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

감정의 계절을 건너는 향기

by 빛나

물방울 : 지금 나오는 노래, 뭐야?


달 : ‘여름날’. 볼사 노래야. 초록빛 하늘이 화면을 물들이고, 자그마한 카페가 마음에 스며들어서, 마치 계절이 눈앞에서 감정을 흔드는 것 같지 않아?


물방울 : 응. 괜히 마음이 간질거려. 이런 장면, 나한테도 있었던 것 같아. 기억은 흐릿한데, 감정은 또렷해.


달 : 풍경보다 먼저 반응하는 게 마음일 때가 있지.


물방울 : 지금이 딱 그래. 멍하고 따뜻하고…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끝나버린 계절 같아. 흘러갔는데, 머무는 느낌.


달 : 그건 사라진 게 아니라, 여전히 네 안에 스쳐가는 계절이야.


물방울 : 그런 계절이 있구나. 시간이 지나도 흐르지 않는 감정.


달 : 자스민차 내렸어. 향이 먼저 다가가. 네가 아직 꺼내지 못한 것들, 천천히 건드릴지도 몰라.


물방울 : 요즘, 입보다 눈이 먼저 닫혀. 마음이 흐르질 않고, 어디쯤 맴돌기만 해.


달 : 그 느낌, 향이 먼저 알아봐. 오늘 네가 고른 아로마 심리카드, 일랑일랑(Ylang Ylang)이 그랬어.


물방울 : 이름만 봤는데도 울컥했어. 숨겨둔 마음이 가만히 들킨 기분이었달까.


달 : 감정을 오래 누른 사람에게 자주 찾아와. 좌절을 꾹 누르고, 자신을 뒤로 밀어둔 시간들.


물방울 : 예민하다는 소리 듣기 싫었고, 속마음을 들키는 게 무서웠어. 그래서 괜찮은 척만 반복했던 것 같아.


달 : 그게 살아남는 방식이었겠지. 다만 오래되면 마음 안에서도 길을 잃게 돼.


물방울 : 요즘 좀 그런 것 같아. 웃어도 멍하고, 울어도 텅 빈 느낌. 내가 뭔지 잘 안 느껴져.


달 : 사이프러스(Cypress)는 그런 정체된 마음과 닮아. 변화는 불안해서 밀어내고, 익숙함에 몸을 눕혀버리는 상태.


물방울 : 나도 알아. 벗어나야 한다는 거. 근데 그 익숙함 안에서 숨 쉬는 게 더 쉬웠어. 적어도 지금까지는.


달 : 그래도 네가 만다린(Mandarin)을 골랐잖아. 순수한 기쁨, 이유 없는 웃음, 가볍게 흔들리는 여유. 그런 감정은 사라지지 않아.


물방울 : 희미하게 기억나. 웃고 있었던 내가. 흐릿하지만, 없어진 건 아니야.


달 : 향은 기억을 안고 기다려. 네가 다시 느낄 때까지. 조용히 퍼져서, 네 안을 천천히 데워줄 거야.


물방울 : 나 지금, 조금씩 숨이 돌아오는 느낌이야.


달 : 그럼, 천천히 자스민을 마셔봐. 마음은 언제나 가장 느리게 따라오니까.


물방울 : 숨은 돌아오는데, 그 숨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아직 물음표만 한가득이고, 자스민은 어느새 바닥났는데 마음은 풀린 듯하면서도 여전히 복잡해.


달 : 그 복잡함에 쉼표 하나 찍어줄 차야. 라벤더는 흩어진 감정의 결을 살며시 낮춰주거든.


물방울 : 향이 닿자마자 가슴 어디쯤이 조용히 흔들렸어. 무너지는 건 아닌데, 오래 참은 물결이 천천히 번지는 기분.


달 : 이번에 네가 고른 아로마 카드, 제라늄은 그런 마음을 자주 알아봐. 감정이 넘칠 만큼 오래 애쓴 사람들한테 자주 나타나거든.


물방울 : 그날이 떠올랐어. 일하는 카페에서 손님이 실수한 걸 내 탓으로 돌렸는데, 괜찮다는 눈빛도 없이 그냥 가버렸어. 아무 일도 아닌데, 눈물이 핑 도는 걸 꾹 눌렀지. 그땐 그게 과한 감정이라고 생각했어.


달 : 그건 단지 그날의 일이 아니야. 과로는 감정을 억누르는 거 아니라 오히려 덧칠해서 쌓이고, 퍼지고, 결국엔 감정이 흘러넘치게 만들어.


물방울 : 맞아. 몸도 같이 무거워졌어. 어깨가 계속 아프고, 아침에 눈뜨면 이유 없이 피곤했어. 커피 향이 싫어진 적도 있었거든.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달 : 그건 완벽해야 한다는 긴장 속에서 마음이 쉬지 못한 거야. 제라늄이 그걸 보여줬어. 감정 과잉은 보이지 않게 마음을 소진시켜.


물방울 : 완벽해 보이고 싶었어. 일도, 말투도, 감정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잃으면 나까지 무너질까 봐.


달 : 그게 파출리가 알려주는 왜곡이야. 자기 마음이 자꾸 틀렸다고 믿을수록, 감정은 점점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져. 결국, 진심을 잘못 해석하게 돼.


물방울 : 그래서였구나. 내가 뭘 느끼는지 자꾸 헷갈렸어. 작은 서운함도 마음속에 덜컥 내려앉고, 내가 왜 이런지 나도 설명이 안 되더라.


달 : 감정은 사라지는 게 아니야. 네 안 어딘가에 머물다, 언젠가 눈빛이나 몸짓으로 흘러나와. 커피 내릴 때 손끝이 떨리는 것처럼.


