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을 좋아하기에 기다린 영화다. 개봉런을 했다.
영화는 코믹하고 간결하게 흘러가서 내용을 이해하기 쉬웠다.
세세한 의미들을 찾기에는 어려웠다. 특정 장면과 장치가 어떤 뜻을 내포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직감적으로 느껴질 뿐,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다. 예를 들어 만수(이병헌)의 콧수염이나 춤출 때의 분장 등 말이다.
내가 할 일은 영화를 곱씹어 보면서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다. 또 웹서핑을 하면서 영화의 의도를 찾는 것이다.
그전에 몇 자 적어보려 한다.
만수는 갑자기 실직됐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에 이력서를 넣는다. 쉽지 않다. 경쟁자도 많다. 그래서 결심한다. 경쟁자들을 죽이겠다고. 실제로 죽이기도 하는데, 경쟁자를 죽이는 것은 자본주의 풍자 같다.
자본주의는 경쟁을 부추긴다. 타인보다 능력이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당한 경쟁도 있는 법이다. 인간의 본성은 폭력적이기에 만수 같은 생각을 하고 행동하게 된다.
아내인 미리(손예진)는 만수가 실직하여 재취업을 한다. 내조를 하며 가정도 지킨다. 그러던 중 만수의 만행을 알게 된다. 만수에게는 비밀로 한다. 아니, 세상에 비밀로 한다. 그것이 가정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수는 운이 좋았다. 경쟁자들을 죽이고, 들키지 않았으며, 아내까지 비밀로 해주니까. 그리고 재취업에 성공하니까.
영화의 메시지는 자본주의 풍자인 것 같다. 이런 무한경쟁에서 사는 게 옳은 걸까? 경쟁이 필요하다고 해도, 잔인하게 싸우는 게 맞는 걸까?
자본주의 속에서 나름의 이점을 누리고 살면서, 반은 긍정하고 반은 부정하게 된다. 자본주의는 자유가 있는 반면에, 경쟁과 표독으로 인해 인간이 썩어가기도 하니까.
자본주의의 장단점을 이전부터 생각해 본 사람으로서, 영화를 통해서 내 생각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영화는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보통 그러니까. 나는 호이다. 그래도 이전 영화들에 비해 아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에 코미디 하게 볼 수 있어 괜찮았다.
연기랑 연출 보는 재미도 있다.
또한 가장의 무게, 실직, 인간의 본능, 폭력성, 정당성과 합리화,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일자리 위협 등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
자본주의 풍자라고 함은 경쟁도 있겠지만, 기술 발전에 따른 인간의 일자리에 대한 위협도 있다. AI와 로봇은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를 위협하고 있다. 또 예술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 인간의 편의성을 위해서 만든 기술이 위협의 대상이 되었다. 경쟁자가 늘어난 것이다.
가장의 무게는 무겁다. 늘 책임지고 모든 걸 짊어지려 한다. 만수의 선택은 부당하다. 그것은 가정을 지키기 위한 책임에서 비롯됐다. 먹고살기 위해서 그리고 먹여 살리기 위해서 가장은 더러워지기도, 수치도 느껴야 하는 것인가 보다.
인간의 본능은 더럽다. 폭력적이고 위선적이다. 우리는 부정하지만, 그것도 인간의 일부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부당한 방법을 생각한다. 부당하지만 합리화를 통해 정당성을 부여한다.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수와 미리를 통해 재각인 할 수 있었다. 합리화는 자신과 주변을 봐도 쉽게 볼 수 있다.
실직은 실로 무섭다는 걸 느꼈다. 실직을 해본 적은 없다. 다만 취준생활을 해봤고 이직을 준비 중이다. 취준 때도 경제가 어려워 일자리가 평년보다 적었는데, 이직하는 요즘도 그렇다. 거기서 나아간 게 실직이니 더욱이 힘들 것 같다. 실직을 간접경험함으로써 두려움을 알게 되었다.
영화는 현재 사회문제를 꼬집는다. 단순하지만 직업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미래를 생각하게 만든다.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 든다.
아쉬운 점은 대표음악이 없던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노래도 한몫하니까. 그럼에도 미장센은 뛰어났다. 역시 아름답다.
영화는 폭력적이고 잔인하기에 못 보는 사람들은 주의를 기울이길 바란다. 실제 옆에서 보시던 아주머니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남편 분 뒤에 수시로 숨으셨다.
가볍게 보려면 가볍게 볼 수 있고, 깊게 보려면 깊게 볼 수 있는 영화다. 나는 이 영화를 권한다.
구상과 제작까지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불황과 기술 발전, 참으로 시의적절하다.