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에 피어난 마음 하나
달 : 향 괜찮아 (?)
숲 : 응… 시원한데 속이 좀 찡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인데 마음은 이상하게 먹먹해.
달 : 페퍼민트차야. 몸보다 마음이 먼저 반응했나 봐. 감정이 숨 쉬려면, 먼저 감각부터 깨어나야 하거든.
숲 : 따뜻한 차 마셨는데 속은 자꾸 서늘해져. 나도 몰랐던 감정들이 막 올라오는 느낌이야.
달 : 오늘 너 처음 뽑은 카드는 스피어민트야. 겉으론 유쾌한 척하는데 안은 감정 피로와 무기력으로 가득해. 활기 있는 척할수록 마음은 더 고요하게 식는 상태지
숲 : 나… 사람들이 날 좋아하는 이유가 분위기 잘 띄운다며 활력이 좋다는 칭찬이었어.
그래서 일부러 더 웃었고, 더 힘내는 척했어. 근데 그럴수록 내가 없어지는 기분이더라
달 : 웃는 얼굴은 살아 있는데, 감정은 단절돼 있었던 거지. 그런 상태에선 스스로도 자기를 못 느껴. 무기력은 조용히 퍼지는 감정이라 더 오래 아프고, 더 늦게 깨달아.
숲 : 진짜 그랬어. 그냥 일상처럼 반복했어. 힘든데 힘들다고 생각도 안 하고. 그냥 이게 원래 내 모습인가 했어.
달 : 그랬구나 , 다음으로 나온 카드는 사이프러스야. 겉으론 평온한 나무처럼 보여도, 안은 고요가 아니라 정지야. 감정이 억제되고, 변화 자체에 저항감이 생겨버린 상태를 말해줘
숲 : 여기서 버텨야 한다는 생각으로 직장 생활을 했어. 여기서 나간다는 선택 자체가 무서웠지 내가 만든 이미지, 그 안에 갇혀 있었던 거 같아.
달 : 변화가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라 공포처럼 느껴지면, 거기서 감정이 멈춰. 그때부턴 습관이 감정을 대신하게 돼. 웃고, 대답하고, 해내는 척하는 거.
숲 : 응. 누가 “고마워” 하면 더 미안했어. 난 그냥 무심한데 아무 생각 없는데 고맙다니까.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
달 : 그 맘, 메이창이 알려준 것 같아. 조용한 자극, 감정의 둔화 속에 다시 살아나는 활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아주 작게나마 깨어나기 시작한 거야.
숲 : 며칠 전에 그냥 걷고 싶어서 퇴근길에 이어폰도 안 끼고 걸었어. 바람 소리 들으면서 걷는데, 그 순간에 처음으로 숨을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달 : 감정이 돌아왔다는 건, 무너지는 게 아니라 살아 있다는 뜻이야. 지금 이 말도, 이 향도, 이 차 한 잔도 네가 너의 내면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증거야.
숲 : 그게 이렇게 조용히 시작되는 거구나… 난 뭐 큰 변화가 있어야 되는 줄 알았는데.
달 : 살아나는 마음은 늘 조용해. 하지만 그 고요 속에서 자라나는 감정은 절대 작지 않아. 지금 넌 아주 중요한 출발선 위에 서 있어.
오렌지 : 이번엔 내가 등장할 차례야. 좀 더 따뜻하고 부드러워. 무겁지 않게 마음을 안아주는 오렌지차야. 때론, 네가 너무 밝아서 오히려 지쳐버린 날들. 그 웃음 안에 무게가 있다는 걸, 나만 알아.
노래 : 어렵고 힘들었던 시간을 넘어서 아주 많은 처음을 주었잖아 이어져 가서는… 닿기를
달 : 음악이 말을 거는 것 같아… 그치? 너한테 닿고 싶어 하는 누군가의 마음이, 지금 네 안에서 울리고 있어.
숲 : 응… 그냥 가사가 아니라, 내 속에 오래 눌러뒀던 말 같아. 나도 나한테 닿고 싶어졌어. 이 노래, 10센치 ‘너에게 닿기를’ 맞지?
달 : 맞아. 이제 진짜 네 얘기를 들어보자. 너를 그렇게 지치게 만든 건 뭐였어?
숲 : 아무도 나보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지 않아도, 나는 늘 잘해야 했어. 한 번 기대에 부응하니까 그게 기본이 돼버렸고, 회사에선 늘 내가 먼저 알아서 챙기고, 먼저 웃고, 먼저 책임졌어.