물방울 : 생각해 보면 그게 내 마음의 신호였던 것 같아. “그만하자”, “쉬자”, “너무 무리했어.” 근데 늘 모른 척했어. 바쁜 게 익숙해서.


달 : 그때 네가 바질을 고른 건 우연이 아니야. 자기표현과 직관, 진심을 되찾고 싶다는 마음이, 네 안에 아직 남아있다는 증거야.


물방울 : 바질 향이 뭔가 날 흔들었어. 어딘가 이상하게 마음 한켠이 풀리더라.


달 : 진심은 원래 그렇게 반응해. 준비됐을 때 흐르듯 스며들고, 꺼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너를 드러내지.


물방울 : 여기선 괜찮을 것 같아.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다 털어놓지 않아도 그저… 느껴지는 게 있어. 내 감정이 조용히, 나에게로 돌아오고 있는 느낌.


달 : 그게 바로 숨이야. 참아왔던 숨이 방향을 바꾸는 순간. 이번엔, 너를 향해서.


물방울 : 아직 다 풀린 건 아닌데, 잔잔하게 뭔가 흐르고 있어. 숨이 제자리로 돌아오니까, 마음도 조금씩 따라 움직이더라.


달 : 그 감각이 시작이야. 그래서 카모마일을 준비했어. 이 차는 감정을 눌러 담지 않고, 고요히 스며들게 해 줘.


물방울 : 향이 익숙했어. 마치 어릴 적 누군가 내 이마를 가만히 쓸어주던 느낌. 낡았지만 따뜻한 기억 같았어.


달 : 그건 오렌지의 흔적일 거야. 완벽해야 한다는 긴장, 감정을 조이던 통제감. 그게 느슨해지기 시작할 때 떠오르는 향이지.


물방울 : 맞아. 항상 똑 부러지게 보여야 한다고 믿었어. 틀리는 순간 내가 사라질까 봐, 감정도 표정도 정돈된 것만 꺼냈지.


달 : 억누르던 감정은 멈춘 게 아니야. 순환을 못 하고 막힌 채, 네 안에 정체돼 있었던 거야.


물방울 : 진짜 그랬던 것 같아. 하루를 잘 마무리해도, 마음은 언제나 하루를 잘 마무리해도, 마음은 늘 어딘가 덜 끝난 느낌이었고, 사소한 일에도 괜히 예민해졌어. 피곤하다는 생각조차도 사치 같았고.


달 : 그래서 넛맥이 네 곁에 온 거야. 무기력함은 게으름이 아니라, 오래된 피로가 더 이상 눌리지 못할 때 오는 조용한 항이거든.


물방울 : 가끔은 아무도 없는 카페에서 괜히 멍하니 앉아 있었어. 커피잔만 닦고 또 닦으면서, 손은 바쁜데 머릿속은 정지된 것처럼. 그냥,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았어.


달 : 그건 네가 빠진 하루였던 거야. 감정 없는 움직임은 쉼이 아니라, 네 마음이 너를 잠시 놓아버린 상태니까.


물방울 : 그러게. 손님한텐 진심을 담아도, 나 자신에겐 하루 종일 한 번도 시선을 안 줬더라.


달 :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게 미르야. 그 향은 고요하지만 깊어. 아무 소리 없이도, 네 안을 바라보게 하고, 그 자체로 영감이 되거든.


물방울 : 향이 천천히 스며드니까, 내 안에서 뭔가 조금씩 다시 흐르는 기분이야. 막혀 있던 감정이 도려내지 않아도 그냥 흘러가게 두는 느낌.


달 : 감정은 정리하는 거 아니라 흐르게 둬야 해. 순환될수록 마음은 가벼워지고, 너도 너를 안을 수 있게 되거든.


물방울 : 이젠 그런 내가 돼보고 싶어. 억누르지 않아도 괜찮고, 서툴러도 괜찮은 나. 그리고… 아까 상담 전 들었던 ‘여름날’처럼, 어디쯤 느슨하게 나를 풀어줄 여행을 떠나도 괜찮겠지?


달 : 그게 회복이야. 다시 온전한 너로 돌아가는 시간. 카모마일은, 그 여정을 너와 함께 걸어가 줄 거야.

에필로그


향이 마음을 건드릴 때, 감정은 늘 한 발 늦게 따라온다. 그래서 향이 먼저 스며들고, 뿌리는 오래 그 자리를 지킨다.


아로마는 마음을 열고, 식물은 기억을 데운다. 몸과 마음이 서로를 잊지 않도록, 자연은 조용히 균형을 복원한다.


지나온 계절마다 향 하나, 감정 하나가 피어나고, 그렇게 마음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잊고 있던 숨, 놓치고 있던 나

향이 먼저 알아봐 준 이야기.


닫힌 마음엔 자스민이, 흩어진 결엔 라벤더가, 되찾은 숨엔 카모마일이 닿는다.


기억은 순간보다 향으로 남고, 감정은 틀리지 않아도, 모양을 갖추지 않아도 괜찮다.

피어나는 건 언제나 가장 솔직한 숨결에서 시작되니까.


지금, 마음 어딘가에 작은 피움이 번진다. 향처럼, 계절처럼. 아주 천천히, 따뜻하게.


PS: 이 글은 실제 상담 장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감정 중심 심리코칭형 상담 에세이입니다.

아로마 심리카드는 내담자의 감정을 안전하게 꺼내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블로그 : 정보 지식 에세이

https://m.blog.naver.com/bina800726

작가의 말


기억은 흐르고, 감정은 남는다.

사람은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문다.


〈심장이 닿을 자리〉는

그 머무름에 대한 이야기였다.


다음 결은, 지금부터.

다음 서사는, 우리로부터.


그리고,

복귀하지 않은 그 감정은

과연 함께 돌아온 이들 중 하나였을까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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