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빛

슬로모션처럼 흘러간 4박 5일

by 빛나

Petitgrain 페티그레인 : 아침 8시, 알람 없이 눈이 떠졌어. 몸보다 먼저 감각이 깨어났고, 리듬이 조용히 등을 두드렸지.


Chamomile German 카모마일 저먼 : 간단히 샤워하고 ATM으로 향했어. 여행의 끝은 늘 정산으로 마무리되니까. 현금도, 감정도 잠시 정리 중이었는지도.


Bergamot 베가못 : 망고카페에 도착하자 시야가 환해졌어. “카페그린”, 테이블 넘버 04. 다시는 그 감정으로 앉을 수 없을 자리였어.


Lime 라임 :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잘 익은 망고 한 판. 과육이 쪼개질 때마다 오늘의 감정이 달콤하게 흘러나왔어. 선명하고 고요하게.


Black Pepper 블랙페퍼 :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울컥했어. 이 테이블은 이별을 모른 채 햇빛을 고요히 받아내고 있었거든.


Rosewood 로즈우드 : 일어서기 전, 괜히 의자 등을 한 번 더 만졌어. 나무결이 손끝에 남아 순간도 조금 더 길어졌지.


Patchouli 파출리 : 카페를 나와 스파 골목 초입에 멈춰 섰어. 따뜻한 등불 아래 허브와 샴푸 마사지 향이 피로를 살짝 녹여줬지.


Nutmeg 넛맥 : 아점으로 사포로 한 모금, 타이거 한 모금. 분짜, 굴 치즈구이, 돼지고기와 계란조림까지. 배보다 마음을 먼저 채우는 식사였어.


Geranium 제라늄 : 식당을 나서니 공기가 한 톤 낮아졌어. 익숙한 길, 낯익은 표지판. 헤어짐이 이 도시의 예의처럼 느껴졌지.


May Chang 메이창 : 공항 로비 충전 스테이션에서 배터리와 남은 감정을 동시에 꽂아 두었어. 비닐 손잡이에 매달린 아이스커피 두 잔이 기다림을 덜 무겁게 했지.


Ylang Ylang 일랑일랑 : 라운지 창가에 앉아 식어 가는 레드와인을 부딪혔어. 4박 5일의 기억이 한 모금에 눌려 담기고, 풍경도 시간도 슬로모션이 되었지.


May Chang 메이창 : 노란 부스와 비워진 소파들 사이로 마음도 잠시 내려앉았어. 짐은 다 정리됐는데 감정은 그대로였지. 급히 떠나지 않아서 좋았어.


Lemongrass 레몬그라스 : 마지막 커피를 마시고 컵을 내려놓으며 속으로 인사했어.

“잘 스며들었다, 너의 여름빛.”


Rosewood 로즈우드 :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중이야. 가방은 풀었지만 마음은 아직 반쯤 열려 있어. 밤공기처럼 잔잔한 감정들이 맴돌았어.


Bergamot 베가못 : 여운이란 그렇잖아. 빨리 지나가지만, 그래서 더 오래 머물러.


Nutmeg 넛맥 : 하나씩 장면이 떠올랐어. 라운지 의자에 기대 잔을 들던 그 순간, 그게 마지막 건배였을 줄이야.


Geranium 제라늄 : 몸은 피곤했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어. 좋은 마무리는 원래 그래.

조금 슬프고, 많이 따뜻한 거.


Lemongrass 레몬그라스 : 창밖을 스치던 나무들처럼 마음도 천천히 이동했어. 비행기는 다낭을 떠났지만, 감정은 천천히 날아가고 있었지.


May Chang 메이창 : 약간의 설렘도 있었어. 다시 돌아온 집이 낯설게 느껴진다는 건 여행이 잘 끝났다는 증거니까.


Black Pepper 블랙페퍼 :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괜히 울컥했어. 별일 없는 일상이 또다시 나를 받아줘서 고마웠어.


Petitgrain 페티그레인 : 샤워기 아래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지. “잘 다녀왔어.”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나에게만 들리게.


Chamomile German 카모마일 저먼 :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 말리는데, 끝에서 익숙한 향이 피어났어. 아, 이게 내 리듬이었지.


Patchouli 파출리 : 여행 내내 잊었던 루틴이 돌아오고, 그리운 감정도 곁에 붙었어. 삶은 늘 한 박자 늦게 울리는 에코더라.


Lime 라임 : 특별할 것 없는 밤인데도 창문 너머 밤공기가 더 투명했어. 내 안의 먼지가 조금은 씻겨나간 느낌이었어


Ylang Ylang 일랑일랑 : 돌아오길 잘했어. 다시 떠나려면, 이렇게 천천히 귀환하는 날도 있어야 하니까.

에필로그 (2025.7.1)


4박 5일의 다낭 여행은

6월 30일,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햇살 한 조각에도 온기가 스며들고

일상이라는 파도 속에서도

문득, 그 여름빛이 날 설레게 한다.


빛은 모두 사라졌는데,

어디선가 아직 따뜻했어.


기억은 물처럼 스며들고

감정은 그림자처럼 따라왔지.


여행은 끝났지만

내 안의 여름은

아직, 천천히 물들고 있다.

블로그 : 정보 여행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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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ovel.munpia.com/476921

작가의 말


기억은 물속에 잠겨 있다가도

어느 날, 그리움이라는 손길에 다시 떠오른다.


계화는 그렇게 이름을 되찾았고,

그를 기다리는 숨은 결국 서로를 불렀다.


이야기를 쓰며 자꾸 멈칫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건 슬퍼서가 아니라,

잠시 여행을 다녀오느라 며칠 동안 웹소설을 쓰지 못했던

그 감정이 너무 오래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숨이 이어지고, 기억이 열리고,

이름이 다시 피어나는 그 순간에

여러분의 마음도 조용히 닿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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