근데 아무도 몰라. 내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항상 팀장이 “이 프로젝트 누가 맡을래?” 하면 내가 먼저 “저요” 외쳤어.
그렇게 잘 해내니까 점점 더 힘들고 귀찮은 일들만 나한테 몰렸고, 자연스럽게 팀장도 팀원들도 어려운 건 다 나한테 넘겼지.
그런데 그렇게 하다가 어쩌다 한 번 시간 좀 오래 걸리면 팀장은 꼭 “숲 대리, 이번 건 왜 이렇게 느려?”라고 해.
그 말 들으면 진짜… 킹 받아. 밀 안 했지만, 속으론 미칠 것 같았어.
달 : 그 말… 참 오래 삼켰던 말이지. 그래서 지금 너에게 나온 첫 번째 카드는 시더우드야.
겉으론 단단해 보이지만, 안에서는 감정의 흐름이 멈춰버린 상태야.
자기 회의, 감정 고립, 불안정함. 시더우드는 이렇게 말해. “나는 흔들리지 않게 해 줄 수 있어. 하지만 흔들리지 않으려면 감정을 멈춰야 해.
그건 너의 진심까지 묻어버릴 수 있어. ‘괜찮은 사람’으로만 남고 싶다면, 내 안에서 숨을 쉬면 안 돼.”
숲 : 회사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늘 나한테 와. 누가 부탁하지 않아도 책임졌고, 끝나고 나면 나 혼자 무너져 있었어. 그런데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다시 출근했지. 그게 습관처럼 돼버렸어.
달 : 그건 강한 게 아니라, 너 자신을 지워가며 버텨온 생존 방식이야. 그래서 두 번째 카드가 베티버로 나왔어.
단단해 보이지만, 그 안엔 방향을 잃은 마음이 있어. 베티버는 말해. “나는 느리고 무거워. 하지만 그건 단단함의 다른 이름이야.
소진된 감정은 가볍지 않아. 네가 얼마나 오래 애썼는지를 말해주는 무게야. 이제는 방향을 다시 잡을 시간이야.”
숲 : 어떤 날은 그냥 누워 있는데도 숨이 턱 막히고, 회사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렸어. 출근해서 일은 했지만, 그 사람도, 그 웃음도 다 내가 아닌 것 같았어.
달 : 그게 바로 번아웃의 징후야. 사람들은 그걸 그냥 피곤하다고 말하지만, 진짜 번아웃은 감정이 사라지는 거야. 무기력하고, 비어 있고, 심지어 살아 있다는 느낌조차 안 들지.
숲 : 근데 요즘은 조금 달라. 감정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아. 말이 생기고, 생각이 생기고, 나도 나한테 조금씩 말을 걸고 있어.
달 : 그래서 마지막 카드가 버가못이야. 가벼운 햇살 같은 향.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정이 들어올 때, 삶은 다시 제 온도를 찾게 되거든. 버가못은 이렇게 속삭여.
“나는 기쁨을 강요하지 않아. 그냥 아주 작고 조용한 희망으로 다시 피어나는 마음이야. 예전처럼 활기차지 않아도 괜찮아. 그저 네가 네 감정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면, 그걸로 충분해.
숲 : 그 말 들으니까, 나도 조금은 괜찮은 사람 같아. 어디에 도착하지 않아도, 지금 이 감정 하나로도 충분히 살아 있다고 느껴져.
달 : 그게 회복의 시작이야. 누군가에게 닿으려면, 먼저 내 감정에 닿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 지금 너는… 정말 잘 걷고 있어.
진저 : 내가 마지막이야. 따뜻함 속에 약간의 매운 숨결이 있어. 부드럽게 스며들지만, 안을 데우는 건 조금 뜨거워. 감정을 꺼내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자극도 필요하니까.
달 : 차 한잔 더 줄까?
숲: 벌써 두 잔 째 잔 비웠네
달: 말을 많이 하다 보면 그럴 수 있어 난 커피 마셔야겠다. 넌 생강차로 줄까?
숲 : 응
달 : 속이 데워지지? 이번엔 진짜 내면으로. 지금까지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있다면, 이제 다 얘기해도 돼
숲 : 응… 아까 오렌지는 따뜻했는데, 이건 속에서 뭔가 끓는 느낌이야. 마치 말 못 했던 분노 같은 감정이 안에서 조금씩 올라오는 것 같아.
