤돌아 보아 생각해도 꽤나 열심히 했다. 살도 6-7kg 가량을 감량하고 (원래도 보통 체중이었다), 학원에 등록하는 돈이 아까워 스터디도 들어가고 나중에는 스터디 모집도 하는 수준이 되었지만 결국 잘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는 너무 소중하고 이루고 싶은 꿈이었다. 그 시절 자세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언니도 힘든 시기를 보냈고 있었고 미쳤던 재수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그녀는 가족에서 가장 서열이 낮은 나를 타깃으로 분노를 표출했고, 정말 별것도 아닌 일에 온갖 트집을 잡고 괴성을 외치며 화를 냈다. 어느날은 그녀와 엄마가 한판 싸운 날이었다. 마침 나는 치킨이 먹고싶었는지 엄마에게 애교를 떨며 치킨을 시켜달라고 했던 것 같고, 딱히 그녀와 엄마와의 상황을 잘 몰랐었다. 그렇게 배달을 시켰는데 갑자기 방을 나오더니 왜 자기에게 묻지도 않고 배달을 시키냐며, 내가 정말 아끼던 유리 향초 케이스(교환학생 당시 엄마같이 날 돌보아 주었던 정말 소중한 친구)를 발로 차고, "쟤가 승무원이 되겠어?" 이런 무례하고도 폭력적인 말을 하며 괴성을 질르면 분노를 표출했다.


그전에도 이미 여러번의 괴성과 분노를 들으며 상처를 받고 점점 마음의 문을 닫아갔는데, 그 날을 계기로 나는 그녀를 내 인생에서 바운더리에서 지워버렸다. 이 상황까지 오기전에 엄마에게 울면서 정말 언니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지만 엄마는 "가족인데 이해해야지. 엄마인 나는 얼마나 힘들겠니" 이렇게 대답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때 생각했다. 아 정말 나를 지켜줄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구나. 뭐 아무튼 이렇게 가족들에게 상처받아온 히스토리가 있다. 물론 내 관점에서의 스토리기에 나 맘대로 각색이 조금 되었을 지도 있지만 중요 사건에 대한 정황이나 멘트들은 정확히 기억한다.


시간이 흘러 나도 적당히 취직을 했고, 언니는 본인이 꿈꾸어 왔던 결혼 후 일하지 않는삶을 이뤄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상황들이 꽤나 어이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고 있다. 엄마는 언니가 결혼하면 곧 나가니까 참아라 라는 말을 했었는데 어느샌가 언니와 형부를 자꾸 집에부르고 (사실 당연한 거긴하다) 나까지 합류하길 바란다. 그들에게 한달에 한번 식사를 하러 오라고 했는데, 왜 나까지 끌어들이냐고요. (형부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다. 감사할 따름) 마치 결혼전에는 여기저기 상처나있던 가족이 이제와서 멀쩡한 포장지를 걸치고 '우리 꽤나 행복한 가족이에요. 호호호~' 하는 느낌이다. 내 안에 상처와 마음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 데 말이다. 그들의 연극에 왜 나도 동조해야 하는가.

가족들이 모이면 트러블메이커였던 언니가 어색하지 않을지 다들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니요. 오히려 내가 마치 꿔다놓은 보릿자루 처럼 아무말 없이 앉아있고 아 언제 끝나지. 아 빨리들 먹고 일어나지.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거기다 엄마는 내가 형부의 생일까지 챙기기를 강요한다. (나는 딱히 개인적으로 축하받은 적 없다. 바라지도 않는다.)

아니, 결혼은 내가 안했는데 왜 나까지 집안일이 많아지는지. 난 정말 이해가 안된다.

정말 더 최악인 건 그녀가 정치적 성향이 극단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고 목소리 또한 커서 그녀와 반대의 성향을 가진 나는 정말 스트레스 받는다. 나는 한시간 걸려 집에가서 왜 속이 불편하게 식사를 해야하는가.


그렇다. 오늘의 핵심 주제가 이제야 밝혀진다.

불편하기만 한 가족식사 제가 꼭 가야할까요? 불편하게 느끼는 가족때문에 상처는 나만 받는 이 상황이 왜이렇게 괴로운가.

아 그럼 가지 마세요!! 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엄마, 아빠와는 사이가 꽤나 좋고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욕심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딱히 언니랑 싸우는 상황이 아니고 오히려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남의 성향은 고려하지 않고 자기의 의사를 크게 표현하는 방식이 배려없다고 느껴지며, 집안일에 있어서도 결혼전과 정말 똑같이! 엄마가 혼자 식사를 준비하거나 정리를 할 때도 전혀 돕지 않는다.

정말 말이 되나. 이게 인간이라면 이럴 수가 있는 일이가. 공동의 목표인 식사를 것을 위해 한 사람이 일을 하고 있는데 나머지들은 그냥 편히 앉아서 먼저 앉아서 밥을 먹는게 말이 되는가.. 정말 나는 이러한 부조리함을 참을 수 없다. 근데 웃긴 것은 내가 도우려고 하면 엄마는 나만 시킨다. 말이 되나.


휴.. 이런 공개적인 공간에 이렇게 모든 걸 드러낸 글을 쓰는 건 처음이다. 과연 이걸 다 읽어주실 분이 계실런지 모르겠지만. 공감해주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일단 저는 이런 상황이고 이렇게 살고 있어요.


어찌됐든 도출한 나의 결론은 최대한 가족모임에는 눈치껏 효율적으로 치고 빠지고, 엄마, 아빠와 셋이 있을 때는 효를 다하는 것을 저의 행동 요령으로 삼고 있습니다.

뭐 가족상담을 받거나, 모든 얘기를 다시 꺼내어 관계 회복을 꾀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상상한 적도 있지만. 심리 상담은 이 집에서 나만 받아봤고, 그런 걸 보면 관심있는 사람도 나 뿐이라는 저명한 사실. 굳이 일을 만들어 성공 확률이 낮은 일이 에너지를 쏟기는 너무나 나의 영혼을 걸고 해야하는 일이기에 포기했다.

그냥 저냥 이렇게 좀 불편하지만 좀 회피하면서 살아볼게요.


혹시 공감하시고 힘드신 분이 계시다면 여러분도 조금은 회피하면서 본인을 보호하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당신의 회피를, 안온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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