달 : 그 감정, 아주 소중해. 억눌렀던 감정이 처음으로 자기 존재를 드러낼 때, 흔히 그렇게 올라와. 그래서 너한테 지금 나온 첫 번째 카드는 타임(Thyme)이야. 겉으론 괜찮아 보였지만, 사실은 오래전부터 무기력해지고 있었어.
숲 : 진짜 그래… 사실은 두려웠어. 내가 망가질까 봐, 놓을까 봐. 근데 그걸 인정하면 무너질 것 같았어. 그래서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계속 살아낸 거였어.
달 : 타임은 그렇게 말하지. “나는 의지가 돼줄 수 있어. 하지만 네가 나를 두려움으로 감추면, 난 무기력으로 변해버려.” 그 말은, 사실 두려움을 인정하는 데서 다시 힘이 시작된다는 뜻이기도 해.
숲 : 요즘엔 뭔가… 계속 같은 자리를 돌고 있는 기분이야. 쉬고 있어도,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는 감각. 뭐라도 해야 하는데, 방향이 안 보여.
달 : 그게 바로 두 번째 카드, 레몬그라스야. 원래 확장과 정리의 에너지인데, 지금 너한텐 방향 상실로 나타났어. 멈춘 것 같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는 느낌.
숲 : 맞아… 마음은 답답한데, 몸은 움직이지 않아. 뭘 더 해도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놓고 싶은 마음. 하지만 놓지도 못하겠는 마음. 그 사이에서 계속 떠 있어.
달 : 그래서 마지막 카드가 주니퍼야. 정화와 침착함의 향이야. 아직은 다 정리되지 않았지만, 감정의 혼란 속에서도 네 안에 정화의 씨앗은 자라고 있어. 주니퍼는 이렇게 말해. “나는 준비된 마음이야.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감정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게 진짜 준비야.”
숲 : 그냥… 눈물 나려고 해. 뭔가 끝났다는 기분이 아니라, 진짜 시작해도 된다는 감각. 무언가 내 안에서 정리되고 있다는 느낌이 처음이야.
달 : 그게 바로 치유야. 무언가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정돈되지 않은 채로도 나를 받아들이는 것. 오늘 이 자리, 이 향기, 이 대화는 너의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장면이었어.
진저 : 뜨겁지만, 이 온도는 너를 위한 거야. 상처는 식은 곳에서 아물지 않아. 지금의 따뜻함이, 너를 너답게 다시 데우고 있어.
숲 : 이제야 알 것 같아. 나를 사랑한다는 게 뭔지. 무언가 멋진 걸 해내서가 아니라… 이렇게 느끼는 것, 그대로 살아 있다는 감각이 먼저라는 걸.
달 : 응. 네 감정 하나하나가, 다시 네 삶의 자리가 되어가고 있어. 오늘 우리, 그걸 함께 마주했어.
에필로그
이야기는 늘 조용한 온도에서 시작된다.
너무 아프면 말이 사라지고, 너무 오래 아프면 감정도 사라진다.
‘숲’이란 이름으로 앉아 있던 내담자,
처음엔 웃었고, 그다음엔 침묵했고, 그리고 차를 마셨다.
페퍼민트차가 감각을 깨웠고
오렌지차가 무너진 감정에 이름을 붙였으며
진저차는 따뜻하게 말문을 열어주었다.
오늘, 내담자는
누군가에게 닿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닿고 싶다는 말로 상담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나는 안다.
그 말이야말로, 치유의 시작이라는 것을.
PS: 이 글은 실제 상담 장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감정 중심 심리코칭형 상담 에세이입니다.
아로마 심리카드는 내담자의 감정을 안전하게 꺼내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블로그 : 정보 자식 에세이
https://m.blog.naver.com/bina800726
작가의 말
이야기는 때로
‘잊힌 이름’을 불러내는 방식으로 시작되곤 하지요.
〈연초아〉 46화는
그 이름들이 하나둘씩 되돌아오는 장면으로
감정이 결이 되고, 결이 다시 존재를 깨우는 서사의 흐름이에요.
초아는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가 아니라,
기억을 불러오는 존재가 되죠.
12지신과 감응자들,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초아.
‘모른 척’했던 감정들이 제자리를 찾는 순간,
비로소 이 세계는 다시 숨을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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